【특집좌담】위기극복 상징 ‘정발산 사저’ 유산... 평화협력 전초기지 고양시가 잇는다

'고양시 김대중 대통령 사저 기념관'에서 <고양투데이> 창간 기념 특집좌담 개최
이재준 고양시장·김택근 작가 참석...장신기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연구원 사회

이 시장... “고양시, 남북교류 맨 앞자리 설 것”
김 작가... “화해·협력·평화경제의 본산 고양시”

김아름 기자 승인 2021.08.18 15:07 | 최종 수정 2021.09.11 17:32 의견 0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그의 연설은 시작된다. 말머리에 그는 “잘못하다가는 나라가 파산할지도 모를 위기에 우리는 당면해 있다”면서 “올 한 해 동안 물가는 오르고 실업자는 늘어날 것”이며 “소득은 떨어지고 기업의 도산은 속출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이어 “우리 모두는 지금 땀과 눈물과...”까지 꺼낸 후 10여 초 간 말을 잇지 못한다. 그리고 이내 “고통을 요구받고 있다”는 대목에선 낮은 울음이 섞여 나온다.

이는 1998년 2월 26일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사 중 한 대목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후 IMF 외환위기를 앞당겨 극복했고, 대북 햇볕정책을 추진해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그리고 그 공로로 대한민국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독재정권과 맞서 싸운 민주인사로서, 햇볕정책을 전면에 내세운 외교수장으로서, 권위주의를 타파하려 했던 국정 지도자로서 본분을 다했던 김대중 대통령은 퇴임 후인 2009년 8월 18일 향년 85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김대중 대통령 서거 이후 12년이 지난 2021년 8월 현재, 대한민국은 또 다른 국가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다. 안팎의 형편은 다르지만 우리는 지금 소득이 떨어지고 기업 도산 우려도 야기되고 있다. ‘땀’과 ‘눈물’과 ‘고통’을 요구받는 코로나 시국이 언제 끝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에 <고양투데이>는 김대중 대통령 서거 12주기를 맞아 올해 고양시에서 개관한 ‘김대중 대통령 사저 기념관’ 개관 의의 등을 살펴보고 그가 추구했던 평화, 통일, 인권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특집좌담을 마련했다.

‘김대중 대통령 사저 기념관 개관 의의와 평화경제특별시 고양시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좌담에는 이재준 고양시장과 <김대중 자서전> 대표 집필자인 김택근 작가(전 경향신문 논설위원)가 패널로 참여했다. 사회는 장신기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연구원이 맡았다.

<편집자 주>

특집좌담은 새로 조성된 고양시 김대중 대통령 사저 기념관에서 열렸다.

고난의 ‘동교동’에서 성공의 ‘정발산’으로

1992년 정계 은퇴 후 영국으로 유학, 혹은 정치 피난을 떠났던 김대중 대통령은 귀국 후 일산에 거처를 마련하면서 고양시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고난의 상징이던 ‘동교동’을 뒤로한 채 새로 자리 잡은 정발산에서 정권교체의 큰 틀을 구상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재준 시장은 “대선 패배 후 떠났던 영국 유학 동안 평생 과업인 평화통일의 큰 뜻을 되새기게 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 뜻을 펴기 위해 그동안 정치인으로서 머물렀던 고난의 동교동을 떠나 보다 먼 미래를 바라보고 준비할 수 있는 곳을 고르다 일산을 눈에 담은 것으로 추측된다”라고 말했다.

김택근 작가 역시 “김대중 대통령에게 동교동은 투쟁의 추억과 실패의 아픔이 서린 곳”이라며 “통일 구상을 하면서 분위기를 바꿔보자는 생각에 서울보다는 북쪽이 가까운 이곳 일산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왼쪽부터)김택근 작가, 이재준 시장, 장신기 연구원.

외환위기와 국가부도위기 극복의 상징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 기거했던 정발산 사저는 정권교체와 남북화해의 물꼬를 튼 상징적 장소다. 당선 발표 직후 주민들의 환호 속에 손을 흔들며 감사 인사를 전하던 김대중 대통령이 서 있던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김택근 작가는 “이 사저는 IMF 구제금융 당시 깡드쉬 총재가 김대중 대통령을 예방하고 의견을 나눴던 역사가 깃들어 있는 곳”이라고 전제하고 “마당에 있는 배롱나무는 김대중 대통령이 특별히 아꼈던 나무로 아직도 그대로 있는 것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고 회상했다. 특히 “정발산 사저는 대북 햇볕정책을 구상한 김대중 정권 대북정책의 산실이며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뤄낸 역사의 현장”이라면서 “외환위기와 국가부도위기 극복을 위해 전 세계 요인들을 초대했던 만남의 장소이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병행 발전시킨 ‘국민의 정부’ 국정철학이 잉태된 곳”이라고 평가했다.

이재준 시장은 “처음 정발산 사저를 찾았을 때 본채와 사랑채가 지하 비밀통로로 연결된 구조를 보고 당시 정국의 엄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전하면서 “연합체든 연방제든 통일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국시 위반이라고 치부되는 시국이었지만 이곳에서 통일의 꿈을 키우고 구체화해 향후 6·15공동선언의 기초를 다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대중 대통령이 이곳에 산 기간은 2년 3개월에 불과하지만, 당시 거실에 있던 소파가 다 닳은 것을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의견을 나눴는지 짐작할 수 있다”면서 “바로 여기서 한반도 평화구상과 대선 공약이 다듬어졌을 거로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하다”고 밝혔다.

지난 6월 14일 개관한 고양시 김대중 대통령 사저 기념관.

6·15선언 발상지 정발산 사저, 기념관으로 재탄생

고양시는 정발산 사저를 ‘김대중 대통령 사저 기념관’이라는 이름으로 올해 6월 14일 개관했다. 지난 2000년 6월 15일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동발표한 ‘6·15 남북공동선언’을 기념한 것이다.

‘6·15선언’의 의의에 대해 이재준 시장은 “이전에 진행된 남북회담은 참모나 실무진이 왕래하며 협약을 체결하는 수준이었다면, 6·15선언은 남북 정상이 만나 체결한 첫 번째 합의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면서 “이산가족 상봉 같은 상징적 조치 외에 두 정상은 개성공단 등 경제문제에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북에서도 남북 간 경제 격차를 인정하고 통일문제에서 경제라는 공동주제를 놓고 논의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면서 “이를 기반으로 경의선 철도 복원,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등 표면적인 과실이 열렸지만 이후 지속하지 못하고 수확을 하지 못해 안타깝다”라고 밝혔다.

김택근 작가는 “이전에도 남과 북의 합의는 몇 차례 있었지만, 실질적인 후속 조치로 이어진 경우는 드물다”고 전제하고 “6·15선언은 남북 정상이 합의한 내용을 곧바로 실행으로 옮긴 실질 협약이었고, 남북이 완전한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통일 방향에 대해 일부 동의한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과 북 두 정상이 동시에 같이 서명한 최초의 회담이라는 점이 가장 큰 의의"라고 덧붙였다.

김대중 대통령 사저 기념관에는 6·15선언 당시의 생생한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민주주의 시민평생학습장으로 자리매김

정발산 사저는 본채 1층과 2층은 건축물을 보전하고 내부는 김 전 대통령이 과거 사용하던 가구 등을 그대로 남겼다. 본채 지하는 전시공간으로, 별채는 평화, 인권, 민주주의를 체험하고 교육하는 전시관으로 활용한다. 그리고 기념관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사용하던 지팡이, 안경, 펜, 의류 등 30종 76개의 유품이 전시된다.

이재준 시장은 “사저 기념관은 김대중 대통령이 대한민국에 남긴 정치적 발자취, 평화통일의 구상을 시민들이 관념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대통령이 살던 공간을 보며 남겨진 의미를 공감하는 시민학습장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의 삶 자체가 대한민국 현대사이자 민주주의 개척사임을 느낄 수 있는 시민의 쉼터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개관 이후 하루 120명으로 제한된 예약이 조기 마감되는 등 관심이 이어졌지만 최근 코로나19 거리두기 4단계 격상으로 휴관 중이라 안타깝다”며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김택근 작가는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유화책으로 보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평가”라고 전제하고 “햇볕정책은 ‘흡수통일 하지 않는다’, ‘도발하면 응징한다’, ‘그런 연후에 화해 협력한다’라는 3원칙을 내세우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정발산 사저는 각종 사료와 기록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김대중 대통령의 포용철학을 느낄 수 있는 현장학습의 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재준 시장과 김택근 작가는 좌담을 앞두고 고양시 식용꽃협동조합에서 만든 인동초 차를 마시며 '인동초'로 불린 김대중 대통령을 추억하는 환담을 나누기도 했다.

‘평화가 시작되는 곳’, 평화경제특별시 “고양”

고양시는 시정 구호로 '평화경제특별시'를 내세우고 있다. 서울과 개성의 중간지대이자 대륙으로 나가는 길목으로, 한반도 평화협력 시대의 전초기지로 성장한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이에 대해 김택근 작가는 김대중 대통령은 통일정책을 이야기할 때마다 “‘주변에 4대국이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면서 ‘남북이 화해하면 4대국은 물건을 팔 수 있는 시장이 되고, 남북이 갈등하면 4대국의 먹잇감이 된다’고 했다”면서 “남북이 화해하고 협력하는 시기가 오면 사저 기념관이 있는 고양시가 중심 거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김대중 대통령이 밤새워 구상하고 다듬었던 정신적 유산을 고양시 자산으로 만든다면 남북화해와 협력, 평화경제의 본산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재준 시장은 “고양시의 슬로건은 ‘평화가 시작되는 곳’으로 기초자치단체 중에서는 최초로 통일부로부터 대북지원 사업자로 지정돼 독자적인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라고 운을 뗀 뒤 “남북교류가 재개된다면 우선 과제로 보건의료 분야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보건의료협력 실무TF 구성, 평화의료센터 개소 등을 추진했고, 향후 킨텍스 옆에 조성되는 테크노밸리에 평화의료클러스터를 구축할 계획”이라며 “실제로 3년 전부터 남북표준화도시를 지향하며 남북 의료용어 통일작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 더해 이재준 시장은 고양시의 지정학적 장점도 거론했다. 한강과 임진강, 즉 남북이 교차하는 물류거점으로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이재준 시장은 마지막으로 “남북교류가 활발해지면 고양시가 대륙으로 가는 기차 출발역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면서 “통일 전이라도 남북 간 교류가 왕성해지는 미래를 구상할 때 고양시가 맨 앞자리에 서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이번 좌담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관객 없이 진행됐으며, 주요 내용은 <고양투데이> 유튜브 채널과 <이재준TV>를 통해 영상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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