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스물세 살 용접공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승인 2022.06.14 09:00 | 최종 수정 2022.06.14 12:59 의견 0

그녀는 스물세 살이라고 했습니다. 그 나이 특유의 풋풋함이 아니더라도, 선이 무척 고운 얼굴이었습니다. 조금은 인색해 보이는 미소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서도 감탄하기 바빴습니다. 올들어 가장 무더웠던 날이었습니다. 한낮의 열기가 세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습니다. 저는 반팔옷으로도 견디기 힘든 그 열기 속에서 그녀는 작업복을 껴입고 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썼습니다. 작업복은 우주복에 가까울 만큼 두텁고 둔중해 보였습니다. 그냥 서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데, 저렇게 옷을 껴입으면 얼마나 더울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등에 땀이 흘렀습니다.

준비를 마친 그녀가 작업대 앞에 섰습니다. 손에 쥔 토치가 파란 불꽃을 토해내면서 스물세 살의 한 여성이 실루엣 속으로 모습을 감췄습니다.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고열의 불꽃은 더위까지도 태워버릴 것 같았습니다. 그녀는 흔들림 없이 작업에 열중했습니다. 선정(禪定)에 든 노승처럼 경건한 모습이었습니다.


창원에 있는 한 조선소의 기술훈련원에서 마주친 광경입니다. 지난해 훈련과정을 마친 그녀는 요즘 다시 훈련원에 와서 용접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훈련이 더 필요해서 돌아온 게 아니라, 갈 곳이 없어서 온 것입니다. 교육과정을 마치고 바로 취업이 됐지만, 얼마 다니지 않아 조업이 중단되더니 며칠 전에 기어이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용접 토치를 손에서 놓을 수 없었습니다. 훈련원으로 돌아온 까닭입니다.

그녀는 흔히 말하는 ‘비행소녀’였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한 달 만에 중퇴하고, 다시 들어간 인문계 학교도 열흘 만에 그만두었습니다. 공부보다 친구들과 밖에서 노는 것이 더 좋았다고 했습니다. 가출을 한 뒤로 방황하며 지낸 시간이 무려 2년이었습니다. 그녀는 내일이 기다려지지도 않았고, 내일이 올 것 같지도 않았으며, 아예 내일이란 게 없을 것 같았다고 그때를 회고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자각을 하게 됩니다. 그 길로 자신에게 맞는 일거리를 찾아다니다가 용접을 배우기로 했습니다. 여자가 무슨 용접이냐고 반대도 있었지만, 그녀는 그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용접을 배우면서 세상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기술훈련원에서 훈련을 할 때, 일과 후는 물론 교육이 없는 토요일에도 토치 그리고 불꽃과 씨름을 했습니다. 그 결과 함께 공부한 동기생 중에 유일하게 모든 자격증을 따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그녀의 손을 들여다봤습니다. 손등이 온통 상처였습니다. 훈련 기간 중 쉴 틈 없이 입은 화상으로 피고름이 멈출 날이 없었다고 합니다. 용접 부위에서 발생하는 열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토치를 잡은 오른손을 받치고 있는 왼손 등에 전해지는 열은 끓는 물처럼 뜨겁다고 합니다. 그녀는 “그 순간의 느낌은 뜨거움이 아니라 통증”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속장갑을 껴도, 가죽을 덧대도 연약한 손이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온도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용접 도중 멈춰버리면 다시 이어서 용접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끝까지 참아야 합니다.

그래도 그녀는 토치를 잡으면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두꺼운 작업복을 입고도 더운 줄을 모른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녀가 일하던 조선소의 작업이 모두 멈춰버렸기 때문입니다. 언제 일을 다시 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녀는 용접 외에 다른 일은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교육훈련원의 관계자는, 회사가 문을 닫던 날 그녀가 펑펑 울었다고 전해줬습니다. 그녀가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그런데 통영에, 거제에, 울산에 ‘그녀’가 하나뿐일까요? 그든 그녀든 팍팍한 삶 앞에 절망하는 사람은 셀 수도 없이 많을 것입니다.

남쪽 땅을 돌아다니는 내내 무척 혼돈스러웠습니다. 무너진 희망 앞에 흐르는 눈물을 화상 자국 그득한 손으로 닦아야 하는 스물세 살의 그녀와, 금방 주먹질이라도 할 듯 서로에 대한 증오를 남발하는 이 나라 정치인들과의 거리는 얼마나 먼 것일까? 늘 국민을 위해 산다고 큰소리치는 그들은 그녀가 흘리는 눈물을 짐작이나 할까? 내내 슬픔을 등에 지고 다니는 듯 무거운 발걸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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