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어느 피아니스트의 눈물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승인 2022.06.21 09:00 의견 0

말을 멈춘 그녀가, 봉인이 풀려버린 오열을 꾹꾹 삼켰습니다. 시간이 정지화면처럼 멈췄습니다. 관객들의 숨소리도 멈췄습니다. 투명한 눈물이 가슴과 가슴으로 흘러갔습니다. 찰나처럼 짧고 영겁처럼 긴 시간이었습니다. 베토벤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이었습니다.

“어렸을 땐 그렇게 싫던 베토벤이 언젠가부터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제가 가장 존경하는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어디에도 울음이 숨어있지 않을 것 같은 이 문장이 왜 그녀를 울렸는지는 끝내 알 수 없었습니다. 귀가 들리지 않는 신체적 악조건, 물질적 궁핍, 절박했던 삶, 그 속에서도 불멸의 곡들을 만들어낸 작곡가의 영혼이 그녀 안에 눈물의 씨를 파종한 것 같았습니다.

신촌 어느 건물의 지하에서 열린 ‘갤러리 콘서트’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마주하기>라는 제목이 붙은 피아노 연주회. 따로 무대가 있거나, 음악을 감상하기에 최적화된 환경이 아닌, 그림들 사이에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는 공간에서 열린 작고도 소박한 연주회였습니다. 하지만 피아니스트와 그녀가 연주하는 음악은 소박하지 않았습니다. 관객의 반응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로 음악회의 문을 열었습니다.

“여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서 단 한 번도 놀아본 적이 없습니다. 오로지 연습 또 연습뿐이었습니다. 예고(藝高)를 가기 위해서, 대학을 가기 위해서, 유학을 가기 위해서 끝이 보이지 않는 연습만 있었습니다.”

그녀는 독일로 유학을 떠났고, 거기서 피아노를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유학을 가서 맨 처음 배우기 시작한 게 ‘노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피아노를 대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노는 법을 알지 못하고 죽자사자 연습만 한 연주는 ‘무효’였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새로 시작한 삶 속으로 어느 날 끔찍한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오른손에 문제가 생겨 더 이상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된 것이었습니다. 외과적 수술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포기하려고 했지만, 포기하는 게 당연했지만, 그녀는 도저히 피아노를 떠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고통은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의 시련은 더 큰 시련을 등 뒤에 감추고 있었습니다. 느닷없이 암이라는 천형이 찾아온 것입니다. 결국 귀국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암흑 속에도 피아노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아니, 고통스러울수록 피아노에 몸과 마음을 기댔습니다. 도저히 건반을 두드릴 수 없는 상태에서 피아노를 쳤습니다. 그녀가 말하지는 않았지만 날마다 울면서 피아노 앞에 앉았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차라리 기절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는 고통 속에서, 오로지 피아노를 통해 내일아침을 간구했을 겁니다.

그녀는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피아노를 정복하는 피아니스트가 아닌 마주보는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40년 가까이 걸렸다”고 말했습니다. 또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 들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연주회는 한 곡 한 곡 해설을 해주는 ‘이야기가 있는 음악회’ 형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저처럼 클래식 음악에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관객이 음악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연주회의 내용에 대해서는 따로 쓰지 않겠습니다. 음악을 분별하고 해설할 능력도 없거니와, 설령 좀 안다고 해도 그날의 연주는 문자나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아름다웠습니다. 때로는 달콤했고 때로는 황홀했습니다. 피아노를 부수기라도 할 것 같은 격정적 연주에 가슴이 쿵쾅거리기도 했습니다. 말들이 평원을 달려 내게로 오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습니다. 깊은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습니다. 저 가녀린 몸에서 어떻게 저런 에너지가 나올까 하는 궁금증은 끝내 풀지 못했습니다. 피아노에서 그녀의 곤고했던 삶이 고스란히 쏟아져 나왔습니다. 시련에 무너지지 않고, 여전히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작은 거인’의 함성이 있었습니다. 내 안에 무엇인가 가득 차오르는 느낌으로 전율했습니다.

연주가 끝나도, 관객들의 박수는 끝날 줄 몰랐습니다. 그녀가 다섯 번 넘게 답례를 할 때까지 박수가 이어졌습니다. 장담하건대, 제가 보았던 어떤 공연의 박수보다 크고 길었습니다. 어떤 이는 슬그머니 눈가를 훔치기도 했습니다.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은 그녀가 쓰러질까봐 앙코르 요청은 할 수 없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관객들의 박수가 또 하나의 연주였으니까요.

가슴으로 울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저도 남은 생을 잘 연주할 자신이 생겼습니다. 영혼을 받친 예술가, 그 예술가가 낳은 예술은 아름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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