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초목이야기】밥상

맵시곱추밤나방에게 왕고들빼기는 독이 든 성배라고 할 만하다

홍은기 온투게더 대표 승인 2022.11.09 09:00 | 최종 수정 2023.08.09 09:13 의견 0
왕고들빼기 Lactuca indica L. 국화과 상추속 한두해살이풀


곤충학자 정부희가 쓴 곤충의 밥상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곤충은 좋아하는 먹이만 골라 먹는 까다로운 편식가라는 사실에 흥미가 느껴졌었다. 잡식해도 먹을 게 모자랄 판에 편식이라니 새삼스러울 뿐이었던 거다.

그런데 한발 더 나가 보니 편식이 아니라 독식이었다. 여기에는 목숨 건 과감한 승부수가 숨겨져 있다. 곤충 먹이가 되는 식물이 독을 만들어내 자신을 지키려 했지만 곤충이 내성을 길렀다. 독식 毒食으로 독식 獨食하게 됐다.

가을을 하얗게 수놓은 왕고들빼기에 맵시곱추밤나방 애벌레가 여유롭다. 맵시곱추밤나방이 상추속(屬)만 먹는다. 이름에 고들빼기가 보이지만 왕고들빼기는 상추속으로 구분된다. 상추를 자르면 나오는 흰 즙이 독성 물질이다.

독을 품고 있는 왕고들빼기라서 맵시곱추밤나방이 아니고서는 아무나 먹을 수 없다. 맵시곱추밤나방은 그 독을 몸에 비축해 놓아 새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맵시곱추밤나방에게 왕고들빼기는 독이 든 성배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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