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계산은 동안거(冬安居)에 들었다. 지난 4일이 입제일이었다. 앉으면 결제요, 서면 해제라는데 나는 아직 그 지경에 이르지는 못했다. 이 세상 내가 주인공으로 사니 문제가 없을 리 없다. 나는 그 문제들을 화두라 일컫는다. 이번 철에 타파해야 할 화두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렇다면 나의 머리에 불붙은 화두는 무엇인가? 묻는 이가 물었다. 요즘 나의 화두는 사는 거다, 라 대답했더니 피식 웃는다. 그랬다. 나는 내가 존경하는 원효도 만해도 아니다. 당장 사는 게 중요하니 원효나 만해의 발끝도 못 쫓아가는 그저 그런 허접한 중이다.

누가 삶을 고해(苦海)라 했는가. 참으로 기가 막힌 표현이라 생각한다. 젊었을 땐 복해(福海)라 했는데 많은 허송세월을 보내고 보니 고해라는 걸 절실히 깨닫는다.

모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었다. 통화의 주제가 화두를 벗어나자 다름이 아니오라, 하며 내가 사는 모습, 겨울 산사를 다큐 미니시리즈로 찍고 싶다는 거였다. 스님 삶, 봄이 오는 산사의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거다. 단칼에 거절했다. 나는 그 누구에게 내 사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이 세상을 살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마음자리, 심지(心地)가 흔들려 심지(心志)를 세우고 있지 못하던 판이었다.

"스님 내년 초파일날, 특집요. 스님 산문집 나오는 거에 맞춰..." 피디는 그렇게 나를 유혹했지만 거절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더 붙잡고 있다간 넘어가지 싶어 만은 아니었다.

몇몇 프로그램에 촬영을 허락한 적도 있었다. 재미있었던 적도 있고 그렇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조용하던 산사가 번잡했다. 본의 아니게 내가 아닌 모습도 연출자의 요구에 의해 찍혀 방영된 적도 있다.

"나 무엇하러 여기에 왔던가?"

나이가 들자 나는 혼자 중얼거리는 횟수가 늘었다. 복잡한 게 싫다. 내가 보여줄 게 뭐가 있다는 말인가. 수행자가 되고 싶었을 뿐. 남은 생 그냥 조용히 살다 갈 거다.


어릴적이었다. 노스님이 내게 물었다. "언제 왔느냐?"

"한 달 되었습니다."

"....왜 왔는고?"

나는 말문이 막혔다. 내가 머뭇거리자 노스님이 "아이고 땡땡이, 땡초중 하나 또 늘어났구나'하셨다. 나는 기가 막혀 노스님을 뚫어져라 노려볼 뿐이었다. 그러다 이를 악문 채 노스님의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노스님, 다시 한 번 물어봐 주세요."

"뭘? 기차는 떠났는데."

"무엇하러 여기에 왔느냐? 하고요."

"그래 무엇하러 왔는고?"

"....살려고요. 살아보려고요."

이번에는 노스님이 말문이 막히는가 보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어쭈구리, 요놈봐라, 하시는 눈빛이었다.

"그래, 네놈은 타사시구자(拖死屍句子, 무엇이 그 송장을 끌고 이렇게 왔는가, 를 화두로 삼아봐라,"

하여 타사시구자(拖死屍句子)가 나의 화두가 되었던 것이다. 수행자로서의 한 생. 나 무엇하러 이 사바에 왔던가.

"부처가 되려 하지 말고 먼저 사람이 되어라."

"......"

"인즉시불(人即是佛), 사람이 부처다."

수좌들에게 화두는 천형과 같은 거였다. 살아 있는가 죽었는가. 화두는 성성한가? 노장들이 살아도 산 게 아냐, 산송장이라고 하던 말을 이해 못했었다. 그러나 이제와선 이해가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사람이 되었는가? 시방세계 두루두루 상구보리며 하화중생하였는가.

"너의 화두는 무엇인고?"

"사는 겁니다."

"틀렸다. 다시 일러 보거라."

"잘 사는 겁니다."

문답놀이를 하던 우리는 서로 마주보고 킬킬대며 웃었다. 웃음 뒤에 노사는 수처작주면 원융무애라 하셨다.

"맞다. 깨달아도 산하대지, 깨닫지 못해도 산하대지. 잘 살면 산산물물 온 세계가 본래 면목이로다."

심외무법(心外無法)이거늘 깨달음과 깨닫지 못함을 함께 안은 채 허무한 마음으로 내일 일정표를 보니 병원 예약이 되어 있음을 확인한다. 삼계가 오직 마음뿐이라던 노사의 말씀이 귀에 쟁쟁하다.

창문 밖에 솔바람소리 들린다. 그 솔바람소리에 이어 멀리서 고라니 우는 소리도 들려온다. 가만히 들어보니 산등성이 올라가던 고라니는 목이 쉰 거 같다.

하여 주전자에 찻물을 올린다. 어슬렁거리다 지나는 길에 비승비속이 사는 비사난야(非寺蘭若)에 들러 차나 한 잔 하고 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