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고양】 토요일 아침의 열정들

원동업 <성수동쓰다> 편집장 승인 2021.06.19 09:55 | 최종 수정 2021.06.21 19:54 의견 0

‘열정독서’란 책 모임이 있었다(이렇게 말하는 건, 코로나19 이후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지는 몰라서다). 꽤 오래 지속했던 이 모임에 직접 참여한 적은 없지만, 그들이 엮어낸 책을 갖고 있고, 페이스북이나 기타 인터넷상에서 이런저런 소식도 들었다.

이야기할 책을 정하고, 장소도 고정해놓고, 이야기하고자 하는 ‘누구든’ 참여 가능한 모임으로 진행한다. 매주 진행하면서 한 달에 두 번은 인문서적을 읽고 또 나머지 두 번은 자신이 현재 읽고 있는 책을 이야기를 나눈단다. 그런데 왜 '열정독서'냐고? 모이는 시간이 토요일이고, 그것도 아침 일곱 시라서 그렇다. 그 시간에 도착하기 위해선 달콤한 주말의 시작을 더 일찍 해야 한다. 기꺼이 그걸 지불할 만큼 ‘열정독서’는 가치가 있지 않았을까.

토요일 아침 여덟 시, 나는 ‘열정청소’에 참여한다. 적게 모일 때는 서너 명, 많으면 열 명쯤 된다. 아파트 경비실 뒤편에 청소도구들이 갖춰져 있다. 빨갛게 코팅된 작업장갑, 빗자루와 집게, 쓰레받기들이다. 얼추 모이면 늘 해왔던 대로 삼삼오오로 흩어진다. 근처 공원과 복지관 쪽으로 가는 이들도 있고, 아파트 담장을 빙 둘러 걷는 이들도 있다. 실핏줄이 뻗듯 동네 골목길로도 간다. 대략 30분 정도면 쓰레받기가 가득 차고, 그러면 돌아와 쓰레기봉투에 담는다.

대략 2016년부터 해왔으니 올해로 벌써 5년째. 그저 ‘청소’일 뿐인 이 단순한 일에도 기쁨과 의미가 있을까.

첫째, 참여자들은 작은 뿌듯함을 얻는다. 나가는 길가에 떨어져 있는 담배꽁초와 쓰레기들이 오는 길에는 말끔히 비워져 있다면, 그걸 볼 때마다 마음은 흡족해진다(물론 가끔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불법투기물도 있고, 배수구 안에 수북한 담배꽁초들에 마음도 흐려지지만).

둘째로, 사람들과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다. 서로 즐거이 인사한다. 손발은 천천히, 입은 빠르게 놀리며 대화가 길게 이어진다. 토론보다 수다가 머리를 활성화(?)하는 데는 훨씬 더 좋은 일이라지 않나. 청소를 하다보면 함께하는 사람들로부터 마스크 구입 정보도 듣고, 근처에서 열리는 마켓 등 다양한 소식들도 들을 수 있다. 이들끼리는 서로 음식을 나누기도 한다.

셋째로, 청소를 하면 동네는 더 깨끗해진다. '깨진 유리창 법칙'처럼, 한번 깨끗해지면 동네는 덜 더러워지고, 더 청결해지는 쪽으로 변한다. 동네를 돌면서 마땅히 고쳐야 할 위험한 곳이 발견되기도 하고, 고쳐졌으면 하는 곳도 알게 된다. 구석구석을 살필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질 수 있다는 것도 장려할 만하다.

청소는 언제나 거의 모든 곳에서 이루어져야 할 과제다. 우리는 세수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집안도 쓸고 닦는다. 작업대와 작업장을 치우고 차량에도 청소가 필요하다. 청소를 마쳐놓으면 필요한 언제고 본업을 시작할 수 있다. 청소가 늦어지면 ‘마치지 않은 그 일’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피곤해지는가. 제때 닦인 콘크리트 잔여물은 쉽게 치워질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건 또 얼마나 단단하게 훼방꾼으로 남는가. 청소를 언제 하는가를 보면 청소의 미덕이 더 드러난다. 손님을 맞이하려면 청소는 언제나 우선순위다.

가치가 있는 일들은 반복하고 지속해야 한다. 해가 돋고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사람의 일 또한 그래야 한다. 독서모임이 아니라면 청소모임도 괜찮겠는데, 중요한 조건은 친구들이다. 혼자서는 어렵고 여럿이 함께 하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빼앗긴 이전의 그 귀한 모임들(늦은 밤의 회식이나 술자리는 좀 지양하고), 이제 다시 찾아올 때가 되어간다. 내가 열정을 발휘할 그곳이 어디인가. 또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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