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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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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할 권리
【행복할 권리】 장마, 장대비를 바라보고 있는 너는 누구이고 무엇인가?
관시하인(觀是何人)심시하물(心是何物) 그대는 무엇을 보는 놈인가? 보고 있는 너는 누구이고 무엇인가? 어느 우기, 걸망끈이 어깻쭉지를 파고 들 쯤이었다. 삼십 대 초반이었고 신원불명, 주거부정의 만행중이었다. 슬픔과 허기짐에 지친 비들이 꼬리를 휘휘 돌리며 주룩주룩 내 청춘 속으로 쏟아지는데, 고속버스터미널에 비를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2024.07.23 09:00
행복할 권리
【행복할 권리】 여기까지 오는데 너무 오래 걸렸다
오늘도 쪽배를 타고 깨달음의 바다를 건너려는데 사제(師弟) 둘이 왔다."보이지 않는 것들은 눈에 보이는 것들의 실상이죠?" 불쑥 선문답 같은 걸 던졌다. 쫓기듯 끌리듯 살아온 나는 아무 대답이 없다. '아직도 여정은 멀어. 네 안에 세상이 있는 거지, 세상을 위해 네가 있는 게 아니잖아. 그런데도 눈 뜨면 지옥이지?'하며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2024.07.16 09:00
행복할 권리
【행복할 권리】 우리는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
봄에서 여름으로 오는동안, 뻐국새 그리 울더니 요즘은 앞산뒷산에서 홀딱벗고새가 운다. 검은등지빠귀. 검은등뻐꾸기. 구름 한점 없는 푸른 하늘에 사랑도 홀딱벗고 번뇌도 홀딱벗고, 물처럼 바람처럼, 하며 노래를 불러 희미하게 미소짓는다.오늘은 어디서 헤맬까. 장마가 오기 전에 고추밭 두 번째 줄을 매주어야 하고 고추, 토마토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2024.07.09 09:00
행복할 권리
【행복할 권리】 인생 잘 살다 간다는 거
think & thinking. 새로웠던 한 해가 또다시 반으로 접어들었다. 뭐했나? 피식 웃어본다. 가뭄이다. 뜨거운 햇살에 농작물이 타들어간다.나의 아침 일과는 물 주기다. 비소식은 토요일 날 시작해서 월요일까지 온다고 되어 있다. 극심한 가뭄 뒤에는 꼭 장마가 오곤했다. 물 준다고 주었는데도 곳곳에 고추가 말라 죽은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2024.07.02 09:00
행복할 권리
【행복할 권리】 산이 좋아 산에서 산다
얼마전 도반이 찾아와 바다엘 가자 했다."......뜬금 없이 바다는?" "바다에 나를 놓아주러." 픽 웃었다. '스님아. 그런 너는 어디 있는데?'라는 물음대신 도반의 눈을 보았다. "......가자." "어디로?" 도반이 보챘다. '가긴 어디로 가? 나이 칠십이 다 되어 가지고. 인간아. 바로 여기가 목숨의 바다고 화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2024.06.25 09:00
행복할 권리
【행복할 권리】 사랑하다 죽어버려라
뭐해요?사랑해. 웬일? 바다 씬이 있어 촬영하고 올라가다 생각이 나서요. 무슨 죄가 많은지 고추 끈을 오늘에서야 맸다. 고추 끈을 매는데 삼십 년 지기인 여배우가 왔다. 그녀에게는 여성성과 모성애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소설 안 쓰시고요? 법당에 참배를 하고 나와 고추밭에 서서 묻는다. 되도 않는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2024.06.18 09:00
행복할 권리
【행복할 권리】 감꽃
감꽃문병우 둥근 해 밑에서 고독, 했더니 해가 고독 글자를 태워버린다 홀로라는 문장도 믿지 말거라 외롭다는 문장 그립다 할지니 장독에 감꽃 몇 떨어져 보이나 보여서 어찌할거나 해, 나, 감꽃, 장독 무얼 주인으로 적을거나 좁아들어도 非문장 늘어나도 非문장 고독, 술안주는 되나요? 안주는 하되 감꽃 놀라게는 하지마라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2024.06.11 09:00
행복할 권리
【행복할 권리】 적심(摘心), 고추 방아다리 따기
"음, 고추가 많이 컸네."앉을뱅이 동그란 의자를 놓고 고추밭에 앉았다. 올해, 고추는 그리 많이 심지 못했다. 고추 모종 여덟 판을 심었다. "믿음은 종자요, 고행은 슬픔(悲)이며, 지혜는 내 멍에다. 호미, 부끄러움은 괭이자루이며, 의지는 잡아주는 줄, 생각은 호미날과 작대기이다." 뻐꾸기들이 학명스님이 쓴 선원곡을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2024.06.04 08:25
행복할 권리
【행복할 권리】 나는 왜 매번 부처가 되는 걸 실패할까
하안거 입제다. 어제였다. 산밭에서 고구마를 심고 있는데 사형 두 분이 먼 길 오셨다. 그리고 물음을 던진다. 하고 대답하려다, 라고 대답했다. 농사에 그렇게 시간을 많이 쏟고 언제 수행하려는 거냐는 물음이다. 속납 일흔 넷의 사형이 말문이 막히는지 빙그시 웃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2024.05.28 08:39
행복할 권리
【행복할 권리】 다락방이 있는 집
다락방이 있는 집-homo cupiens-* 김추인 깊으나 깊은 내 안, 무허가의 오두막 한 채 그대 모르지 늑골 밑 붙박이로 지어 숨긴, 길 없는 외딴집 비 오면 오는 대로 오도카니 빗소리나 듣다가 폭설 흩날리면 사무치게 그대 꺼내 안고 눈폭풍 속을 걸어 나가는 아마도, 그래 아마도 오래 반짝이다 사윌 설화 한 토막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2024.05.21 09:00
행복할 권리
【행복할 권리】 센베과자
센베 과자조현석 새벽녘 이불 박차고 나와 머리맡에 놓인 누런 봉투를 연다 부채처럼 펼쳐진 바삭한 과자를 점점이 김가루가 뿌려진 바깥부터 야금야금 부숴 먹는다 너무 일찍 일어나 단칸방 곳곳을 누비며 소란스럽던 어린 나를 위해 아버지가 간밤에 사들고 온 것이다 달콤하고 맛난, 졸린 눈을 비비며 먹는 과자 밤새 방안 가득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2024.05.14 09:58
행복할 권리
【행복할 권리】 작은 참회
봄나물을 캐며이향란 몇 해째인가 올해도 봄의 한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지나는 동안 한 번도 들여다보지 못한 흙의 심정을 헤아린다 그가 어렵사리 내놓은 것으로 먹거리를 삼겠다고 봄날 한 순간이 생의 전부인 양 등까지 굽히고 그렇게 나물을 캐다보니 안주하지 못한 채 오래도록 몸 속을 유랑하던 슬픔 하나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2024.05.10 09:00
행복할 권리
【행복할 권리】 그 어떤 우두커니가 되기 위해
눈사람 김지헌 저 우두커니를 보고 있으면 지나간 누군가의 생을 보는 것 같다 불 꺼진 저녁의 외딴집 눈 코 입 떨어져 나간 저 우두커니를 보면 청맹과니처럼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할 말이 많아도 입 꾹 다문 채 소신공양 하듯 스스로를 무너뜨리며 존재를 지워가는 사람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2024.05.07 09:28
행복할 권리
【행복할 권리】 화엄의 꽃송이
3월 김도연 목련꽃 하얀 감탄사가 쏟아져 심장에 압착된다 가슴속에 가득했던 경이로운 별들이여 죽었다고 믿었던 것들과 살아있다고 생각했던 것 모두 착각이었으니 무덤에서 태어나 욕망으로 한 생을 이룬 꽃이여 이제 그만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2024.05.03 09:00
행복할 권리
【행복할 권리】 상주의 미소
상주의 미소이 위 발 아버지 등에 올라타고 문상에서 돌아오는 길 밤의 속도는 너무 느리다 눈먼 가로등은 두 팔을 벌린 전봇대를 보지 못하고 빗자루 같은 가로수는 달이 사라진 하늘만 쓸고 있는데 가든지 서든지 쉼 없이 깜박이는 황색의 신호등은 내 눈을 닮았다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2024.04.30 09:00
행복할 권리
【행복할 권리】 의자
의자이선이 무릎을 접어 그늘을 앉히고 뒤를 살피는 이 있다 가슴께로 눈을 낮추고 심장에 귀를 감춘 채 눈으로 듣고 귀로 다독이는 이 있다 등 돌려 떠나간 자들 등 내밀며 돌아올 때까지 등을 줍는 사람이 있다 주저앉은 삶에 골몰하느라 오래 앉았다 일어서면 절 받는 마음이 절하는 마음에게 다녀오느라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2024.04.23 09:00
행복할 권리
【행복할 권리】 행복한 스님이 되고 말았다
산문 닫힌 저녁박완호 정암사 수마노탑 목전에서 주저앉고 마는 새들, 적멸은 아득하고 먹먹해지는 새 그림자 따라 고갯마루를 넘는 사내의 뒷모습이 흐릿해진다. 함백산 만항재 운천고도 천삼백삼십 미터 공중을 가로지르는 송전탑 전선을 무감각하게 흐르는 불온한 감각들, 석탑 모서리마다 아슬하게 맺히는 풍경소리 밥상머리에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2024.04.16 09:00
행복할 권리
【행복할 권리】 그런 깨달음은 없다
손오공 같이 근두운 구름을 불러 하늘을 날고 요술 지팡이를 휘두르는 그런 깨달음은 없다. 신심은 신앙이 아니고 깨달음을 향한 마음이다. 마음은 참 오묘奧妙하다. 백 명이라면 아니 천 명, 만 명 중에 선택하라면 한 사람도 선택하지 않는 그런 길을 나는 열정적으로 왔다. 그렇게 젊은 날, 새벽에 법당에 들어가 앉았는데 법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2024.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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