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특별기획】학교 안 광복은 아직? 경기도 학교 내 일제 잔재 찾아본다

일본 군경 심볼 유사 도안 ‘교표’ 사용
친일 예술가 만든 ‘교가’ 여전히 불려
학생들 역사의식 형성에 악영향 우려
‘결과’보다는 ‘과정’ 집중한 청산 필요

김아름 기자 승인 2021.08.14 18:38 | 최종 수정 2021.08.14 21:41 의견 0
1945년 8월 15일 서대문형무소에서 풀려난 애국인사.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8·15광복(八一五光復)]


지금 눈 나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광야’ (이육사作) 중에서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이 불던 그때, 지금은 아득하지만 그럼에도 따스한 봄은 반드시 올 것이라 믿으며 희망의 씨앗을 뿌렸던 사람들의 피와 눈물로 이룬 광복. 그들이 그렇게 기다리던 광복은 이뤘지만, 광복 후 76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곳곳에 일제 흔적이 남아 있다.

아이들이 배우고 생활하는 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은 우리 말과 글을 말살하고 황국신민화 교육을 주입하기 위해, 또 철저한 감시 통제 체제를 만들기 위해 ‘학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상당한 공을 들였다. ‘학교’라는 공간을 활용하면 최말단에서 직접 사람들과 대면하며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민족의식을 파괴하는 ‘교육’을 우리에게 ‘시혜하듯’ 시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여러 방면으로 어찌나 공을 들였던지 그 잔재는 광복 후 7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학교 곳곳에 남아 있다.

교육 용어부터 교가, 교훈, 시설 등 그 형태도 다양하다.

예를 들어 ‘훈화’의 경우 상사가 부하에게 훈시한다는 일제 강점기 군대 용어다. ‘수학여행’도 민족정신을 해하기 위해 조선인 학생들을 일본 등으로 보내던 것이 그 시작이다. 친일 작곡자가 만든 교가를 부르고, 이른바 '욱일기'를 떠오르게 하는 교표가 걸려 있는 곳도 있다.

학교 안 일제 잔재는 우리나라 미래를 이끌어 갈 학생들에게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함께 이를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하기 위해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이에 8·15 광복 76주년을 맞아 고양시를 중심으로 도내 학교에 남은 일제 잔재를 살펴보고자 한다.

기념물부터 교가까지 다양한 형태로 존재

경기도교육청은 3·1운동 100주년이었던 2019년을 기점으로 학교 내 일제 잔재 청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2020년 1월 10일 ‘독립운동사교육 활성화 조례’를 공포하고 일회성이 아닌 3개년에 걸쳐 학교 안 일제 잔재 청산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

경기도교육청이 발간한 ‘경기도 학교 일제 잔재 전수 조사 보고서’ 표지.


그러나 여전히 경기도 학교 곳곳엔 다양한 모습의 일제 잔재가 남아 있다.

지난 11일 경기도교육청이 일제 잔재 기초자료 확보를 위해 도내 2,500여 개 학교를 대상으로 조사, 발표한 ‘경기도 학교 일제 잔재 전수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경기지역 12개교에 친일인사 기념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1개교가 욱일문, 일장기, 일본 군경 문양과 유사한 교표를 사용 중이다. 또한 28개교는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에 심어지기 시작한 일본 철쭉 영산홍을 교화로 지정하고 있다. 친일 예술가와 관련된 교가를 사용하는 초·중·고등학교는 68개교에 이른다.

도내 12개 공립학교 내 친일인사 비석 세워져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도내 12개 공립학교에 설치된 친일인사 비석이다.

이들 비석은 대부분 학교 운영과 발전에 관한 공덕비 형태지만 해당 인물의 친일 행적은 안내되지 않았다. ‘일제 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돼 있는 민병석이 그 대표다. 민관식, 민병석 창립 공덕비는 안성 광선초에 설치돼 있다.

경기도 내 학교의 친일인사 비석 비치 현황. [출처 : ‘경기도 학교 일제 잔재 전수 조사 보고서’ 17P]

학교 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상’도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국가가 추진하는 방향을 대표하고 민중을 국가에 길들이며 권력을 증폭하는 수단 중 하나로 동상을 설치하는 것은 메이지 이후 서구로부터 일본에 도입된 방식이다. 일제 강점기엔 황국신민으로서 의식교육을 위해 학교 기념물로 동상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특히 인물 동상은 일제 강점기 소학교 도덕 교육의 하나로 ‘모범적인 국민상’을 주입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책 읽은 소녀상’도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보고서는 1930년~40년 조선 미술전에 출품된 여성 인물화 중 가장 인기가 있었던 주제가 실내 여인상, 그중에서도 실내에서 여성이 책을 읽고 있는 ‘여성독서도’였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이 주제는 당시 조선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유행하던 것이었다고. 다시 말해 '책 읽는 소녀상'은 ‘식민지 근대성’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책 읽는 소녀상'(왼쪽, doopedia)과 평택 웃다리문화촌 내 동상(오른쪽, 구 금각초). [출처 : ‘경기도 학교 일제 잔재 전수 조사 보고서’ 10P]


'책 읽는 소녀상'은 현재 고양시 내유초, 덕이초를 비롯해 48개교에 세워져 있는데 동물상을 제외한 동상 가운데 '생각하는 사람'(15%) 다음으로 많다.

물론 이러한 동상이 모두 일제 잔재는 아닐 것이다. 다만 학교 내 기념물은 학생들에게 의도된 기억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작용하는 만큼 역사적 배경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학교 교육철학 담은 교표에도 일제 잔재 남아

교표는 학교의 대표적인 시각 상징물로 해당 학교의 교육철학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또한 학교 구성원의 소속감과 정체성을 고양하는 역할을 한다. 단순히 디자인 요소 중 하나로 볼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경기도 학교 일제 잔재 전수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1개교 교표에 일제 잔재 문양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욱일문, 일장기, 일본 군경 유사 심벌마크, 일본기업 유사 심벌마크 등 그 형태도 다양하다.

먼저 욱일문은 일본 왕실의 국화 문장과 일장기가 결합한 문양으로 제국주의 시기의 일본 군대의 상징이 됐다. 현재에도 일본 경찰 배지, 경찰공로장, 소방공로장에 욱일문이 활용되고 있다.

욱일문 도안과 유사한 교표를 사용하는 학교는 2019년 기준 10개교였다. 이 중 양평 양동초, 화성 오산 정남초는 교육공동체와 지역사회가 함께 민주적 토론을 거쳐 교표를 교체했다.

교표 위쪽 반원형 빨간색 햇살 문양을 사용하던 고양시 무원초도 학부모, 학생, 교직원이 합심해 교표를 변경, 2021학년도부터 새로운 교표를 사용하고 있다.

고양시 소재 무원초등학교 교표 교체 전후 비교.


전범 기업으로 분류된 미쓰이 그룹 로고인 우물 정(井)자를 모티브로 한 마름모꼴 외곽과 그 안에 삼(三)선을 넣은 형태와 유사한 교표를 사용하고 있는 학교도 있다. 성남 복정초는 교표 가운데 ‘복’자를 형상화했지만 마름모꼴 외곽이 미쓰이 그룹과 유사하다. 부천 삼정초등학교는 미쓰이 그룹 로고 복사본으로 봐도 무방하다.

경기도 내 일본기업 로고 유사 교표 사례. [출처 : ‘경기도 학교 일제 잔재 전수 조사 보고서’ 32P]


보고서는 도내 112개교가 활용하고 있는 월계수 교표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월계수는 올림픽에서 승리의 의미로 활용되고 있어 월계수 잎을 무조건 일제 잔재로 보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고 전제한 후, 그러나 월계수는 일제 강점기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이고, 본래 일본이 러일전쟁의 승전을 축하하는 개선문을 장식하기 위해 사용했다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보고서에서 언급한 대로 문예에서의 권위와 전쟁 승리의 명예, 국력의 우월한 힘을 상징하는 월계수가 배움의 터인 학교에서 어떤 교육적 의미와 가치가 있는지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다수 학교에서 친일 예술가 교가 부르고 있어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의 친일·친나치 관련 자료가 공개돼 파장을 일으켰다. 애국가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친일 예술가와 관련된 문제는 비단 ‘국가’만이 아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부르는 ‘교가’에서도 친일 예술가를 찾을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경기도교육청 소속 초·중·고등학교 2,413개를 대상으로 교가를 조사한 결과 친일 잔재 교가를 사용한 학교는 초등학교 13개교, 중학교 22개교, 고등학교 33개교로 총 68개교이다.

고양시의 경우 백마초, 일산중, 일산고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친일 예술가인 김성태, 김동진이 참여한 교가를 사용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고양시 소재 백마초등학교 교가 악보. 친일인사로 등재된 김성태가 작곡한 것으로 알려졌다. [악보출처 : 백마초 홈페이지]

일부에선 작사·작곡가의 친일 행적은 비판하되 친일 색채가 담기지 않은 노래는 괜찮지 않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가치관과 작업물을 완벽하게 분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친일 색채가 드러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작업물엔 그들의 사상이 반영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 보고서에서 지적한 대로 군국주의를 옹호한 친일 예술가들의 사상은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했기 때문에 인권적 측면에서도 문제가 된다. 친일 작사가나 작곡가는 대다수가 음악 활동을 통해 일본 제국주의를 찬양하거나 군국주의 야욕을 정당화했다. 광복 후에도 자신의 죄를 책임지기는커녕 필요와 인적 공백이라는 명목하에 예술 활동을 지속했다. 올바른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성장해야 할 아이들에게 이런 이들이 만든 교가를 부르게 둔다는 것은 여전히 가슴 아픈 일이다.

‘결과’ 아닌 ‘과정’에 집중한 일제 청산 중요

마지막으로 교훈을 살펴보면 일제 군국주의에서 강조했던 교훈 ‘근면·성실·정직·일신·애국·순결’ 가운데 ‘근면·성실’(24.2%)이 여전히 가장 많이 교훈에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학교 내 기념물은 물론 교표, 교훈, 교가 등 오랜 기간 많은 이들이 사용해온 것들을 바꾸기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또한 학교는 학생, 교직원, 학부모, 지역사회 등 다양한 관계가 얽혀 있는 곳이다. 그만큼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때문에 위로부터, 무조건, 단번에 철거하고 교체하기보다는 학교 및 지역 구성원들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민주적인 논의를 거쳐 최종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청산 과정 전체를 공유해 모두가 참여하는, 살아있는 역사 교육과 실천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평택 현화고등학교는 학생과 교직원이 2년간 모금활동을 벌여 '평화소녀상'을 교내에 건립했다. [사진출처 : 현화고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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