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종수의 수읽기】 예감

손종수 승인 2022.03.03 09:04 | 최종 수정 2022.03.05 19:45 의견 0

지난 3월 2일 대선 전 마지막으로 열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사회 분야' 3차 대선후보 법정 TV토론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공약을 두고 공방을 이어갔다. 토론회 이후 두 후보는 3일 오전 후보 단일화를 전격 선언했다. 사진은 KBS 화면 캡쳐.


대선후보들의 마지막 토론을 보고 촌평을 쓰려다가 무엇인가 찜찜해서 그냥 밤을 보냈다. 원래 쓰려던 내용은 ‘달라진 안철수, 정치적 성장과 차기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것이었는데 토론이 끝나고 나서 헤어지는 모습을 보는데 뭔가 쎄-한 예감이 귀 언저리 후두부를 강타하고 지나갔다. 이거, 뭐지?

토론은 심상정, 안철수 후보가 잘했다. 심상정 후보는 ‘대화상대를 지나치게 몰아붙이는 치명적 단점’을 제외하곤 나무랄 데가 없는 정치인이다. 그게 왜 치명적 단점인가? 진보성향 정치인들의 어쩔 수 없는 오랜 습성일 수 있는 ‘도덕적 우월성’은 동등한 대화와 협상에 장해가 되기 때문이다.

‘청수무대어(淸水無大魚)’, 맑은 물엔 큰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정치는 타협이다. 정치적 지향점이 다른 양방이 모두 100% 만족하는 협상은 불가능하다. 토론이 극에 이르고 팽팽하게 대치할 때 비로소 한발씩 물러서는 타협이 필요한데, 이때 심상정 같은 진보 정치인들은 습관적으로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는 도덕적 우월성을 앞세워 상대를 압박하고, 결국 협상은 깨진다.

심상정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진보성향 정치인의 한계가 거기에 있는데, 그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주장이나 선택이 대개 도덕적으로 옳다는 데 있다. 쉽게 말해서 ‘내가 분명히 옳은데 왜 물러서야 하지?’ 그런 관념을 버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치는 도덕적이지 않고, 그냥 타협도 아니라 ‘나는 싫고 저쪽은 좋은 선택’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진보 정치인들은 그 선택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점진적인 개선보다는 파격적인 개혁을 원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협상이 아니고 제로섬게임이기 때문에 협상이 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상정 후보에게 정치는 시민운동이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그렇다고 더러워지라는 말도 아니다. 진흙탕에서 연꽃이 피어나는 이치를 생각하라고 덧붙이고 싶다. 정치적 타협이란 그런 것이다. 많은 유권자들이 가장 이상적인 정치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의당과 심상정 후보를 응원하면서도 표를 주지 못하는 현실을 자각하지 못하면 더 이상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단언한다.

안철수 후보, 모욕적인 단일화 결렬과정을 견디고 기이할 정도로(나중에 알고 보니 이유가 있었지만) 침착하고, 토론내용도 태도도 시종 유연했다. 내가 그동안 잘못 판단했나? 저런 대인배 기질이 있는 후보였나? 감동할 뻔했다.

그런 후보토론 촌평을 쓸 생각이었다. 그런데 토론이 끝나고 대인배답게(?) 단일화 결렬 내용을 까발려 모욕을 준 윤석열 후보와 웃으며 악수를 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저거, 뭐지? 저 마주 보는 웃음, 똑같은 복장과 같은 색깔의 넥타이.

확신할 수 없는 불쾌한 예감이 들어 쓰려던 촌평을 접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사전투표를 하루 앞두고,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극적인 단일화’ 뉴스를 보았다. 그 쎄한 예감, 이거였구나. 왜 국힘당은 단일화 결렬의 후보 기자회견까지 해놓고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했을까, 모든 의문이 한순간에 풀렸다.

안철수 후보 쪽에 두 가지만 지적한다.

첫째, 불의의 사고를 당한 유세버스 망자 앞에서 ‘그 유지를 받들어 완주하겠다’는 말은 하지 말았어야 한다. ‘국민의당은 유서 써놓고 유세버스 타냐?’는 패륜적 망언까지 들으며 완주를 선언했다. 모욕을 감수하면서까지 망자를 팔아치운 배신이다.

둘째, ‘저는 국민 여론조사 이외에는 어떤 조건도 말한 적 없다’는 말도 하지 말았어야 한다. 이태규 총괄선대본부장은 국힘당의 단일화 결렬 기자회견을 두고 ‘손목이 잘리는 아픔’ 운운하며 국힘당을 비난했었다. 그런 말들이 모두 쇼였다는 걸 스스로 웅변한 거다. 국민을 기망하는 치밀한 쇼에 감동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단일화 발표 내용을 보니 통합내각, 공동인수위원회, 대선 후 합당 이야기가 나왔다. 안철수 후보가 초지일관 외쳤던 국민 여론조사는 흔적도 없는 백기투항이다. 이러려고 그렇게 줄기차게 완주를 외쳤나? 안철수 후보가 토론회에서 주장했던 소수와 약자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다당제, 중대선거구제, 결선투표 개헌 합의 등은 어디에도 없다. 자신의 소신과 주장 중 하나도 관철된 게 없는데 ‘극적 단일화’? 이게 그가 말한 어젠다인가? 헛웃음만 나온다. 그는 스스로 ‘초딩도 과분하다’는 사실을 가장 극적인 방법으로 입증했다.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 成事在天)’이란 말이 있다. 일을 꾸미는 건 사람이지만 그 일을 이루는 건 하늘에 달렸다는 말. 대선국면에서 하늘은 ‘국민’이다. 그 말이 입증되는 대선이 되기를 바란다.

대한민국 국민은 더이상 이런 ‘너무 치밀해서 어설픈 정치쇼’에 속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그동안 겪은 정치적 풍파가 너무 크다. 국민은 선거에 이기는 짓이라면 차떼기로 돈을 실어나르고, ‘제일주적’으로 규정한 북한에 총을 쏴달라 청탁하고, 국민여론을 조작하는 댓글조작단을 가동하고 발각되니 ‘셀프감금’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온갖 정치적 악행을 일삼아 권력을 장악한 집단을 촛불로 탄핵했고, 표로써 응징했다.

나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말을 믿는다.

**편집자 주 : 본 칼럼은 필자 개인의견이며,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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