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종수의 수읽기】 모순

손종수 승인 2022.03.05 19:08 | 최종 수정 2022.03.05 19:44 의견 0


모순(矛盾). 창과 방패를 뜻하는 이 용어는 중국 초나라 상인이 창과 방패를 팔면서 ‘이 창은 어떤 방패도 막을 수 없다’하고, 동시에 ‘이 방패는 어떤 창도 뚫지 못한다’고 한 말에 유래됐으며, ‘어떤 사실의 앞뒤, 또는 두 사실이 이치상 어긋나서 서로 맞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다.

심야의 기습적인 윤석열,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로 대선국면이 시끄럽다. 솔직히 말하면 놀랐다. 단일화가 놀랍다는 말은 아니다. 후보 단일화 자체는 거대양당이 표를 나눠 가질 수밖에 없는 제도의 선거에서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왜 놀랐느냐? 두 후보, 특히 안철수 후보를 지지해온 유권자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절차가 생략된 급진적인 ‘묻지 마 단일화’였기 때문이다. 안철수 후보의 사퇴가 전제됐으니 윤석열 후보의 지지자들은 대체로 환호작약할 것이므로 논외다.

심야의 단일화 직전까지, 아니 모든 것이 밝혀진 지금 생각하면 실소를 머금게 하는 마지막 토론에서 똑같은 빨간 넥타이를 매고 나오기 전까지 두 후보는 극렬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그동안 물밑으로 어떤 협상이 진행됐는지는 모르지만 토론 직전, 국힘당 윤석열 후보가 예정된 유세를 취소하고(지역 지지자들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단일화 결렬을 발표하고, 그 내용을 낱낱이 까발린(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다) 이후 두 당의 대치는 서로 칼끝을 심장에 겨눈 것과 같은 적대적 상황이었다.

국민의당 이태규 총괄선대위원장은 ‘손목을 잘리는 아픔’을 토로하며 협상내용을 까발린 국힘당에 뼈저린 배신감을 드러냈고, 안철수 후보는 지역유세에서 윤석열 후보를 거론하며 ‘무능한 후보를 통한 정권교체는 적폐교체’라며 ‘윤석열에게 표를 주면 1년 뒤에 손가락을 자르고 싶어질 것’이라는 맹렬한 적의를 드러냈었다. 국힘당은 안철수 후보의 말이 ‘이재명, 윤석열 두 후보를 모두 거론한 것’이라며 물타기를 시도했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안철수 후보가 윤석열 후보를 거론하는 영상이 확실하게 남아있다. 그랬던 사람들이 우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지지자들에게 아무런 언급도 없이 심야에 전격적으로 단일화를 결행한 것이다.

안철수 후보를 끝까지 지지한 유권자들이 받았을 마음의 상처와는 별개로, 앞에서 언급한 말처럼 단일화 자체는 비난할 일이 아니다. 문제는 단일화의 시기와 절차, 그리고 합의된 내용이다. ‘바둑은 타이밍’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공격이나 방향전환 등 중대한 실행은 반드시 적절한 때가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으면 대세를 그르칠 수 있으니 착수를 시의적절하게 하라는 뜻이다.

윤-안의 단일화는 때가 늦은 정도가 아니라 최악의 시기에 나왔다. 투표용지에 안철수 후보의 이름이 인쇄됐고, 재외자(약 16만 명)의 투표가 끝났으며, 사전투표가 하루 앞으로 다가온 상황의 단일화는 안철수 후보를 지지한 재외자의 표를 사표로 만들었다. 재외자들이 투표하기 위해 차와 비행기를 타고 장거리 이동하는 불편을 감수한다는 사실을 사전투표에 나설 지지자들의 혼란을 단 한 순간이라도 생각했다면 결행할 수 없는 최악의 타이밍이었다.

민주당의 허를 찌른다는 국힘당의 전략으로는 최상의 시기였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제물로 안철수 후보와 국민의당, 그리고 지지자들은 철저하게 농락당한 것이다.

어쨌든, 단일화는 이루어졌으므로 그들의 합의문 발표에 귀를 기울여봤다. '미래, 개혁, 실용, 방역, 통합'이라는 다섯 개의 키워드로 엮은 추상적 합의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 ‘정권교체의 대의를 위해 비난을 각오하고 합의했다’는 안철수 후보의 진정성은 의심의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왜냐?

안철수 후보는 마지막 토론까지, 소수자와 약자들의 민의를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다당제와 중대선거구제, 결선투표제도를 골자로 하는 선거제도 개혁을 주장해 이재명, 심상정 후보의 공감은 물론, 중도성향 지지자들의 공감을 끌어냈었다. 특히 이재명 후보는 ‘실천하지 않는 말뿐이라 신뢰할 수 없다’는 심-안 후보의 말에 ‘민주당이 그래왔음을 인정한다. 반성한다. 의원총회 결의를 요청해 신뢰에 부응하겠다’고 말했고 실제로 민주당은 그렇게 했다. ‘매번 말 바꾸는 민주당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의총에서 결의한다면 모를까…’라며 단초를 제공한 사람은 안철수 후보였다.

그래놓고 토론에서 끝까지 거대양당을 방지하기 위한 다당제, 결선투표 제도개혁에 동의하지 않은 윤석열 후보와 전격적으로 심야 단일화를 결행한 것은 지독한 모순이다. 거듭 말하지만, 단일화 자체는 좀 충격적이었다고 해도 시기와 절차마저 순삭한 졸속이었다 해도 그 내용에 안철수 후보가 마지막까지 주장해온 소수약자들의 민의를 수렴하는 정책들이 제대로 반영됐다면 적어도 나는 이 단일화의 공능을 인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윤-안의 단일화는 허울 좋은 말뿐 내용 없는 빈 껍데기였다. 공동인수위원회, 통합내각, 대선 후 합당이라는 단일화의 조건은 거대 양당을 더욱 공고히 하는 최악의 합의다. 실망한 안철수 후보 지지자들의 울화를 그대로 담아 말하자면, 결국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는 1. 사퇴함으로써 막대한 선거비용 절감(‘안철수 같은 부자에게 그 정도쯤’이라고 말하지 마라. 대개 부자들이 더 인색하고 쪼잔하다)과 2. 어차피 당선과 거리가 먼 지지율을 팔아넘겨 상당한 지분을 보장받은(국무총리와 일부 행정부 인사권, 합당 후 당직자 인사 정도 예상) 야합에 불과하다.

국민의당 홈페이지는 안철수 후보를 비난하는 글이 폭주하고 탈당 선언이 쇄도해 한때 마비가 될 정도였다고 한다. 안철수 후보는 뒤늦게 자필편지를 쓰고 지지자들 달래기에 나섰다. 그 자리에 후보 사퇴에도 불구하고 지지한다는 남녀를 대동하고 소통에 나섰으나 진정성에 의문표를 붙이지 않을 수 없다. 누구를 위한 소통인가?

지지율 10% 안팎의 후보가 ‘끝까지 완주해 당선되고 좋은 정치를 펼치기를 바랐다. 사퇴해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끝까지 지지한다’는 청년의 말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정말 안철수 후보가 당선된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비이성적인 맹종이다. 후보조차 그 가능성을 부정하고 사퇴했는데?

나는 안철수 후보를 끝까지 지지한 사람들의 마음은 당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안철수 후보가 주장해온 중도성향의 정책을 지지하는 민의가 이만큼 있다는 것을 표로써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대양당이 그런(거대양당 사이에서 결정력을 갖는) 민의를 두려워하고, 결국 다당제, 결선투표, 중대선거구제 같은 제도개혁을 실행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힘으로써 작용하기를 바랐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는 게 진정한 민주개혁과 발전 아닌가?

그런 소중한 선의를 저버렸기 때문에, 안철수의 단일화는 나쁜 야합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뒤늦은 소통의 자리에는 어차피 끝까지 지지하겠다는 열성 추종자보다는 불편하더라도 단일화를 반대하고 비난한 지지자를 초대해 자신의 행위에 대한 당위를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옳았다. ‘닥치고 지지자’를 불러들인 소통으로 보여준 안철수 후보의 이미지는 ‘끝까지 용렬하고 비겁한 태도’였다.

역풍을 확신한다. 야합을 단죄하는 현명한 유권자들에 의한 거대한 역류가 일어날 것이라 믿는다. 그것이 34년 11개월의 일제를 견디고 뿌리 깊은 친일후예들의 군부독재와 기득권 체제에 저항해온 대한민국의 민의다.

*** 뱀발- 검찰개혁을 무산시키고 법무부의 수사지휘권 폐지, 검찰의 독자적 예산 편성, 고위공직자 수사권 회수, 경찰송치사건 검찰 직접 보완수사 등 검찰 권력을 강화하겠다는 검찰공화국의 공약을 내건 불의한 집단에게 이 나라를 맡겨서는 절대 안 된다.

**편집자 주 : 본 칼럼은 필자 개인의견이며,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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