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기억】산에 언덕에

_신동엽의 금강

유성문 주간 승인 2022.04.14 09:00 | 최종 수정 2022.04.14 13:22 의견 0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훍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전문

곰나루 가는 길 언덕 소나무숲 사이에 있는 웅진사는 곰을 모신 사당이다. 사당 안의 돌곰상은 1975년에 곰나루 부근 둔덕에서 발견되어 지금은 국립공주박물관에 모셔져 있는 돌곰상을 본떠 새로 조성한 것이다. ⓒ유성문(2006)

곰냇골 산허리 동굴에 암곰 한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짝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곰나루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 한 사람을 납치하여 같이 살게 되었다. 먹을 것을 구하러 나갈 때에는 큰 돌로 굴 문을 막아놓곤 했다. 여러 해를 사는 동안 새끼 둘까지 낳게 되자 이제는 도망가지 않겠지 하는 마음에 굴 문을 열어 놓고 먹이를 구하러 갔다. 그러나 돌아와 보니 남자는 벌써 도망쳐서 나루를 건너고 있었다. 암곰은 새끼들을 데리고 쫓아가서 울부짖었으나 남자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슬피 울던 곰은 그만 새끼들과 함께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곰나루로 가는 솔밭길에 진달래가 피었다. 그 꽃, 한 시인을 위해 피었으리라. 봄이 오면 유독 그리워지는 이름, 신동엽.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 땅에 봄만을 남겨놓았다. 오지 않아도 그리움으로 내내 기다릴 수밖에 없는 그 봄을. 솔밭길이 끝나는 곳에 나루가 열린다. 하지만 배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공주보(洑)의 콘크리트빛 그림자가 강물 위로 길게 몸을 늘이우고 있다. 공연히 ‘체수가 작으면서도 대범하고, 겉으로 유순해 보이면서도 안으로 강했다’(구중서)던 그가 보고 싶어진다. ‘이야기하는 쟁기꾼’이.

백제,/ 옛부터 이곳은 모여/ 썩는 곳,/ 망하고 대신/ 거름을 남기는 곳// 금강,/ 옛부터 이곳은 모여/ 썩는 곳,/ 망하고 대신/ 정신을 남기는 곳// 바람버섯도/ 찢기우면, 사방팔방으로/ 날아가 새 씨가 된다 –신동엽 <금강> 중에서

구드래나루에서 바라본 백마강. 돛 없는 배들은 속절없이 추억 위를 떠다닌다. ⓒ유성문(2006)

공주 곰강(금강의 ‘금’은 ‘곰’의 사음이다)은 부여에서 백마강이 된다. 백마강 역시 전설의 강이다.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할 때, 용이 되어 사비강을 지키는 백제왕 때문에 더 이상 진격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당나라 장수인 소정방이 용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가 백마라는 걸 알아내, 백마를 낚싯대에 꿰어 사비강가 바위에서 용을 낚아 잡았다. 이때부터 그 강을 백마강이라고 하고, 용을 낚은 무릎 자국이 남아 있는 바위는 조룡대(釣龍臺)라고 부른다. 백마강 전설은 낙화암에서 절정을 이룬다. 망하고 대신, 정신을 남긴다. 거름이라도 남긴다.

백마강 기슭에 세워져 있는 시인의 시비(詩碑)는 생전의 시비(是非)만큼이나 한동안 곤욕을 치러야 했다. 시인이 작고한 후 1주기(1970)를 맞아 유족과 친구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단출한 시비를 이곳에 세웠으나, 1987년 대선을 앞두고 난데없이 바로 옆에 보기에도 위압적인 반공애국지사추모비가 들어서 시비와 시비를 세운 이들의 마음을 무색하게 했다. 그 숨은 의도야 뻔했다. 다행히 2014년 말 추모비는 다른 공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번에는 대신, ‘반공애국지사추모비 이전설치안내’ 비석이 들어섰다. 그 끈질김이란. 이 또한 망해 거름이라도 남기려는 것인지.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속에 살아갈지어이//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신동엽 시비 <산에 언덕에> 중에서

신동엽 생가. 부여 동남리의 생가는 한때 남의 소유가 되었던 것을 미망인 인병선(시인·짚풀생활사박물관 관장)이 되사서 복원한 것이다. 옛 모습은 잃어버렸지만 아사달 아사녀의 기억만으로도 소중한 곳이다. ⓒ유성문(2006)

언제 다시 남북이 ‘중립의 초례청’ 앞에 마주할 것인가. 부디 그때에는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놓은 채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그리하여 이 땅의 모오든 쇠붙이는 가고,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을지니.

봄은/ 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 오지 않는다// 너그럽고/ 빛나는/ 봄의 그 눈짓은,/ 제주에서 두만까지/ 우리가 디딘/ 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 겨울은,/ 바다와 대륙 밖에서/ 그 매운 눈보라 몰고 왔지만/ 이제 올/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우리들 가슴 속에서/ 움트리라// 움터서,/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들/ 눈 녹이듯 흐물흐물/ 녹여버리겠지 –신동엽 <봄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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