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범 작가/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2.06.03 12:58 | 최종 수정 2022.06.03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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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인생의 비밀을 알았다면
나는 이렇게까지 멀리 떠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다른 것을 선택했을 것이다.
모르기에 우리가 떠나왔듯이 떠나가는 것이다.
놓고 두고 비우고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렇게 세상살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가고 가고 가는 중에 알게 되고
행하고 행하고 행하는 중에 깨닫고저
다시 새로운 여행, 새로운 출발의 여정을
떠나는 것이다.
첩첩산중 솔바람 찾아온 이들을 보면 때꺼리가 없어 쌀을 구하려다 발걸음한 이, 죽음을 앞두고 평화를 구하러 오는 이, 권력을 가진 자, 부를 이룬 자, 명예로운 자들도 다 만난다. 그러나 진정 행복하다는 이는 거의 없다. 밥때가 되면 산골암자의 밥상은 누구에게나 똑같다.
“자연주의자인 내게 오셨으니 우리 함께하는 동안 핸드폰 무음(無音)으로 합시다.”
거의가 내 말에 따라준다. 그러면 푸른 녹음, 새소리가 들리고 보인다. 멈춰야 보이고 들리는 것들. 국, 그리고 찬 없는 밥에 텃밭의 상추와 민들레, 고들빼기, 고추를 뜯어 된장 혹은 고추장, 고추장에 된장을 섞은 쌈장에 쌈을 노소 빈부귀천 없이 둥그렇게 앉아 밥을 흘깃거릴 것도 없이 우걱우걱 먹는다.
그리고 차 한 잔 앞에 두고 멍때리기를 한다. 행복을 느끼는 감각은 거의 공통이다. 편안하다는 것이다. 놓고 두고 비우면 더 나은 삶과 더 나은 세상이 되는 것이다. 생각은 생활을 만든다. 거개 질문을 가지고 산을 올라오지만, 나는 그 질문조차 버리고 차나 한 잔, 때가 되면 밥이나 한 끼 함께하자 한다.
우리 함께 가는 길, 살아도 산송장 모양 죽은 사람이 있고, 살아도 죽을 듯 사는 사람, 살아도 못 사는 사람이 많고, 사는 거처럼 사는 사람들은 몇 안 되어 보인다. 살지 못해 죽은 사람도 있다. 또 죽지 못해 사는 사람도 있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개혁을 바라고 혁신 혁명을 운운하는 건 새로운 출발, 행복의 더듬이를 또다시 더듬거려보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 변화하는 것들 속에 과연 오늘 지금 여기에 살아있는가. 살고 있는가, 그저 죽어가고 있는가. 생각은 힘이 세다. 삼계(三界)가 다 마음 안에 있거늘.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었을 때 생각하고 분별하여 수처작주(隨處作主)가 되고 처처안락(處處安樂)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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