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승인
2022.07.06 13:57 | 최종 수정 2022.07.07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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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살던 산골마을에서는 '때꼴'이라고 불렀다. 어릴 적에는 그 이름으로만 부르는 줄 알았다.
까마중이라는 '표준말'이 있다는 사실은 훗날 책에서 배웠다. 때꼴과 까마중, 조금도 닮지 않은 그 아득한 괴리에 잠시 어리둥절했다. 때꼴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딸기'나 '꽈리'의 방언이라고 적어놓았다. 까마중과의 관계는 끝내 입증하지 못했다.
늘 배고픈 아이에게 때꼴 역시 좋은 간식거리였다. 사탕이나 과자에 길들여질 기회가 없었던 순진한 혀는 잘익은 열매에 쉽사리 굴복했다.
파랗던 열매가 까맣게 익을 무렵 아이의 눈은 매의 그것처럼 밝아졌다. 큰 때꼴나무(?) 하나를 발견하면 환호가 터졌다. 잿간 뒤나 두엄더미 옆에서 자란 때꼴은 싸알이 유난히 굵었다.
출신성분이 안 좋은 열매라고 피할 이유는 없었다. 그 작고 검은 열매가 품고 있는 달콤한 유혹이라니.(지금의 입이라면 시금털털에 가까운 맛일 것이다)
하지만 불행한 일이었다. 아무리 먹어도 때꼴로는 배가 부르지 않았다. 아귀(餓鬼)처럼 끝내 채울 수 없는 허기는 늘 아이 곁을 따라 다녔다.
이른 산책길에 까마중 집단서식지를 발견했다. 사람이 살다 떠난 빈 집 터였다. 아직 일러 열매는 맺히지 않고 작은 꽃들이 다닥다닥 매달려 있었다.
핸드폰을 들이대 꽃의 자태를 훔치고 난 뒤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난, 세월을 거슬러 오르고 있었다. 늙어가는 내가 어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신작로를 지나고 내를 건너고 논길을 가로질러 달음질치는 작은 아이. 어딜 가려고 저렇게 열심히 달릴까. 이젠 별 게 다 나를 시간 속으로 끌고 다니는구나.
가만가만 중얼거렸다. 생각이 말이 되는 사이, 그 아이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열망이 가슴을 관통했다. 누군가 심장을 조준하여 창이라도 던진 것 같았다.
베잠방이나 걸치고 아이 손 잡고, 다람쥐처럼 산모롱이 돌아 달아나는 오솔길을 쫓고 싶었다. 거추장스러운 거라곤 모두 버렸으니 훌훌 떠나도 될 텐데, 조금 더 가난해져도 될 텐데, 움막 하나로 비 가리면 충분할 텐데, 무엇이 내 발목을 잡는 걸까.
이렇게 길게 떠도는 것은 분명 돌아갈 곳이 있어서인데. 텅 빈 몸 하나 도시 언저리에서 꿈이나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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