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로 세상읽기】빈센트 반 고흐 영혼의 편지, 그리고 형제애

김위영 산업번역 크리덴셜 대표 승인 2022.08.15 09:00 의견 0

You will have gone on being poor all the time in order to support me. but I will give you back the money or give up the ghost. --January 28, 1889.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냈겠지. 네가 보내준 돈은 꼭 갚겠다. 안 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1889년 1월 28일 편지 중에서

네덜란드 출신의 인상파 화가 Vincent Van Gogh(빈센트 반 고흐, 1853~1890)는 ‘영혼의 화가’ 또는 ‘태양의 화가’라 불리며,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의 한 사람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부친은 목사였고, 형이 어려서 죽었기 때문에 장남으로 자랐으며, 네 살 터울의 남동생 테오가 있었다. 고흐는 화랑 점원, 광산촌 설교자 등의 일을 하다가 테오의 권유로 스물일곱 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가 생전에 가족, 지인들과 교류했던 800통에 가까운 편지를 테오가 잘 보관하여 형제 사후 테오의 아내 요한나가 편찬해낸다. 고흐의 편지는 그의 삶의 이력과 예술세계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그의 편지를 통해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많은 독서를 통해 얻은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자연과 예술, 사랑과 인간에 대해 논했던 한 인간의 진솔하고 순수하며 맑은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고흐는 집안 내력으로 앓은 정신병이 악화되어 서른일곱 짧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비운의 화가이지만, 그의 삶에 대한 끝없는 연민과 호기심, 그리고 공감으로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울림을 주고 있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몇 편과, 아울러 고흐의 생애를 다룬 논픽션 스토리도 소개한다.

◆ <The Letters of Vincent van Gogh(빈세트 반 고흐 편지 모음집, 1996)>

_가난한 화가 고흐가 사랑하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영혼의 편지

아름답고 장대하며 슬픈 삶의 기록이다. 고흐의 굴곡진 삶과 예술세계를 상세하게 전한다. 시대가 이해하지 못한 천재화가 고흐 영혼의 기록이기도 하다. 펭귄출판사에서 발간한 이 책자에 나온 편지는 페이지를 표시하고, 그 외 인터넷에서 얻은 편지는 연도만 표시했다.

Do go on doing a lot of walking & keep up your love of nature, for that is the right way to understand art better & better. Painters understand nature & love her & teach us to see. --January, 1874, P6

늘 꾸준히 산책하고 자연에 대한 사랑을 유지해라. 이것이 예술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바른 길이다. 화가들은 자연을 이해하고 여자를 사랑하며 사물을 보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1874년 1월 빈센트가 테오에게

And I must continue to follow the path I take now. If I do nothing, if I study nothing, if I cease searching, then, woe is me. I am lost. That is how I look at it —keep going, keep going come what may. --July, 1880, P68

나는 지금 내가 선택한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공부하지 않고 연구를 멈춘다면 비애는 나이며, 나는 패배하고 만다. 무엇을 얻든 계속하여 진행하는 것, 이것이 내가 세상을 보는 방법이다. --1880년 7월 빈센트가 테오에게

What I want to express, in both figure and landscape, isn’t anything sentimental or melancholy, but deep anguish. In short, I want to get to the point where people say of my work: that men feels deeply, that man feels keenly. --July 21, 1882, P178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이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정말 격렬하고 날카롭게 고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 --1882년 7월 21일 빈센트가 테오에게

The world concerns me only in so far as I owe it a certain debt and duty; so to speak, because I have walked this earth for 30 years, and out of gratitude would like to leave some memento in form of drawing and paintings—not made to please this school or that, but to express a genuine human feeling. --August 4--8, 1883, P229

내가 이 세상에 빚과 의무를 지고 있는 한, 세상은 나에게 관심을 가진다. 말하자면 나는 30년간이나 이 땅 위를 걸어왔기 때문에 그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그림의 형식을 빌어 어떤 기억을 남기고 싶다. 어떤 학파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진정으로 표현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1883년 8월 4~8일, 빈센트가 테오에게

I cannot help it that my pictures do not sell. The day will come, however, when people still see they are worth more than the price of the paint and my living expenses, very meagre on the whole, which we put into them. --October 24, 1888, P419

내 그림이 팔리지 않는 데에는 나도 어쩔 도리가 없다. 그렇지만 이 그림들이 우리가 쏟아 부은 물감값이며 생활비보다 가치 있는 것임을 사람들이 알아줄 날이 언젠가 올 것이다. --1888년 10월 24일, 빈센트가 테오에게

There really is a sympathy between you and me in many things, and it seems to me, Theo, that all your trouble and all my trouble won't be in vain. --July 18, 1882

많은 부분에서 너와 나 사이에는 진정한 교감이 있다. 너와 나에게 지금 겪는 모든 수고가 헛되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1882년 7월 18일 빈센트가 테오에게

When his world comes right he will be a great man. --Theo to Lies, October18, 1885

형의 그림 세계가 조금 좋아지면 형은 위대한 인물이 될 거야. --1885년 10월 18일, 테오가 여동생 리스에게

◆ <Vincent and Theo; The Van Gogh Brothers(빈세트 그리고 테오; 반 고흐 형제, 2017)>

_고흐 형제의 우애와 사랑, 그들의 희로애락과 예술에 관한 이야기

미국의 작가 Deborah Helligman(데보라 하일리그먼) 여사가 쓴 논픽션으로, 보스턴글로브혼북상, 마이클프린츠상, 시빌스논픽션상, 골든카이트상, YALSA논픽션상 등 각종 상을 휩쓸은 베스트셀러였다. 화가 고흐의 고뇌를 바탕으로 형 빈센트와 동생 테오의 삶, 두 형제의 우애와 사랑, 그들의 희로애락과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Theo loves his brother’s brilliant mind, his gregariousness, even his fiery temperament. Vincent can be a good antidote to Theo’s own inwardness and tendency to melancholy. --P4

테오는 형의 번뜩이는 지성과 사교적인 성격, 그리고 불같은 성정을 사랑했다. 소심하고 내성적이며 우울한 기분에 젖기 쉬운 그에게 형은 좋은 해독제가 될 수 있는 사람이었다.

He is on his own journey, one that will be arduous and long filled with misstep and stumbles. He is years of pilgrimage ahead of him. --P41

그는 자신의 여행을 하고 있다. 이 여행은 험난하고 잦은 실수와 수없는 넘어짐으로 가득 찬 먼 길이 될 것이다. 그는 길고 긴 순례길을 앞에 두고 있다.

And yet Vincent looks healthy: he’s robust, and vehemently alive. Passion pours from him, as if the world he’s trying to capture is inside him, bursting to come out. Theo is tidy, well dressed in a suit, looking very much the proper Parisian businessman. His features are finer, more refined. He would be handsome if he weren’t so sick: he’s thin and pale. --P46

그럼에도 빈센트는 건강하게 보인다. 그는 강건하고 생기가 넘친다. 마치 그가 잡아내려는 세상이 그의 몸 안에서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것처럼 열정이 넘쳐흐른다. 반면에 테오는 양복을 단정하게 잘 차려 입고 아주 많이 올바른 파리의 실업가처럼 보인다. 그의 특성은 섬세하고 또 세련되었다. 아프지만 않았다면 미남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는 야위고 창백했다.

They promise to always be close, to keep the bond between themstrong and intimate. They always will walk together. They will be more than brothers, more than friends. They will be companions in the search for meaning in life and meaning in art. Together They will achieve lives filled with a purpose. And they will, when needed, carry each other’s parcels. --P50

그들은 언제나 가깝게 지내며 둘 사이의 우애를 강하고 친밀하게 유지할 것을 약속했다. 그들은 항상 함께 걸을 것이다. 그들은 형제 이상이며, 친구 이상이 될 것이다. 삶의 의미와 예술의 의미를 찾는 데 동반자가 될 것이다. 그들은 함께 목표가 가득한 삶을 이룩할 것이다. 그리고 필요할 때 서로의 짐을 들어줄 것이다.

Vincent and Theo, nineteen and fifteen, outside the mill, standing together, talking. The milk is fresh, the rain has stopped, the ground beneath them is solid. --P50

빈센트와 테오, 열아홉과 열다섯 살로, 풍차 건물 밖에 나란히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우유는 신선하고, 비는 멈추었고. 그들이 서 있는 땅은 단단하다.

He tries to persuade Theo not only with words but with art. He paints a memory that has great meaning for both of them. The picture is a declaration and a plea. --P162

빈센트는 말뿐 아니라 예술로 테오를 설득하려 한다. 그는 두 사람에게 큰 의미가 있는 기억을 그림으로 그린다. 그 그림은 선언이자 탄원이다.

For well over a hundred years, everyone assumed Vincent hadn’t painted Theo. It seemed odd that he would have neglected to paint Theo. It seemed odd that he would have neglected to paint his brother. He hadn’t. --P258

100년이 넘는 동안에 사람들은 빈센트가 테오를 그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동생을 그리는 것에 소홀했다는 것은 이상해 보인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Theo’s death, Jo took up the brother’s cause. She carried that parcel. And she made Vincent van Gogh famous. She couldn’t have had Theo without Vincent. Vincent couldn’t have been Vincent without Theo. And the world wouldn’t have Vincent van Gogh without Jo. --P407

테오의 사후에 두 형제의 대의를 물려받은 사람은 테오의 아내 요한나였다. 그녀는 기꺼이 그 짐을 지고 빈센트 반 고흐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녀에게 빈센트가 없는 테오는 있을 수 없었다. 테오가 없는 빈센트도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세상도 요한나 없이는 빈센트 반 고흐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He helped to found the Van Gogh Museum in Amsterdam; it opened in 1973, right near the Rijksmuseum and Jo’s childhood home. Millions of visitors go to the Van Gogh Museum every year to see Vincent’s painting. --P408

그(테오의 아들)는 암스테르담에 반 고흐 미술관을 설립하는 일을 도왔다. 레이크스 미술관과 요한나의 고향집 바로 근처의 반 고흐 미술관은 1973년에 문을 열었다. 그리고 세계 전역에서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반 고흐 미술관을 방문해 빈센트의 그림을 관람한다.

When Theo died, Jo had him buried in Utrecht. But in April 1914, she moved Theo’s remains to Avers, his grave placed right next to Vincent’s. Two brothers, side by side, head to head. Just like in Zundert. --P409

테오가 죽은 직후 요한나는 그를 위트레흐트에서 장사 지냈다. 그러나 그녀는 1914년에 테오의 유해를 오베르로 옮겨 빈센트의 바로 옆 자리에 뉘어 주었다. 두 형제는 머리를 맞대고 나란히 누웠다. 꼭 어려서 준테르트에 있던 때처럼.

◆ 비극적 삶에의 위로, 형제애

빈센트 반 고흐는 생전에 대중으로부터 그다지 많은 사랑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평생을 홀로 외로움과 싸우며, 인간으로서 그리고 예술가로서 살아남기 위해 고통 속에서도 치열하게 노력해야 했다. 한때 화상(畵商) 또는 전도사의 길을 꿈꾸었으나 모두 실패했고, 화가로서도 크게 인정받지 못한 채 결국 서른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비극적인 말로에도 불구하고 고흐는 누구보다도 인간적이며 예민한 감성과 불타는 열정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그를 믿고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는 동생 테오가 있었다.

고흐는 각별한 사이였던 네 살 터울의 동생 테오와 평생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그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만 650통이 넘는다. 테오는 이 편지들을 죽을 때까지 보관했고, 테오의 아내인 요한나가 형제의 사후에 편지들을 공개하며 빈센트의 그림과 더불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이 방대한 편지는 오늘날 반 고흐 형제의 삶에 대한 퍼즐을 맞추는 데 많은 단서를 주고 있다. 그들이 주고받았던 편지 속에는 당시 그들의 행보, 고민, 생각들이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고흐는 1890년 7월 27일 초라한 다락방의 침대 위에 스스로 가슴에 총탄을 쏘아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리고 7월 29일 새벽 1시 30분, 동생 테오의 품안에서 '이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다. 테오는 형이 죽은 이후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어 형이 죽은 지 6개월만인 1891년 1월 25일, 서른셋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어쩌면 동생에게는 ‘해바라기’ 같았고, 형에게는 ‘별’과 같았을 두 사람의 형제애는 비극적 삶에 주어진 그나마의 위로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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