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해봤능교? 삼삼했능교?

혜범 작가/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2.11.01 09:00 의견 0

요 며칠 하늘이 푸르를 때 나는 산을 내려가곤 했다. ‘어디 가요?’ 묻는다. 요즘 같이 사는 처사는 경상도 사내다. ‘스님 책 내봐야 본전도 안 나오겠십니더’ 한다. 억양이 정겹다. 나는 씩 웃었다.

어제는 10월 25일이었다. 음력으로는 초하룻날이고, 06시 46분에 해가 뜨고, 17시 38분에 일몰이 들었다. 박명은 06시 20분부터였다.

오늘도 비슷할 것이다. 오늘은 초이튿날이고. 오늘도 나는 일찍 아침밥을 먹고는 카메라를 들고 강으로 나갈 것이다.

닷새째다. 내가 원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 그 언젠가 보았던 강의 모습을 보러 나간다. 요즘 새벽 강에 나가면 특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요즘만이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안개가 내 입속으로 빨려 들어온다. 안개를 맛보러 가는 것이다.

새벽+강물로+바다로+흐르는+안개

박완호 시인의 시풍대로

가만히+......+가만히+......+그리고+천천히

+....

음화陰畵를 새겨넣어야 한다

-박완호 <시인의 안개를 사귀는 법> 중에서

사진 | 유성문 주간

그해 만행 중에 보았던 하구의 모습은 그랬다. 낙동강이었다. 언제 적이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어디쯤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하구뚝이 생기기 전이었다. 구미쪽이었다. 새벽노을이었고, 강물이 바닷물에 섞일 때였다. 그리고 나는 길게 이어진 띠를 보았다. 경계였다. 순간 부딪쳐 충돌하면서 하얀 물보라를 일으켰고, 그리고 잠깐 물돌이가 일었다. 그게 길게 늘어졌는데 나는 그 물결 속에서 울었다. 바로 내 발 아래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썩은 세상 썩은 하늘을 깨는 푸른 도끼(함기석의 <프리즘> 중에서)가 되지 못하고

꿈이었던가, 분명 지나간 추억이었다.

강물과 바닷물의 세력싸움이었다. 사리 때 바닷물이 밀물로 드는, 안개가 걷히고 있었고, 전설의 고향처럼 강물 쪽에서만 안개가 허공으로 범람해 넘실거렸다(염분의 농도 때문이라는 거였다). 그리고 내 마음속의 강물떼들이 출렁거렸다.

저렇게 안개도 강물도 바닷물과 섞이는데 나는 왜 세상과 어울리지 못할까. 이윽고 마침내 강물과 바닷물이 부딪쳐 하나가 되는 완전한 평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그게 하구순환이라는 걸 알았다.

어제도 허탕이었다. 문장은 완성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비명을 내지르지는 않았다.

전문가는 중성하구는 개념상 이론상으로는 존재하지만 실재로 사바세계에선 존재하기 어렵다 했다.

이윽고 일찍 잠에서 깬 백로가 보였다.

잉어 한 마리도 강물이 답답한지 허공으로 치고 올라와 고요를 깨고 갔다.

쏴아 쏴 여전히 물오리들, 강물떼는 내 가슴 속으로 흘러 들어오고, 내가 보고자 했던 풍경은 보지 못했다.

그 대신 돌아 나오는 길섶에 허연 뱀의 허물만 보았다. 순간 늙은 내 발길은 허청거렸고.

돌아와 보니 젊은 30대의 미모의 여배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스님, 해 봤능교?"

"해 봤지. 앞으로도 해 보고 뒤로도 해 보고."

"삼삼했능교?"

"아주 삼삼했지."

처사가 짓궂게 다가와 자꾸 묻는다.

30대 초반의 미모의 여배우가 ‘뭐예요, 스님 왜 이러세요?’하며 어쩔 줄 몰라해하며 얼굴이 빨개진다. 그러면서도 재밌다는 양.

“야, 너도 해 봐라. 조기 저어기.”

내가 대방 창(窓) 하늘에 떠있는 해를 가리키니 그제야 ‘스님은~’하고 눈을 흘기며 킥킥대고 웃는다.

오늘도 여섯 시인데 깜깜하다. 슬슬 채비를 하는데 오늘은 누가 방해해도 소용없겠지 한다. 오늘은 아예 전화기를 꺼놓을 요량을 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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