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동안거 일기 -2

면벽은 몸뚱이를 가지고 마음으로 노는 일이다

혜범 작가/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2.11.29 01:48 의견 0

백도 | 사진 유성문 주간

고도(孤島)를 위하여

임 영 조

면벽 100일

이제 알겠다, 내가 벽임을

들어올 문 없으니

나갈 문도 없는 벽

기대지 마라

누구나 돌아서면 등이 벽이니

나도 그 섬에 가고 싶다

마음속 집도 절도 버리고

쥐도 새도 모르게 귀양 떠나듯

그 섬에 닿고 싶다

간 사람이 없으니

올 사람도 없는 섬

뜬구름 밀고 가는 바람이

혹시나 제 이름 부를까 싶어

가슴 늘 두근대는 절해고도(絶海孤島)여

나도 그 섬에 가고 싶다

가서 동서남북 십리허에

해골 표지 그려진 금표비(禁標碑) 꽂고

한 십 년 나를 씻어 말리고 싶다

옷 벗고 마음 벗고

다시 한 십 년

볕으로 소금으로 절이고 나면

나도 사람 냄새 싹 가신 등신(等神)

눈으로 말하고

귀로 웃는 달마(達磨)가 될까?

그 뒤 어느 해일 높은 밤

슬쩍 체위(體位) 바꾸듯 그 섬 내쫒고

내가 대신 엎드려 용서를 빌고 나면

나도 세상과 먼 절벽 섬 될까?

한평생 모로 서서

웃음 참 묘하게 짓는 마애불(磨崖佛) 같은.

저 스님들 뭐하는 거야? 미친 거 아냐? 저렇게 벽을 보고 앉아 있다니.

면벽은 집착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다. 경계를 지음은 밖의 경계를 차단한다고 할까. 생로병사, 우비고뇌의 감정들을 덜 일어나게 하려는 거다. 고요한 경계에 들기 위함인데 그 고요한 경계가 바로 적멸이고, 적멸이 곧 극락의 경계인 것이다.

우리는 몸뚱이를 가지고 차고 덥고 부드럽고 까끄러운 것도 느낀다. 고요에 들면 머리끝이 쭈삣하고 가슴이 개운하고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내 다시 고요해진다. 고통과 괴로움의 원인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몸으로 마음에 드는 것이다.

관찰, 성찰. 그리고 통찰로 가는 길. 그만큼 경험과 체험은 중요하다. 화두를 갖고 앉는 면벽은 재미있다. 스님네들은 그걸 면벽참선이라 한다. 주변이 밝으면 두려움 없이 자유로운 상태가 되지만, 주변이 어두우면 더듬게 되는 것이다. 어두운 밤에는 보이지 않아 헤매게 된다. 이것을 무명, 미망이라 부르는 것이다.

내가 나를 만나러 가는 길.

대자유, 해방을 찾아가는 길.

그렇다. 시인은 면벽을 ‘절해고도(絶海孤島)’라 은유했다. 그렇다. 맞다. 면벽은 절해고도의 은산철벽에 맞서는 것이다.

저작권자 ⓒ 고양파주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