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데 하얀 나비 한 마리 마당의 꽃밭에 앉았다.
나비가 한 날갯짓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고개도 움직이지 않았다. 또한 빠르지도 않았다. 땅에서 날아오를 때 자세히 보니 양쪽 발을 정자(丁字)로 하여 한순간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허공의 흰 나비가 잠시 나에게 눈을 주었다. 그 눈이 서늘해 깊었다.
순간 시선을 내게서 거둔 나비는 마치 꽃의 둘레를 돌 듯 내 주위를 어정거렸다. 끙, 하고 신음을 삼켰다. 나는 다 늙었는데. 하이얀 나비야, 뭐? 어쩌라고? 하며, 내가 물었다. 올려다보니 돌띠를 하고 겨드랑이 터져 있는 곳에 당아지를 달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물음을 듣지 못하는 거 같았다. 비오는데 뭐하는 짓거리야? 아, 너도 외로운 모양이로구나, 나는 다시 어라, 하고 혼잣말을 했다, 혼자가 아니었구나, 했다. 팔랑팔랑, 나비 한 마리가 더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바라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만약 형색으로써 나를 보려하거니와 음성으로써 나를 찾는다면 능히 여래를 볼 수 없으리라.
씩 웃었다. 어쩔 수 없는 속중, 돌팔이 중놈이로군.
그래, 피바람 불더나
구름따라 산길로 강을 건너 얼마나 먼 길을 왔는가
헛되고 덧없음에
펄쩍 中有로 뛰었더나
그래 중음에서도 꽃을 피웠더나
그래, 너의 왼손과 오른손에 든 것은 무엇이냐
마라도 반야보검도 그 연꽃도 던져라
진흙탕 똥바다
꽃바람 연꽃바람 불지어니
얇은사 하얀 고깔로 나비 두 마리 서로를 밀고 당기듯 춤을 추기 시작했다. 허공에 앞과 뒤, 좌우로 옮겨 다니더니 이별의 갈림길이 고통스러운지 어쩌지 못하고 땅에 엎드려 허공에 말뚝을 박는 듯 꽃을 던지고 울음을 던지는 원과 한으로 저승으로 가는 길의 나비가 울고 통곡하며 꽃밭을 발로 짓뭉개는 몸부림을 보이는데 날갯짓이 춤사위가 애처로와라.
이승에 남아 있는 내가 미친 년 오줌 누듯 연이어 사납게 내리는 비 가운데 하늘을 비끼어 흐르듯이 함께 미끄러지는가 하면, 공중 한 곳에 머물러 팔랑거리며 서로의 간격을 좁히기도 했다. 또 땅으로 고꾸라져 내릴 듯 급히 내려오기도 하고 허공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기도 하는 걸 보는데. 내가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
노랑나비, 흰 나비 춤을 추며 오너라
내가 노래를 부르듯 생기복덕 원왕생 원왕생, 북가락을 높이자
한동안 몸부림치던
나비 두 마리
양 날개를 펼치고 허공에서 제자리 비행을 하고 있다가
아무 것도 없는 빈 손으로 양손을 모아
공손히
합장배례를 하는데
원생극락견미타 願生極樂見彌陀 그러자 다시 무진장 하늘 위쪽으로 올라가며 공중에서 서로 부딪힐 듯 가까워졌다가 또 서로의 사이를 벌려 운신의 폭을 넓히더니 서로를 쫓고 쫓기라도 하듯. 그러다 서서히 하늘 위로 올라가는데 나비들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나비들아. 여행자들이여, 잘 가라, 했고
그랬다. 그때는 마음이 참 오묘奧妙했다
그 어느 해 백중 하루 전날이었던가. 새벽에 법당에 들어가 앉았는데 법당을 나와보니 하루가 꼴딱 지나간 적이 있었다. 하룻동안 아침 점심 저녁도 안 먹고 그 다음 날 아침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백중날이었는데 그때 참 황당했다. 꿈에서 깨어보니 비는 여전히 내 꿈속으로 쏟아져 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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