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허공도 아니요, 바다도 아니다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3.09.26 09:00 의견 0

삶은 모험과 여행이다.

스무 살 때 어느 날, 사형이 만행을 떠나가겠다 했다.

"왜?"

"길을 잃으러."

"그게 무슨 말인데?"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매사 의미를 찾으려 하는 게 병이었어."

그제사 이해가 갔다. 그리고 그는 떠났다. 나이 70 중반은 넘었을텐데 아직도 연락이 없다. 노사가 죽고 혼자 남은 나도 떠나야 했다.

"어디로 가려느냐?"

죽기 전 노사가 물었다.

"사람, 동물, 산, 강, 별, 달, 바다를 보러 가렵니다."


"모습 모양에 연연하지 마라."

"모든 모양이 있는 것은 다 허망한 것이요. 모든 모양을 모양이 아닌 것으로 보면 진리가 보인다고요?"

"그렇지.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허상이고 환영(幻影)이야."

"환(幻)이라면 사는 건 왜 살아요?"

"죽지 못해 사는 거지."

나는 노사의 말에 픽 웃었다.

"환영인 줄 알면 즉시 이를 떠나서 방편을 짓지 않고 환영을 바로 여의면 점차(漸次)가 없어지게 되지. 그것이 곧 한소식인 거여."

".....무상(無相)의 공(空)요? 지환즉리 부작방편 知幻卽離 不作方便 이환즉각 역무점차 離幻卽覺 亦無漸次요?"

"응. 가봐. 가서 직접 색(色)과 공(空)을 체험해 보라고. 허공도 아니고 바다도 아닌 것을 알게 될게야."

그랬다. 소년이 산을 꼬부라져 돌아드니 강이 나왔다. 한참 강을 따라가다 보니 바다가 보였고. 물빛 햇살이 오랜 세월 언제나 눈앞을 어지럽혔다.

나를 가두어 놓은 그 산이

그 바다가 언제나 슬펐다.

나는 아직도 허공은 허공이었고 바다는 바다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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