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눈을 굴리고 바라보면 관음암은 나무와 풀들, 바위와 산으로 장막 둘러친 산골의 작은 암자였다. 새로운 아침이 올 때마다 얼핏 다른 세계로 들어서는 것 같았다. 지난 기억들은 허깨비거나 꽃들도 허공화 같았다.
깊은 산속 옹달샘, 토끼와 함께 그렇게 살았다.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래도 나름 사는 재미가 있었다. 어디서 넘어졌는지 부딫쳤는지 무릎, 정강이는 멍이 들거나 상처로 빨간 딱지가 들어 앉아 있었고.
산 밖에서 올려다보는 산과 산 안에서 산 밖을 내다보는 내가 산짐승처럼,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산 밖에서는 산이 보이는데 산 안에서는 산이 보이지 않았다. 목 매달아 자살한 큰 누나, 아버지의 죽음, 최*형의 죽음, 다솔이 엄마의 죽음.
<정글에서는 살아남아야 해.>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귀를 쫑긋해야 했다. 밤이면 귀신 불들이 허공에 나비처럼 떠돌았다. 뇌록의 그 불빛은 오싹하게 만들곤 했다.
고라니며 멧돼지들이 출몰하곤 했다.
저는 돌아갈 집이 없잖아요.
그래도 지금은 바람과 이슬, 추위를 막아줄 너의 방이 있잖아. 벽이 너를 가로막기도 하지만 너를 지켜주기도 하잖아. 너를 지킬 수 있는 건 너 뿐이야. 부처님이나 나나 노스님은 너에게 울타리일 뿐인 거고.
......절집은 제 집이 아니잖아요.
......물론 산속은 매일 폭풍우 몰아치고 뇌성벽력 치고 험난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 산속을 너의 집으로 만들면 되잖아. 네가 머무는 곳은 이 세상 어디든 다 너의 집이야.
은사스님이 그렇게 말했다. 말로는 도저히 은사스님과 노스님을 이겨먹을 수 없었다.
여기서 대체 뭘 하라고요?
존재의 참모습을 보라고. 깨닫는 거지. 너의 변화와 성장을. 네놈이 스스로 보란 말야. 네놈이의 독립과 자유. 너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네?
은사스님은 내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The bird fights its way out of the egg.
The egg is the world. Who would be born must destroy a world.
The bird flies to God. That God's name is Abraxas.>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먼저의 세계를 파괴하고 나온 새. 더 나은 세계를 향해 날아가는 새.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Max Demian-
“......아프락사스가 빛과 어두움의 공존, 선신이면서 동시에 악신인 것처럼 줄탁동시(啐啄同時, 啐啄同时)라고 말할 수 있지.”
"....."
"니가 어젯밤 노스님 방에서 공부하다, 시험지 위에 써놓았던 문장들을 나도 한참 들여다보았다."
Don't believe what your eyes are telling you. All they show is limitation.
너의 눈이 말하는 것은 믿지 마라. 왜냐하면 그것들에는 항상 한계라는 것이 존재하기에...
What the caterpillar calls the end of the world the master calls a butterfly.
애벌레에게는 삶의 끝일 수 있지만, 그것이 나비에게는 삶의 시작일 수 있다.
You are always free to change your mind and choose a different future, or a different past.
네가 너의 마음만 바꾸면, 너는 언제라도 다른 미래와 다른 과거를 선택할 수 있다.
Don't be dismayed by good-byes. A farewell is necessary before you can meet again.
헤어지는 것을 슬퍼하지 마라. 왜냐하면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헤어져야 하니까...
I do not exist to impress the world. I exist to live my life in a way that will make me happy.
나는 세상에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Every person, all the events of your life are there because you have drawn them there. What you choose to do with them is up to you.
너의 삶 속의 모든 사람이나 사건은 네가 그렇게 놔 둔 것이다. 그렇기에 그것들을 어떻게 할 지는 너의 선택에 달렸다.
For most gulls it was not flying that matters, but eating. For this gull, though, it was not eating that mattered, but flight.
대부분의 갈매기들에게는 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단지 먹는 것이 중요하지... 하지만 이 갈매기에게는 먹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나는 것이 더 중요하기에...
A tiny change today brings a dramatically different tomorrow.
오늘의 작은 변화가 내일의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Your only obligation in any lifetime is to be true to yourself.
너에게 주어진 중요한 의무는 너 자신에게 진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If your happiness depends on what somebody else does, I guess you do have a problem.
너의 행복이 다른 사람의 행동과 연관되어 있다면, 너의 삶에는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Here is the test to find whether your mission on Earth is finished: if you're alive, it isn't.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난 사명이 완수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네가 아직 살아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Every problem has a gift for you in its hands.
모든 문제는 그 안에 너를 위한 선물을 가지고 있다.
The gull sees farthest who flies highest.
높이 나는 갈매기가 더 멀리 볼 수 있다.
Bad things are not the worst things that can happen to us. Nothing is the worst thing that can happen to us.
나쁜 일이 일어난 것이 최악의 상황은 아니다. 진정으로 최악의 상황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Overcome space, and all we have left is Here. Overcome time, and all we have left is Now.
공간을 초월하는 순간 너에게는 '여기' 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을 초월하는 순간 너에게는 '지금' 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스니임......그걸 다 어떻게 외워요?"
나는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높이 나는 갈매기가 더 멀리 볼 수 있다.> 밖에 나는 기억하지 못했다. 나머지는 다 그림이고 <갈매기의 꿈>이라는 소설 전문과 다름 없었다.
은사스님과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부랄친구 중에 그런대로 사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별명은 곰탱이였다. 그 친구의 가정교사는 최구*이라고 S大 수학과를 다니다 시위로 대학을 중퇴하고 친구의 가정교사로 친구네 집에 입주해 있었다. 그의 형은 동화작가로 최구*이라는 것도 알았다. 어느날, 내가 친구네 집을 찾아갔을 때 입산을 생각하고 있다니까 자기 선배인 만장이라는 스님을 내게 소개시켜 주기로 약속했었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스님은 만날 수 없었다.
선방에 들어가 앉아 있었다고 했다.
최구*, 그 형은 예비군 훈련장 사격장에서 표지판 대신 자신의 목을 향해 총을 쏘아 자살했지만. 중학교 2학년을 중퇴했지만 싹수가 있다고 해서 중국집 배달의 기수로 일 하고 있을 때였다.
최구*형은 봄에 죽었지만 죽은 이의 부탁으로 가을에 나를 찾아와 인연이 되었던 거였다.
허공의 나비가 잠든 내 꿈 속을 가끔 찾아들 듯 은사스님은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 그렇게 양동 옆의 경찰서 옆의 후암동 중국집까지 찾아와 쭐레쭐레 깊은 산속까지 기어들어 오게 되었던 거였다.
산속의 밤은 빨리 찾아왔다. 이슥해지면 방에 불을 땠고
노스님은 주야장천 멧돌처럼, 절구통처럼 앉아 참선을 하셨고 그 옆에 나는 앉을뱅이 책상 앞에서 검정고시 공부를 했다. 전기세 아낀다고 한 방에서. 그리고 졸리면 내 방으로 건너와 잠들곤 했다.
"주의할 게 있어. 불교적 관점에 갇히지 말아야 해. 이론에 치우치지 말라고. 관념 몽상에 빠지지도 말고. 그건 이분법적(二分法的)이고 양자택일적(兩者擇一的) 사고야, 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발상의 전환이 가능한 거지. 그렇다고 노스님마냥, 格外의 道理에도 빠지지 말고 .
"格外道理는 도 뭐예요?"
"격식의 바깥에 도리가 있을 수 있다.'는 거다. 시스템과 솔루션, 프로세스가 100% 정답은 아니니까. 보통의 격식이나 관례를 벗어난, 또는 그것을 넘어선 도리를, The unconventional, or beyond the conventional truth라 하지. "
"......"
"열여덟 살이 되면, 네가 결정해. 정식 계를 받고 수행자의 길을 갈지, 아니면 산을 내려가 색깔 있는 옷을 입고 네가 직업을 가지고 살아갈 지. 그건 너의 선택사항이야. 그 누구도 절대 강요하지 않아.
그런데 나는 네놈이 헛된 욕망에 사로 잡히지 않았으면 좋겠어. 여기서 모든 것은 항상함이 없고 변화하는 걸 보고, '나'라는 고정된 실체가 없다, 는 걸 깨닫고 그 모든 괴로움을 이겨냈으면 좋겠어. 고통과 괴로움의 불을 껐으면 좋겠단 말야.
어려워요. 자신이 없어요.
어렵고 자신이 없어도 어쩔거야? 너도 나도 갈 곳이 없는 걸. 불행해지면 절밥을 먹게 되는 거야. 이놈의 절밥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 모르지?
..........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허무 그리고 절망이라는 야차들이 온통 너를 뜯어먹을 것이야. 갈기갈기 찢어서.
사실, 그대는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기쁨의 순간에 "지금"을 살고 있다고 진심으로 믿을 수도 없었지만. 어떤 말을 하든, 마음 한 부분에서는 그렇게 행복했던 순간들이었다. .
참 아름다웠다. 아침, 새로운 태양의 잔 물결이 산속에서 금빛으로 빛나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저작권자 ⓒ 고양파주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