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오공 같이 근두운 구름을 불러 하늘을 날고 요술 지팡이를 휘두르는 그런 깨달음은 없다. 신심은 신앙이 아니고 깨달음을 향한 마음이다.
마음은 참 오묘奧妙하다. 백 명이라면 아니 천 명, 만 명 중에 선택하라면 한 사람도 선택하지 않는 그런 길을 나는 열정적으로 왔다.
그렇게 젊은 날, 새벽에 법당에 들어가 앉았는데 법당을 나와보니 하루가 꼴딱 지나간 다음날이었다. 하룻동안 아침 점심 저녁도 안 먹고 그 다음 날 아침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그제서야 내가 나에게 안부를 물었다. 그래도 그때는 힘이 있었다.
"내가 지금 뭐하는 거야?"
식구들에게도 다른 이들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생을 살았다.
"저거 저거 공장에 가서 돈 벌 생각은 안 하고."
이제 늙어가니 아무도 그런 이야기는 내게 하지 않는다.
그랬다. 문 밖을 열어보니 봄이었다. 새로운 희망, 새로운 길, 그리고 새로운 꿈을 꾸는 봄이다.
그랬다. 정상이 아니라고 했다. 나한테 미친 놈, 또라이라고 그랬다. 내 속이 좁아 수행이 되지 못해 절망하고 고독해 하곤 했다. 무척 속상한 날들이었다.
부처가 있는 것이 아니고 있다고 믿는 것이듯 지옥과 천당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있다고 나는 믿기 때문이었다. 물론 부처는 절깐에 없다. 책에도 없고, 과거에도 없고, 현재에도 하늘에도 땅에도 없다. 부처는 우리들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다.
나는 한번도 부처가 되겠다, 한 적은 없다. 부처가 되려 하지 말고 올바른 사람이 되거라, 라고 배웠다. 그리하여 자신이 깨쳐서 부처가 되었다는 중같지 않은 중놈들이 가소롭다. 깨달음이 부족한 이들일수록 그 믿음, 신앙심이 두텁다. 그렇게 나는 부처가 어디에 있는지도 어떻게 생겼는지도 무얼 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배우기를 수행이란 얻는 것이 아니요, 그렇다고 이루는 것도 아니라 수행이란 놓고 두고 버리는 것이 수행이라 배웠다. 그렇게 한평생 살 수 있어서 나는 좋았다. 많은 걸 가진 사람은 아무것도 갖지 않은 사람을 절대 이길 수 없다.
해마다 봄이 찾아온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가을이면 낙엽질 것이다. 봄이 없어도 살 수 없고 가을이 없어도 살 수 없다. 그런데 산다. 봄도 없고 가을도 없고 겨울만 있는 곳도 있다.
진리는 깨달음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깨달음이란 어디서 오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자기 모습을 찾는 일이다. 부처는 찾는 것이 아니고 깨닫는 것이며 나를 찾는 것도 아니다. 진리를 찾는 것도 아니고 바로 깨닫는 것이다. 모두가 空한 것을.
몸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고 세상도 다 쓰다 가는 것이다. 보이는 모습그대로가 모두 진리의 모습이고 들리는 소리 그대로가 진리인 것을. 새소리 바람소리 푸른 숲, 산이 좋아 산에서 살았다.
화두를 틀고 사는 삶이 재밌었다. 화두를 놓치게 되면 멍때리기가 되지만 그 또한 좋았다. 농사준비를 한다. 삽질을 하다보면 질문도 사라지고 대답도 사라진다. 나이가 들면 말이 줄어든다. 그래도 혼자 낄낄대며 질문하고 답해본다.
육신은 정신의 바탕이고 정신은 육체의 작용일 뿐이다. 부처는 참 오묘奧妙하다. 올해도 자급자족을 위해 농사를 준비한다. 삽자루 잡으니 몸이 작년 같지 않다. 제멋대로 몸이 욱신거리고 뒤틀린다. 순간 '부처님아. 내 청춘도, 돌리도.' 하며 픽 웃는다.
봄이 오랜만에 나를 수행자로 만들어 주는 거 같다.
저작권자 ⓒ 고양파주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