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 당신을 만나 깨달음을 얻었노라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4.11.19 08:00 | 최종 수정 2024.11.19 13:11 의견 0

나는 그리 승부욕이 강하지 못하다. 올해도 두릅 종근 삽목을 준비한다. 돌아보니 작년에 모종을 심은 놈들 중 반은 죽고 반은 살았다.

그 모습을 보고 한 신도가 "무얼 그리 열심이세요?' 묻는다. "내가 이리 고생해 놓으면 내가 죽고 난 다음에 오는 스님은 편할 거 아니야?"하니 빙그레 미소짓는다.

몇 년전이었다. 바둑, 삼성화재배였던가. 세계대회 4강이었고 방송대국이었다.

나는 '어~어~'하며 눈을 크게 떴다.

프로 바둑기사 변상일 9단이었다. 상대는 최정9단이었다. 그런데 잘못 두었다 생각했는지 자책하며 자기 뺨을 한 번도 아니고 대여섯번 계속해서 때리고 머리를 싸잡은 채 우는 거였다.

꼭 나의 모습을 보는 거 같았다.

어리석어 잘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며 깨닫지도 못하는 나의 모습이었다. 나는 총명하지 못했고 믿음이 부족하여 이기적이었고 늘 독선적이었다. 그러므로 미혹되고 잘못되어 미망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끝없이 생사를 헤매고 다녔다.

그랬다. 꿈속에서는 꿈꾸는 지 모르듯이

살아도 산 게 아니면 살은 게 아니거늘


졌다, 라는 거. 패배, 실착을 감지한 순간, 얼마나 속상했을까. 나는 화면 속에서 머리를 쥐어뜯는 변상일 9단이 안경을 치켜 올리고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그 장면에서 얼어붙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 바둑기사가 대국중에 자기 뺨을 때리고 우는 모습이 생중계 되고 있다는 걸 본인도 망각한 거였으리라. 메이저대회 우승을 향했던 집념이 얼마나 간절했으면 그랬을까. 결코 상대를 무시하거나 여성이라고 무시해서 한 행동이 아니라는 건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해설자도 안타까워 하며 신진서, 신민준, 커제라는 다른 정상급 기사도 그런 적이 있다고 했다.

우리들이 삶을 사는 모습이 아닐까.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그랬을까.바둑이 끝나고 변상일 9단은 바로 최정 9단에게 미안하다고 허리숙여 사과했다 들었다. 어떤 이들은 "너무 폭력적인 행동이다", "상대 앞에서 할 행동이냐?", "매너부터 다시 배워라.", "무례하고 프로답지 못하다.", "변상일 선수 멘탈 관리해야겠다.", "프로 기사가 저렇게 감정 조절이 미숙해서 되겠냐", "저건 상대 기사를 무시하는 행동" 등 날 선 비난을 쏟아 내기도 했다, 한다. 개인적으로 내게는 도발적이고 매혹적이었던 변상일 기사가 지금도 최정상급 기사이기는 하지만 꼭 메이저 대회에 우승을 했으면 바램이다.

마치 그 어떤 이들의 날선 비난이 꼭 내게 하는 말 같았다. 왜 관리 못하고 죽이냐고?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따위로 생겨먹은 걸 어쩌라고? 그래도 반이 살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있는 그대로, 생긴 그대로가 아름다운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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