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의 젊은 날이었던가. 스무 살 쯤이었다. 봄밭에서 울력을 하는데 나보다 스무 살이 더 많았던 큰 사형이 스님아, 너 왜 청춘인지 아니? 하고 물었다. 속으로 피가 끓으니까요, 하려다 꾹 입을 다물었다. 청산에 봄이 왔기 때문이야, 그런다. 한참 있다 고개를 끄덕여줬다. 하여 사형은 내게 노래를 불러달라 했다.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하고 노래를 부르며 둘이는 남새밭을 같았다. 나는 그 구절이 좋더라. 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 손짓에 슬퍼지면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하는 게 좋더라. 너는 빨리 너의 자리를 잡고 싶지? 수처작주, 그렇다면 어영부영 살지 마.
사형은 손바닥만한 남새밭을 산신각 뒤쪽에 두 군데나 더 만들어 놓고 상추며 배추, 쑥갓, 고추, 토마토, 오이를 심고는 이모작, 삼모작까지 밤낮으로 물주기 소임을 내게 맡기곤 했다.
올 날이 자꾸 오면 올 날이 적어지고
지나간 날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아
올 날들은 그렇게 가고 말아
지금 여기에서 오늘 행복하자고
부지런히 꾸준히 마음밭에 삽질하고
이랑하고 고랑을 만들어야지
그런데 달라야 해. 새로워야 해.
가는 세월이 우리들의 몸 마음을 빼앗아 간다고
새 천지 새바다는 네놈이 만드는 것이야.
너의 것이라고 네 세상을 만들어야지.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 아니야.
사람노릇을 해야 참사람이지
내일을 위해 산다고, 웃기지 마.
내일은 없어. 지금 여기에 오늘을 살라고.
우리들 마음밭이 없으면 그냥 신짐승일 뿐이라고
새천지 깨달음의 바다로 나아가는
네가 되어보라고.
낫으로 덤불 걷어내고 괭이가 없어 자루 부러진 호미로 둘이는 돌밭을 가르며 이게 될까? 했는데 사시사철 철철이 야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됐었다.
글을 쓰겠다고? 그럼 너만의 목소리를 가져. 너만의 향기나는 글을 쓰라고. 너만이 너의 마음밭에서 추수한 글은 떨림을 줄 거라고. 너만의 카타르시스, 배설을 위한 글을 쓰려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말고.
그때, 나는 묵은 해가 갔네, 새해가 왔네. 봄이네, 또 봄날이 가네, 했던 사형의 속뜻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하며 세월 참 빠르네, 이리도 허망하고 무상한 것을..... 울림을 갖고 살아야지, 란 뜻을.
사형이 목탁치고 염불해서 탁잣밥 내려먹는 건 여느 중들과 다를 바 없었다. 또 그걸 내게 가르쳐 준 것도 다른 중들과 다를 바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사형은 어중이떠중이들과는 달랐다.
법당 앞 수선화가 고개를 내밀고 목련숭이들이 제법 부숭부숭했다.
괴로움을 넘어 고뇌를 넘는 법은 마음밭을 일구는 일이라는 거였다. 그렇게 사는 일이, 수행이라던 사형. 아내와 자식 둘이 교통사고로 죽자 고등학교 국어교사를 내려놓고 입산했다던 큰 사형을 그리워 하다 펼쳐지는 봄의 경전 앞에 눈을 씀벅거렸다. 언젠가 가겠지. 오늘 가면 좋고. 내일 가면 더 좋고. 갈 때는 가더라도.
나는 달랐던가. 아, 이제는 무얼 쓰지? 그 밥에 그 나물 아니었나. 올 봄에는 마음밭에 무얼 심을까? 번뇌였다. 번뇌에 머물지 말고 번뇌에서 떠나지도 말라 했거늘. 내 목소리, 나만의 향기? 법당 앞에 미니 밤호박을 108개 심어 주렁주렁 허공에 매달리게 해보자, 하며 내가 나에게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북돋아주는 새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