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삶이 몇 개의 아름답고 단아한 문장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또한 자신에게는 그것을 깨뜨릴 파괴적 에너지가 없다는 자각이 어렴풋이 들어서면서 쓰는 일에 자신을 잃었다. 열망도 욕망도 문학을 인생이 향유할 수 있는 아름다움 중의 한몫으로 즐기리라는 자족감 속에 자연스레 사그러들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마치 벙어리의 소리치려는 충동처럼 혀가 굳어가는 안타까움과 같은 뒤늦은 열망의 정체는 무엇일까. …잃어져가는 말에 대한 복수일까, 사랑일까.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인생을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허접쓰레기 같은 넋두리들을 끊임없이 늘어놓고, 나아가 글을 쓰겠노라고 생각하지. 그래, 뭘 쓰려고 하지? -오정희 <파로호> 중에서
6월이면 나는 화천의 파로호와 양구의 대암산 일대를 떠돈다. 전쟁 당사자는 아니지만 태어나면서 이미 분단의 천형을 물려받은 터라, 내 나이를 훨씬 뛰어넘는 세월 동안 요지부동으로 누워있는 전선 근방을 배회하는 것이 마치 무슨 의무라도 되는 양 여겨서다. 그 터무니없는 과잉과 넋두리의 건너편에 늙은 파로호와 대암산이 숨을 헐떡이며 진을 치고 있다. 흐르지 않는 물, 오를 수 없는 산. 6월의 습한 햇볕과 다가올 장마전선에 대한 예감 속에 물은 홀로 괴어가고, 산은 자꾸만 짜증스러운 그림자를 길게 늘이고 있었다. 그런 것이 마치 무슨 평화라도 되는 양.
파로호처럼 정치적 수사와 서훈을 누리는 호수는 다시없다. ‘오랑캐를 격파’하고 자유와 평화를 지켰다는 곳, 바로 6·25전쟁 때 중공군 3개 연대쯤 수장(水漿)하며 혁혁한 전승을 이뤘다는 곳. 승리에 겨운 이승만 대통령은 일필휘지 ‘파로호(破虜湖)’라는 휘호를 내렸고, 일제가 군수산업용으로 세운 화천댐은 그렇게 졸지에 전쟁영웅이 되었다. 그러고도 더 누려야 할 승리의 기쁨이 남았던 것일까. 노(老)대통령은 파로호에 별장을 짓고 종종 들러 낚시를 즐겼다.
화천은 <동국여지승람>에 이른 대로 ‘구름이 가까워 옷이 젖을 만큼’ 산이 높은 곳이다. 산이 높은 만큼 골 또한 깊어서 사람이 붙어살만한 땅뙈기를 쉬 내놓지 않는다. 그나마 어렵사리 부쳐 먹던 손바닥만 한 화전들도 화천댐이 들어서면서 상당 부문 물속에 잠기고 말았다. 그렇게 물로 한 번 망한 화천은 전쟁이 터지면서 불로 한 번 더 망한다. 전쟁 때 화천 일대는 마을 수효보다 전투가 벌어진 능선이나 고지가 더 많았다고 할 정도로 치열한 전장이었다.
파로호를 감싸고 있는 일산의 운무 ⓒ유성문(2004)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한명희 <비목> 중에서
그렇게 전쟁의 기억은 비목으로 남았고, 분단의 증거는 철조망으로 남았다. 아니 더 기가 막힌 증거물이 있다. 평화의 댐. 평화의 댐처럼 정치적 기망과 반전을 거듭한 물막이는 다시없다. 1986년 북한이 금강산댐(북에서는 ‘임남댐’이라 부른다) 건설계획을 발표한 후 벌어진 해프닝은 정권이 과장한 공포 속에서 어린아이의 코 묻은 돈까지 긁어모아 그 막을 올렸다. 그러나 1단계 공사가 끝난 후 평화의 댐은 이내 허구의 상징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북측의 발표가 자체가 이미 허구라는 반박에 가로막혀 공사는 중단되었고, 헛된 구조물로서 평화의 댐은 그렇게 기억에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다 1999년 북한이 금강산댐 건설공사를 본격적으로 시행함에 따라 허구는 현실이 되었다. 그와 함께 수공위협은 차치하고라도 속도전으로 건설된 금강산댐 정상부에서 훼손부위가 관측되고, 여수로(濾水路)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다시 심각한 위협으로 대두되었다. 정부에서는 부랴부랴 1천9백억원 규모의 공사비를 들여 평화의 댐 증축공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훼손된 부분이 누수의 결과가 아니라는 주장이 나왔고, 확인 결과 금강산댐이 여수로를 통해 물을 안정적으로 방류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면서 평화의 댐 2단계 증축공사 또한 너무 성급했던 것이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보다는 북한강 수계의 수자원 고갈이 오히려 훨씬 심각한 문제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전쟁과 분단이 낳은 부질없는 바벨탑. 쌓을수록 더욱 크게 비어만가는 역설의 구조물. 평화의 댐 곁에 관광지로 조성된 비목공원에서 내려다본 을씨년스럽기만 한 무위의 현장. 그 흐린 하늘을 까마귀마저 시름없이 비끼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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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북단, 최고봉, 최장터널’이라는 해산터널을 지나 평화의 댐으로 가기 전에 오른쪽으로 차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만한 소롯길이 나 있다. 그 길의 끝에 비수구미 마을이 있다. 파로호가 만수위를 이루면 영락없이 물에 갇혀 섬이 되어버리는 비수구미 마을은 초미니 오지마을이다. 찾아들기 어려운 만큼 비수구미는 천혜의 비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조붓한 들꽃 트레킹코스가 되어주고, 파로호 자락은 아무 곳에나 앉아도 붕어와 잉어의 입질이 좋은 낚시터이며, 차고 투명한 계곡은 물놀이로 더위를 쫓기에 더없이 좋은 피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