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포자(수학 포기자)'였다. 아니 끝내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벽을 넘을 수가 없었다. “수학만 잘 하면 넌 서울대야!” 하고 친구들이 응원해줬지만, 수학을 못했다니까! 수학에 대한 공포의 경험들이 내 학창시절엔 꽉 차 있다.
어른이 된 뒤에도 난 자주 코피가 나곤 했는데 고등학교 때 수학 선생으로부터 ‘열정의 싸대기’를 체험한 후 나타난 증상이었다. 중학교 시험기간 중 엉엉 울기도 했는데 수학 시험을 앞두고 정말정말 수학이 풀리지 않아서였다.
수학과 친해지지도 못한 첫 기억은 내가 아홉 살, 초등 2학년 때였다. 당시 구구단을 외웠다. 본격적으로 수학에 들어가는 첫 관문이었다. 구구단을 외우지 못한 애들이 방과 후 남았다. 선생님은 오늘 기필코 아이들을 마스터시킬 계획이셨다. 우리는 먹이를 받아먹는 제비들처럼 ‘지지재재’ 입을 벌려 구구단을 외웠다. 나는 2단이나 5단 혹은 9단 정도는 어떻게 가능했지만, 7단이나 8단은 어려웠다. 그래도 열심히 입을 벌려 따라 했다.
선생님이 날 지목하셨다. “너는 다 외웠구나! 집에 가도 좋아.”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몰랐다. 순간 갈등이 생겼다. ‘집에 갈까?’ 아니면, ‘아직 못 외웠습니다. 남아서 끝까지 외우겠습니다’ 해야 할까. 집에 꿀단지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가방을 메고 교정으로 나섰다. 빈 운동장을 가로지르면서 든 생각! 운명처럼 느껴진 그 불안한 예감. ‘난 이제 수학과 멀어지겠구나!’ 다음날부터 수학을 따라가기 어려웠다. 그렇게 나는 무저갱에 빠져드는 가여운 영혼이 되었고, 오랜 시간 동안 구원받지 못했다.
나는 어느새 두 아이의 아빠가 돼 있었다. 이제 고1과 중2가 된 두 아들. 두어 달 전쯤이든가, 첫째가 수학 시험성적표를 받아왔다. 3점. 학교엔 0점짜리도 두엇 있다고 했다. 찍으면 받을 수 없는 점수였다. 풀어야 받을 수 있는 점수였으니 혼낼 수도 없었다. 아들이 먼저 ‘과외나 학원을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우리 부부에게 말했다.
오냐, 뭐든 해야지. 친분이 있던 이웃의 수학 선생께 전화를 돌렸다. '아들을 잘 부탁합니다.' 둘째도 방학을 하고 드디어 성적표를 집에 갖고 왔다. 수학 점수부터 눈이 갔다. 중간고사는 30점 아래, 기말고사에선 나아져서 50점 아래였다. 평균 이하. 내가 아이들에게 한 말은 ‘미안하다!’였다. 수학을 잘 하는 엄마 유전자가 가지 못했구나. 오! 저주는 피를 타고 흐른단 말인가.
그러다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칸아카데미! 살만 칸의 이야기. 그는 아이큐 160의 천재였고, 수학의 나라 인도 출신에 MIT를 졸업한 펀드매니저였다. 그가 수학에 어려움을 겪는(나나 우리 아들과 같은) 조카를 위해 수학을 가르쳐 주었던 내용이 인터넷에 남아있다는 이야기. 칸아카데미 한국판도 있었다. 그 전에 칸에 대해 알고 싶었다. 10분짜리 테드(TED) 영상이 있었다. 거기 놀라운 이야기가 있었다. 무저갱에서 다시 상승할 수 있는 ‘날개’를 그가 달아주고 있었다.
수포자는 전 세계적 현상(적어도 미국)이었다. 교실에서 선생님은 수업을 한다. 숙제를 주고, 아이들은 과제를 해온다. 이젠 정기적으로 시험을 본다. 어떤 애는 95이고, 어떤 애는 75다.
자,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아이들의 실력이 측정됐다면 이제 할 일은 그들을 도와 모두 100점이 되도록 하는 거다. 하지만 실제는? 그저 다음 진도를 나갈 뿐이다. 수업을 하고 숙제를 하고 시험을 보고 그리곤 또 다음 진도를 나간다. 더 어려워진 곳으로. 뒤떨어진 아이는 무저갱으로.
칸이 칸아카데미를 만든 이유는 누구나, 언제든 자기 수준에 맞는 학습을 하도록 돕기 위해서였다. 수포자는 유전자 문제가 아니었다. 집 짓는 과정에서 미비점이 발견되면 수정을 하고 가야 하는데 문제를 발견하고도 태연히 ‘이제 2층을 지읍시다. 이제 배관을 합시다’ 하는 엉터리 감독관이 문제였다. 그를 해고하지 않은 채 수십 년이 흘러온 것이다.
칸은 쉬운 단계에서 개념을 통달한 뒤에 다시 더 높은 단계에서 배워야 할 것을 통달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운동이나 악기를 배울 때나 자동차 운전을 배우는 방식과 수학은 다르지 않았다. 둘째와 함께 칸이 알려주는 중2 수학을 다시 짚어 보았다.
‘이등변삼각형의 성질’이 최근 아들이 배운 교과였다. 아들은 교과서를 다시 펼쳤다. 거기 똑같은 내용이 있었다. 다만 아이는 교실서 개념을 통달하지 않은 채 선생님을 따라가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착각해왔던 점이 달랐다. 삼각형의 기초 개념 위에서 다시 이등변삼각형의 개념을 확실히 알면 누구나 풀 수 있는 문제였다.
칸은 우리들 ‘누구나’ 연구자, 기업가,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다고도 했다. 400년 전에는 ‘누구나 언어를 배울 수 있다’고 하면 의구심을 표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도 여전히 편견이 남아있다. ‘누구나 의학과 MBA와 과학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역시도 가능하다는 게 칸의 믿음이다. 쉬운 개념의 통달로부터 시작해 꾸준히 가기만 한다면…. 이번 방학엔 ‘넘사벽’, 그 담을 함께 넘어볼 생각이다. 불가능이라 생각했던 그 수학의 벽을, 아들과 담쟁이처럼 손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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