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수의 문화누리】 페이스북 ‘20대 사진’ 놀이
오광수 문화기획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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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31 09:22 | 최종 수정 2021.08.31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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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페이스북이 난데없이 20대 남녀 사진들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다들 20대 사진을 올리기에 한 장 골라봤습니다. 슬쩍 투척하고 반응을 기다립니다.” “나도 이런 날렵한 턱선을 자랑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반응 또한 다양하다. “와, 영화배우가 따로 없었네요.” “도저히 지금 얼굴을 찾아볼 수가 없네.” “이렇게 날씬했다니?” 등등.
왜 갑자기 20대 사진을 올려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다들 전염병처럼 과거 사진들을 뒤적여서 사진 설명과 함께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다. 마치 아이스버킷 챌린지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페이스북 이용자들의 사진 올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28~29일 사이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20대 사진을 공개하는 날’이라면서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마케팅을 위해서 시작한 일이 아닌가 짐작할 뿐이다.
페이스북 20대 사진 투척 사건은 여러 가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페이스북이 10~20대보다는 40대 이상 중장년의 놀이터가 됐다는 점이다. 최근 통계를 뒤적여 봐도 20~30대는 10명 중 7명이 페이스북보다는 인스타그램을 자주 이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신 40대 이상은 간단한 사진 위주로 올리는 인스타그램보다는 사연이 곁들여지는 페이스북을 선호하고 있다.
페이스북이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것도 이러한 영향이 크다. 비주얼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담은 논리적 글쓰기에 더 적합한 매체가 페이스북이다. 대선 정국이 가까워지면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선언한 후보자들은 물론 각 진영의 지지자들 혹은 정치평론가 뺨치는 글쟁이들이 대거 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부류의 글들은 지지자들의 열광과 함께 반대론자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히기 일쑤다. 일부 페이스북 탈퇴자 중에는 이러한 논쟁이 보기 싫어서 페이스북을 떠난다는 이들도 있다.
이같은 정치적인 글들과 달리 20대 사진 올리기는 일종의 '놀이'였다. 잠시 추억을 곱씹으면서 나에게도 이런 전성기 시절이 있었다는 자랑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당연히 칭찬 일색의 댓글이 달리는 건 불문가지다. 코로나19로 지친 심신을 달래기에는 나름 훌륭한 놀이가 아닐 수 없다.
한 페이스북 이용자는 “이번 20대 사진 놀이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 중년남들이 험한 세월을 살아왔다는 사실”이라면서 “20대 사진과 비교하면 너무도 변해버린 외모에 놀라고, 20대 시절의 풋풋함에 감동했던 시간”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여성 페이스북 이용자들은 상대적으로 큰 변화가 없어서 비교됐다”라고 지적했다.
여하튼 '20대 사진 올리기‘ 사건은 페이스북이 10~20대가 자주 이용하는 비주얼 혹은 오디오 매체가 아닌 40대 이상이 주로 이용하는 읽기 매체라는 게 드러난 사건이었다. 한 페이스북 이용자가 10대인 아들에게 “왜 페이스북을 하지 않느냐?”고 묻자 “구려서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구린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서글픈 생각도 든다. 생각해보면 자고로 모든 어른들은 꼰대였고, 모든 아이들은 버릇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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