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수의 문화누리】 세계인들은 왜 <오징어 게임>에 열광할까?
오광수 문화기획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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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7 14:50 | 최종 수정 2021.10.02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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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월 동안 미국이나 일본의 콘텐츠를 흡수하면서 자란 세대들은 뿌리 깊은 문화 사대주의에 물들어 있었다. 문학작품은 물론 영화와 드라마, 대중음악과 뮤지컬에 이르기까지 물 건너온 브랜드를 신봉해왔다. 비틀스에서 시작된 팝 음악의 그것이 그러했고,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열풍이 또한 그러했다. 영화도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졌다면 일단 웰메이드거나 블록버스터로 알고 봤다. 브로드웨이에서 상륙한 뮤지컬이라면 창작 뮤지컬보다는 한 수 위라고 대접한다. 그러나 작금의 문화계에서 이러한 문화 사대주의가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다.
한국의 작은 제작사가 만든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면서 풍성한 화제를 불러오고 있다 <오징어 게임>은 한국 드라마 최초로 미국 넷플릭스 전체 1위를 차지했다. 넷플릭스 순위 집계 사이트에서도 전체 2위를 차지하며 한국 드라마로서는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오징어 게임>은 돈이 없어 벼랑 끝에 몰린 456명의 참가자가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서바이벌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이는 이야기다. 지면 죽는 게임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린 시절 우리가 즐겼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뽑기, 구슬치기, 오징어 게임’ 등이다.
화제작들이 나오면 언제나 그렇듯이 각종 리뷰들이 쏟아지고, 작품 제작 뒷이야기와 파생상품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 드라마가 어디서 본 듯한 표절작이라는 논란부터 치열한 경쟁사회의 단면을 예리하게 풍자하고 있다는 분석도 잇따른다. 또 극중 가면 쓴 외국 배우들의 어설픈 연기가 옥에 티라는 지적도 있다.
드라마 도입부에 첫 게임으로 등장하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2014년 개봉한 일본 영화 <신이 말하는 대로>의 도입부와 같은 설정이어서 논란이 됐다. 그러나 황동혁 감독은 2008년 처음 구상할 때부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을 앞세웠다고 해명했다. 일부 네티즌은 MBC <무한도전>팀이 각종 게임 베틀을 펼치는 코너와 똑같은 게임이 등장한다고 지적했다. ‘구슬치기, 딱지치기, 무궁화 게임, 뽑기’ 등이 <무한도전>에서도 했던 게임이라는 것이다.
또 ‘배틀로얄(최후의 1인이 살아남을 때까지 벌이는 생존싸움)’류의 서사를 가진 각종 영화나 드라마와 유사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 또한 같은 유형에 묶일 수 있는 영화나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이 한두 작품이 아니어서 베꼈다고 말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오히려 현대사회의 무한경쟁 체제에서 누가 우위에 설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 한국적인 설정과 문법으로 답한 수작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왜 오랜 시간 동안 콘텐츠의 변방이었던 한국에서 제작된 드라마에 세계인들이 열광할까? 첫손에 꼽는 이유는 언어장벽과 금기가 사라진 플랫폼의 등장이 잠재된 한국의 콘텐츠 제작능력과 만나서 날개를 달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개성이 강하고 다소 폭력적인 드라마가 한국의 공중파였다면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따른다.
영화감독 이무영(동서대 영화과 교수)은 “넷플릭스 등의 등장으로 콘텐츠에 국경이 사라지고 있다”면서 “언어적 한계에서도 자유롭고 소재 또한 어떠한 금기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 드라마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배틀로얄 부류의 익숙한 형식을 바탕으로 한국적인 놀이문화를 접목해서 ‘낯설게 하기’를 시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오징어 게임>의 시청자들은 드라마에 등장하는 ‘뽑기’나 ‘줄다리기’와 같은 놀이에 호기심을 보이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이제 더 이상 문화 사대주의에 빠져서 우리가 생산하는 대중문화 상품에 대해 폄훼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세계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작품이 지금보다 더 많이, 더 자주 등장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오징어게임>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역의 이정재는 딸을 만나러 떠나는 미국행 비행기의 탑승구에서 비행기에 오르지 않고 돌아선다. 새로운 시즌을 예고하고 있는 셈이다. 또 한국 콘텐츠의 상승세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암시하는 시그널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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