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안내】 시를 열심히 쓰는 시인은 축구도 잘한다

_시인축구단 ‘글발’ 창단 30년 기념 앤솔로지, <두 발로 쓰는 시(詩)>

조용석 기자 승인 2021.10.14 10:36 | 최종 수정 2021.10.14 11:24 의견 0

시를 열심히 쓰는 시인은 축구도 잘한다는 말이 '글발'로부터 나왔다.
30년 전인 1991년 축구를 즐기기 위해 모인 20,30대 시인들의 모임인 시인축구단 '글발'이 30년 기념 앤솔로지를 펴냈다.


시인축구단 ‘글발’ 창단 30년 기념 앤솔로지 <두 발로 쓰는 시(詩)』>

세계 최초, 유일의 시인축구단 ‘글발’이 창단 30년을 맞아 앤솔로지 <두 발로 쓰는 시(詩)>를 발간했다. 글발에서 활동 중인 회원 39명의 축구와 관련된 시 117편과 축구와 글발과 얽힌 이야기 8편, 신준봉 <중앙SUNDAY> 문학출판 담당기자이자 글발 회원의 발문 등 흥미로운 산문도 실었다.

시인들이 ‘고통의 축제’ 축구를 즐기는 이유는 취미가 아니라 중독이기 때문이다. 몸이 시가 되는 축제랄까. 그에 따른 희생이 만만치 않으니 카니발리즘 같기도 하다. 축구는 몸속 이물질을 녹여버리는 듯한 황홀을 준다. 체력이 방전되면서 잡념조차 기력을 상실하는 ‘러너스하이’를 느낄 수 있다.

아무리 동네축구여도 골은 기적이자 완벽한 힘이다. 평소 실력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우연한 패스들이 이뤄진다. 일순 태백산맥을 넘어선 듯 광활한 바다가 열린다. 냅다 찼을 뿐인데 공은 수비수와 골키퍼가 어찌할 수 없는 한 줄기 외길을 따라 날아간다. 골 하나하나에는 시 한 편이 만들어지는 순간의 비약과 천의무봉이 들어 있다. 골은 시적인 순간, 시가 써지는 순간 혹은 한 줄기 섬광의 순간의 황홀과 비슷하다.

시인축구단 글발의 회원들은 축구를 하면서 스스로 존재감을 확인한다. 이들은 2020년 초반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축구 경기를 자주 뛰지 못하고 있지만 2021년 10월 현재까지 축구를 즐기고 있다. 시인축구단 글발은 한 달에 한두 번 토요일에 모여 축구를 한다. 주경기장 없이 상대팀과 운동장을 물색해 떠돌아다닌다. 이것 또한 매력이다. 이번 달에는 어떤 팀과 경기를 하게 될까. 이번에는 어디 가서 경기를 할까. 그 정처 없음이 시인들답다.

그 덕에 그동안 전국적으로 돌아다니며 수많은 낯선 팀들과 경기를 했다. 파주 NFC(축구국가대표 훈련장), 제주 DAUM 본사, 전라도 광주와 장흥, 충청도 음성과 제천 그리고 단양, 경기도 안성과 수원, 강원도 춘천과 원주 그리고 정선과 고성, 경상도 함양과 포항 영주, 서울 근교 강화와 평택 등이었고, 그때마다 거의 다른 팀들이었다.

글발 축구의 속성과 효과를 말해보자. 글발 축구는 우선 항간에 잘못 알려져 있는 시인들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킨다. 시인들은 이슬을 먹고사는 존재가 아니다. 시인 아닌 사람들처럼 시인도 똑같이 울고 웃는다. 화내고 슬퍼한다. 결국 사람이다. 그런데 공을 차고 어쨌든 시를 쓴다.

이런 실상은 시인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려져야 한다. 그래야 글발 회원들이 쓰는 서정시를 독자들이 부담 갖지 않고 대할 수 있지 않을까. 자기들과 비슷한 사람들이 엮어낸 무엇이 서정시라는 것일 테니 말이다. 역으로 글발은 서정시 대중화의, 이미 서정시 대중화시대가 아니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프론트러너, 문턱을 낮추는 일등공신 역할을 해냈다.

글발 회원들은 잊고 있을지 모르지만 시인축구단 글발은 시와 거리를 두고 나날의 삶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신선하게 느껴지는 존재들이다. 글발에서 공을 찬다고, 공 차고 응원하는 시인들 모임이라고, 구호가 ‘시발 글발’이라고. 이런 단순한 레퍼토리만으로 최소한 5분은 상대를 즐겁게 해줄 수 있다. 그들 마음속에 시는 축구와 마찬가지로 즐거운 놀이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렇게 글발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순간에 임할 때 글발에 대한 애호와 애정은 거의 무한대로 증폭된다.

세계 최초 시인축구단이라는 기치를 건 ‘글발’의 탄생은 1991년 초였다. ‘글발’ 초기 멤버들은 ‘1980년대의 막내 시인’들이 대부분이었다. 1980년대 중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시단에 데뷔한 시인들이 주축이었다. 당시 글발의 주요 멤버는 초대 단장 이정주를 비롯 김요일, 김중식, 김정수, 박완호, 박정대, 백인덕, 서영채, 우대식, 이위발, 전윤호, 조현석, 최준, 함기석 등과 구순희, 김상미, 김지헌, 신수현, 최춘희 등 서포터스를 자칭한 여자 시인들이다. 당시 한국시단의 대표적인 젊은 시인들이 망라됐다고 할 수 있다.

현 단장 김왕노와 총무 최세라, 김경주, 김광호, 김승기, 박종국, 박지웅, 서수찬, 석민재, 신준봉, 이철경, 최광임, 최영규, 최치언, 황종권 시인들이 2000년 이후 합류하여 아직도 함께 축구를 즐기고 있다.

<시인축구단 '글발' 회원들>
강수 고영민 김경주 김광호 김두안 김상미 김승기
김왕노 김점미 김정수 김중식 김지헌 문정영 박완호
박종국 박지웅 백인덕 서수찬 석민재 신수현 신준봉
우대식 이시백 이위발 이정주 이진욱 이창수 이철경
장종권 전윤호 정병근 조현석 차성환 최광임 최세라
최영규 최춘희 최치언 함기석 황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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