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塔)

원구식

무너지는 것은 언제나 한꺼번에 무너진다.

무너질 때까지 참고 기다리다 한꺼번에 무너진다.

塔을 바라보면 무언가

무너져야 할 것이 무너지지 않아 不安하다.

당연히 무너져야 할 것이

가장 安定된 자세로 비바람에 千年을 견딘다.

이렇게 긴 세월이 흐르다 보면

이것만큼은 무너지지 않아야 할 것이

무너질 것 같아 不安하다.

아 어쩔 수 없는 무너짐 앞에

뚜렷한 名分으로 탑을 세우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다 보면

맨 처음 塔을 세웠던 사람이 잊혀지듯

塔에 새긴 詩와 그림이 지워지고

언젠간 무너질 塔이 마침내 무너져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어디에 塔이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

강에 가 비 내리는 강가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지광국사 해린(984~1070) 의 사리를 봉안한 탑은 탑신, 옥개석, 상륜부의 눈에 띄지 않는 하단부분까지 탑 전체에 구름, 연꽃, 봉황, 신선의 무늬가 빈틈없이 조각되어 있다. 일제 때 일본놈들에게 해체되고 그때 사리함은 사라지고. 6,25때 폭격 맞아 복원되어 경복궁에 앉아계시던 탑이다.


살고 죽는 게 괴로운

오늘은 왜 그 탑이 보고싶어졌을까.

승적도 법랍도 없는

나는 죽어도 탑이 되지는 못하는데

그 안에 들어 있던 사리함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부론으로 돌덩이만 다시 돌아왔다.

나는 그 탑을 보려고 비가 몹시 오던 날, 경복궁엘 간 적이 있다.

그놈의 돌덩어리가 뭐라고

바위덩어리가 깎여 탑이 되고 무너져 돌멩이가 되고 조약돌 되고 모래알 되고 먼지되고 다시 돌이 되고

다시 탑이 되고.

내가 세운 마음의 탑들은 다 어디 갔을까.

해린스님의 울음

법신의 탑

날이 환해지자 꽃들이 탑들이

나도 탑 너도 탑, 하며 솟아 오른다

나비 새새끼들까지

그렇게 승적도 법랍도 없는 나도

탑신의 허공을 휘적거리며 똥을 싸대는데

한참 허공의 탑을 보다,

미륵산 뒤꽁댕이를 보는데

울컥해진다. 그랬다.

자유롭게 살았다지만 나를 찾아 떠돌았을 뿐이다.

미륵산(689m)은 원주시 남쪽, 충주시 소태면과 경계를 맞댄 귀래면에 있다. 나는 그 반대편 부론면 손곡리에 산다.

통영에 있는 미륵산과 익산에도 있는 미륵산도 좋지만

나는 오고 감이 없는 원주 미륵산이 좋다.

삶도 죽음도 없는 미륵산

오늘밤엔 천년 전의 황산사를 오를까

미륵암, 똘중 혜범을 만나 곡차를 마실까

새 세상을 열어줄 마이트레야

그날이 기다려진다. 그날이

그날은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