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동업의 일상통신】 상도보다 하도가, 하도보다 청소가

_셀프로 바닥 에폭시 도장공사를 진행하면서

원동업 <성수동쓰다> 편집장 승인 2021.10.28 23:28 | 최종 수정 2021.10.28 23:37 의견 0

동네에서 마을 역사와 문화와 사람들에 대한 전시를 기획했다. 그간 잡지도 내고 글도 쓰고 영상으로 만들어서 나누어 왔지만, 충분하지 않은 듯했다. 한번쯤 직접 사람들이 모여서, 그걸 직접 보기도 하고 만져보기도 하는, 그런 진짜 공간을 가져보고 싶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나 기승인 때여서 그게 가능할지 여부는 불투명한 때였지만, 꿈이나 기획은 언제든 마음에 품을 수 있는 것이니까. 제목은 ‘우리동네(마장동) 콘테츠 박물관 이야기 갤러리’-.

위 전시에 대한 가능성이 차츰차츰 열리게 된 계기는 결국 만남을 통해서였다. 성수동 사람인 내가 마장동까지 가서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은 마을이 가진 ‘요상스런’ 특징들 때문이었다고 밖엔 말할 수 없다. 마을에선 사람을 만나면 확장하게 된다. 친구가 되면, 친구 따라 강남을 간다고 일도 같이 함께하게 되는 법이다. 요거 한번 해보지 않으실래요? 친구랑 함께, 재미난 일을 하는 건, 아이들이 아니라도 누구라도 언제나 흥미로운 법이니까. 우린 전시도 해보기로 했다.

누구와 언제 무엇을 가지고 하는 이야기가 정해졌으니, 그렇담 이제 어디서라는 이야기를 할 차례. 공공기관을 빌릴 수는 없는 일었다. 사적 상업공간은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마장동에는 작은 공장들이 많고, 경기 때문에 비어있는 임대공간도 조금 있었다. 마침 친구의 공간이 그런 데가 있었고 그는 기꺼이 그곳을 쓰자 했다. 문제는 그곳이 오래 비워졌던 곳이라 바닥이 맨 시멘트로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걸으면 세멘 먼지가 풀풀 올라왔다.

바닥공사를 하기로 했다. 가장 싸게 먹히는 방법은 장기하의 노래 <싸구려 커피>에 나오는 비닐장판을 사다가 까는 일이었다. 60여만 원쯤 비용이 든다 했다. 제대로 업자들에게 맡기면 기백만 원 견적이 돌아왔다. 장판을 깔고는 ‘간지’가 나겠나? 전시를 하는 입장에서 그건 쫌…. 직접 공사를 해보기로 했다. 친구는 ‘내손은 앞발’이라 나보고 앞서서 일을 진행해 달라 부탁했다.

없는 살림에 살아왔던 게 이런 때는 복이 된다. 보고 자란 게 집을 고치는 아버지 뒷모습이었다. 그렇게 스스로의 공간을 고치는 삶이 익숙한 사람들은 ‘공사란 그저 일상인 것!’ 그러자고 해버렸다. 그리고 열심히 찾아본 바닥공사법들. 별별 방법들을 소상하게 소개시켜주는 유튜버들 덕분에 공사에 대한 거의 모든 방법을 확정했다. 찾으면 찾을수록 디테일들도 나왔다. 꼼꼼히 필요한 내용들을 공사할 친구들과 공유도 하고, 재료들도 샀다. 내 작업실을 만들 때 장만했던 공구들도 챙겼고…. 가장 현장으로.

바닥공사는 두 개의 지옥을 통과해야 한단다. 첫 지옥이 먼지지옥-두 번째 지옥은 냄새지옥이라고-. 때마침 20년간 집에서 써온 진공스팀청소기가 작동되지 않았다. 고객센터로 찾아갔을 때, 스팀 부분은 고칠 수는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제 생산되지 않는 단종제품인 탓이었다. 그 청소기를 공사에 투입했다. 한 양동이의 시멘트 먼지를 청소기가 감당해냈다.

몇 번의 경험을 통해 나는 알고 있었다. 마을에서 벽화를 그릴 때, 그림 타일을 붙일 때, 심지어 그림을 그릴 때, ‘선생들’이 언제나 강조한 것은 바탕칠이었다. 칠을 하는 일, 도장은 결국 안료 혹은 상도제(제일 바깥면의 칠재료)를 표면에 붙여내는 일이었다. 물론 상도 안료도 어느 정도는 접착성을 갖지만, 하도제 바탕제를 칠하는 것이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중요한 갈림길이었다. 이에 더하여 하도제가 제대로 먹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더 필요했다. 하나는 청소, 또 하나는 원래 바탕이었다.

청소가 안 된 상태에서는 아무리 재주 좋은 하도제가 칠해져도 그게 제 역할을 못하는 법이었다. 그러면 많은 수고를 더한 상도제(도료)는 헛되게 떠 있다가 모두 벗겨질 운명이 되는 것이었고. 문제는 청소를 하는 일의 수고가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도제 역시 마찬가지. 우리는 겉만 볼 수 있는 법이니까. 그러니 말할 수밖에. 상도보다 하도가, 하도보다 청소가, 청소보다 바탕이 언제나 더 중하고 중하다고. 그건 우리 삶에서도 똑같이 일어나는 일이라고. 내게 하도는 청소는 바탕은 무엇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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