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아버지를 소래 포구의/ 난전에서 본다, 벌써 귀 밑이 희끗한/ 늙은 사람과 젊은 새댁이 지나간다/ 아버지는 서른여덟에/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지난 날/ 장사를 하느라 흥해와 일광을 돌아다니며 얻은/ 병이라 하지만 아버지는 언제부턴가/ 소래에 오고 싶어 하셨다/ 아니 소래의 두꺼운 시간과 마주한 뻘과 협궤 쪽에 기대어 산/ 새치가 많던 아버지, 바닷물이 밀려나가는/ 일몰 끝에서 그이는 젊은 여자가 따르는/ 소주를 마신다, 그이의 손이 은밀히 보듬는/ 그 여자의 배추 살결이/ 소래 바다에 떠밀린다/ 내 낡은 구두 뒤축을 떠받치는 협궤 너머/ 아버지는 젊은 여자와 산다 -송재학 <소래 바다는> 전문
소래에서, 갯벌은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 오로지 먹기 위해서 오는 사람들과, 기어이 먹히기 위해서 오는 갯것들의 한바탕 싸움이 끝난 후 다시 갯벌로 버려지는 유해들과, 그것에 기대어 사는 갈매기들의 배설물까지 다 먹어치운 다음에도 갯벌은 여전히 배가 고프다. 그래서 소래에서, 갯벌은 사람들의 추억까지도 먹어치운다.
소래의 작은 부둣가에서 월곶으로 이어지는 철교에는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두 량의 ‘꼬마기차’가 덜컹거리며, 때론 기우뚱거리며 좁은 바다 위를 건너다녔다. 그때 서로의 무릎을 맞대며 건너야 했던 좁은 선로 위를, 이번에는 추억을 핑계 삼은 사람들이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일렬로 오고 간다. 하지만 그뿐. 철교가 끝나는 지점에서, 마치 반환점을 돌기라도 하듯 다시 원래의 자리로 잽싸게 돌아와, 횟집이거나 아니면 길거리에 나앉아서라도 허겁지겁 허기를 채운다.
젊은 날, 상처받은 영혼은 곧잘 0.762m의 좁은 궤도 위에 몸을 맡기곤 했다. 어천, 야목, 사리, 일리, 고잔, 원곡, 군자, 달월 그리고 소래 건너 남동, 송도까지 수인선 간이역마다 올라선 풋것과 갯것들이 그 영혼과 적당히 몸을 뒤섞었다. 그 비린내에 섞여있는 바람과 소금기가 아픈 상처를 치유해주기를 바랬던 것일까.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순정했던 젊은 날의 아픈 추억 따위를 새삼 꺼내놓지 않는다. 단지 ‘딸따리’라 불리던 협궤열차가 지나가는 자동차를 피할 정도로 속도가 느렸다든지, 안산 원곡고개에서는 힘이 달려 손님들이 내려서 기차를 밀어야 했다느니, 심지어 화성 야목의 건널목에서 협궤열차와 버스가 부딪쳤는데 열차만 벌렁 넘어지더란 이야기를 하며 배꼽을 잡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연신 출처불명의 횟감들에게 젓가락질 해대기를 멈추지 않는다.
소래어시장만 해도 그렇다. 한때 옆집 몰래 꽃게 한두 마리쯤은 너끈히 덤으로 얹혀주거나, 새우젓 됫박을 담그면서 양팔을 쭉 뻗어 마치 넘치도록 퍼줄 것처럼 폼이라도 잡던 넉넉한 인심은 어디로 갔는지, ‘힘든 삶이 묻어나는’ 그런 포구가 아니라 ‘찾아온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포구라는 푸념이 시장 한켠에서 들려온다. 그래도 ‘물이 옛날 같지 않다’느니, ‘동네 횟집보다 비싸다’느니 연신 투덜대면서도 밀려오고, ‘웬 사람이 이렇게 많으냐’면서도 계속 밀려드는 사람들로 소래포구는 넘쳐난다.
소래에서 갯벌은, 그냥 밀려왔다 밀려간다. 생산의 원형이기를 포기한 갯벌은 소비의 배출구로서 고여 있으면서도 밀려가고, 밀려오면서도 고여 있다. 옛 소금밭의 염기마저 사라져버린 지금, 썩지 않아도 이미 썩어간다. 소래에서 사람들은, 추억 하나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갯벌의 그늘에 떠밀려 재빨리 삶의 진짜 저잣거리로 돌아간다. 그리고 아무리 기다려도, 이제 좁고 느린 협궤열차는 오지 않는다.
저 오래 버려진/ 갯벌처럼 드러낸 가슴들끼리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며 온기 나누었을 것이다 오지 않는 협궤열차를 기다리며, 바람이 귀신 울음소리를 내며 윙윙대는 밤이면 너무 외롭고 막막해져서 서둘러 한몸이 되어 엉켜버리기도 했을/ 달빛 커튼 아래 –강해림 <소금창고-소래포구에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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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해양생태공원은 염전으로 명성을 날렸던 옛 소래포구의 흔적이 그나마 남아있는 곳이다. 빈 소금창고 몇 기와 전시용 수차, 말라버린 갯벌에 징경이해초만 무성한 황량한 곳이지만, 완전히 도시화되어버린 인천의 ‘마지막 남은 허파’와도 같은 곳이다. 인근의 옛 소금밭 터로 속속 들어서는 아파트단지들을 보노라면, 작은 움직임마저 멈춰버린 듯한 이 빈 공간조차 자못 소중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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