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 Mujin 10km’라는 이정비(里程碑)를 보았다.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은 그렇게 시작한다. 그렇지만, 남해고속도로 순천IC에서 길을 내리면 ‘무진(霧津)’을 가리키는 이정표 대신 ‘순천만 갈대밭’을 알리는 안내판이 나온다. 그렇다 해도, 정말 한 10여 킬로미터를 더 달리면 그곳은 말 그대로 ‘안개나루’다. 밤새 물을 건너온 안개가 스멀거리며 진주(進駐)해 있는 곳, 순천만 대대포의 아침은 안개를 뚫고 열린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나는 새벽녘 이 안개 속에서 무엇을 보기 위해 왔는가. 소설 속의 주인공에게 ‘무진’은 고향이다. 그것도 ‘골방 안에서의 공상과, 불면(不眠)을 쫓아보려고 행하던 수음(手淫)과, 곧잘 편도선을 붓게 하던 독한 담배꽁초와, 우편배달부를 기다리던 초조함 따위’ 속에나 있던 고향이다. 비록 출세는 하였지만 그의 귀향은 금의환향이 아니라 무위(無爲)로의 여행일 뿐이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한 여자를 만난다. 그녀는 술자리에서 무표정하게 유행가를 부르는 음악선생이다.
결국엔 나와 여자만이 남았다. 우리는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검은 풍경 속에서 냇물은 하얀 모습으로 뻗어있었고 그 하얀 모습의 끝은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제 ‘무진교’를 건너서 갈대밭의 끝 ‘용산전망대’로 간다. 키 큰 갈대숲을 헤쳐가면, 그곳에서 냇물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안개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이윽고 갈대밭이 끝나면 그곳은 바다다. 그리고 남은 안개가 걷히고 사위(四圍)가 드러나면, 밤새 갈대숲에서 추위에 떨던 새들이 하늘 끝으로 날아오른다. 사람들은 채 마르지 않은 몸으로 배에 오르고, 배는 갈대의 수군거림을 헤치며 저어간다.
그들은 이제 점점 수군거림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려들어가고 있으리라. 자기 자신조차 잊어버리면서, 나중에 그 소용돌이 밖으로 내던져졌을 때 자기들이 느낄 공허감도 모른다는 듯이 수군거리고 또 수군거리고 있으리라.
사실 해가 멀쩡하게 떠오르고 난 다음의 갈대밭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갈대의 서걱거림은 왠지 을씨년스럽고, ‘숨어 우는 바람소리’에 몸은 공연히 움츠러든다. 해가 떠도 쓸쓸하기만 한 그 풍경 속에서, 문득 현실로 돌아온 사람들은 빈속을 채우기 위해서 어디론가 바삐 떠나간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다 끝난 것은 아니다.
그 여자는 서울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그 여자는 안타까운 음성으로 얘기했다. 나는 문득 그 여자를 껴안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대대포에서 순천만을 끼고 서쪽으로 달리면 그리 머지않아 화포가 나온다. 꽃의 포구인지 불의 포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늦가을의 쓸쓸함만이 남았다. 봉화산 밑의 소금밭은 그냥 갯빛으로 널브러져 있고, 늙은 어부는 하릴없이 하릴없는 배를 선착장 쪽으로 마냥 끌어당긴다. 길을 내쳐가면 여자만(汝自灣) 깊숙이 꼬막으로 유명한 벌교가 나오지만, 늦가을의 마지막 빛이 마저 그리운 나는 다시 순천만을 되돌아 여수의 화양반도를 달린다. 그리고 마침내 화양반도의 반대쪽 가랑이, 돌산의 끝자락 임포 향일암 아래로 잦아든다.
나는 그 방에서 여자의 조바심을, 마치 칼을 들고 달려드는 사람으로부터, 누군가 자기의 손에서 칼을 빼앗아주지 않으면 상대편을 찌르고 말 듯한 절망을 느끼는 사람으로부터 칼을 빼앗듯이 그 여자의 조바심을 빼앗아주었다. 그 여자는 처녀는 아니었다. 우리는 다시 방문을 열고 물결이 다소 거센 바다를 내어다보며 오랫동안 말없이 누워 있었다.
임포에서의 하룻밤은 어수선해도 다행히 지난 몽정(夢精)의 밤을 지우기라도 하듯 향일암에 해가 뜬다. 나는 바다로 떠오르는 해를 보지 않는다. 어디선가 유숙(留宿)의 밤을 지새웠을 연인들의 낯빛에서 해를 본다. 숨기지 않는, 숨을 필요가 없는 사랑은 아름답다. 그들은 이제 방죽포로, 무슬목으로, 오동도로, 만성리로 여수반도의 동쪽자락을 마음껏 날아다니며 청춘을 구가하리라.
한번만, 마지막으로 한번만 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가는 것을, 유행가를, 술집여자의 자살을,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한번만이다. 꼭 한번만, 그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한정된 책임 속에서만 살기로 약속한다.
그 음악선생이 대학 졸업연주회 때 불렀던 노래가 ‘어떤 개인 날’이라고 했던가. 아니, ‘어떤 개인 날’이면 어떻고, 또 ‘목포의 눈물’이면 어떤가. 추억 속에 갇혀있을 때 모든 노래는 그리움으로 서럽다. 청춘의 구가(謳歌)를 뒤따라갈 때 그 빛은 부러움으로 무겁다. 나는 이왕 추억으로 뒤쳐진 김에 광양만을 돌아, 섬진강 하구 망덕포구로 빠져 배알도 앞 그 어둔 바다에서 지기로 했다. 거기 한 점 전어 굽는 냄새에 스산한 취기를 달래보리라. 다시 순천을 빠져나오는데, 뉘엿한 가을햇볕이 뒤따라오고 있었다.
거기에는 선명한 검은 글씨로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씌어있었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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