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기억】빛과 물의 축제

_홍도에서 흑산도로

유성문 주간 승인 2021.12.29 23:09 의견 0

빛은 무엇인가. 빛은 시간이다. 그러나 항시 흐르는 시간만은 아니다. 예컨대 한 컷의 사진 속에 담긴 빛은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 무릇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거기 멈추어 있다. 찰나로 단절되어 있는 시간, 그 속에 세상의 비의(秘意)가 숨어 있다. 물은 무엇인가. 빛보다 더한 시간이다. 결코 멈추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내밀한 움직임을 계속하는 물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시간이다. 한반도의 최서남단 홍도에서 흑산도로, 흑산도에서 홍도로 마음껏 떠다니며 빛과 물이 펼치는 축제를 즐겨보라. 마침내 빛이 물이 되고, 물이 빛이 되는 ‘적과 흑’의 화려한 교차를.

홍도 유람선 ⓒ유성문(2004)

빛의 홍도로

흑산군도를 가기 위해서 목포에서 이틀 밤을 묵어야만 했다. 서울에서 출발한 고속버스는 남도의 첫머리에서 눈발을 만났다. 사실 출발부터 조짐은 수상했다. 칼바람 속에서 어렵게 길을 떠났지만 유배의 섬 흑산은 너무 멀기만 했다. 그러고도 못마땅한지 끝내 통과의례를 요구했다. 먼바다에 내린 태풍주의보로 배들은 목포항에 발이 묶였고, 선착장은 눈으로 가득했다.

이틀 밤의 목포는 분분한 눈발과, 흑산도에서 건너왔다는 홍어의 곰삭음과, 칼칼한 콩나물해장국, 그리고 무위(無爲)로 채워졌다. 다행히 3일째의 아침은 잠잠했다. 나는 출발했다. 빛의 홍도로.

정약전의 1주일 유배 길을 단 2시간여로 줄여놓은 쾌속선은 기다렸다는 듯 포말을 일으키며 달려 나가는가 싶더니, 비금-도초도를 지나 난바다에 이르면서 심하게 출렁대기 시작했다. 태풍주의보는 해제되었지만 바다는 아직 완전히 잠잠해진 게 아니었다.

배가 큰 너울을 타고 올라설 때마다 50줄로 보이는 단체관광 아줌마부대는 비명으로 합창했고, 내려서면서 소녀 적 웃음소리로 까르르 가라앉았다. 멀미를 이겨내지 못한 한 여인네는 갈매기처럼 꺼이꺼이 울어대다가 기어이 정신줄을 놓기까지 했다. 저토록 힘들어 할 길을 우리는 왜 떠나는 것일까. 아무 생각 없었다고 탓하지는 마라. 어차피 세파에 시달릴지언정 이렇듯 모진 추억 하나라도 안고 가는 것이 훨씬 낫지 않겠는가. 나는 멀미하는 그녀의 고통에 동의했고, 마침내 희열을 느꼈다.

홍도 등대 ⓒ유성문(2004)

홍도는 과연 빛의 섬이었다. 큰바람이 미처 끌고 가지 못한 구름 사이를 뚫고 내려선 빛은 짙푸른 바다물결 위로, 당산숲의 동백 이파리 위로, 파도에 씻긴 빠돌 위로 마구 출렁거렸다. 한동안 그 빛의 무중력 상태에서 나는 비어(飛魚)처럼 날아다니고 있었다.

유람선을 타고 홍도를 일주했다. 수십 년을 그 일에 종사해왔다는 입담 좋은 선상 관광안내인은 유람 내내 유난히 홍도의 소나무를 자랑했다. 그의 이야기는 적확했다. 저급하고 인위적인 상상과 작명이 만들어놓은 무슨무슨 바위들보다는 벼랑마다 빽빽이 들어선 소나무 군락이 보여주는 청신한 자태가 시리도록 아름답기만 했다. 그 위로도 빛은 푸르게 내려앉았다.

제 흥을 이기지 못한 안내인은 마침내 시까지 읊어댔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아쉽게도 나는 홍도에서 붉은 빛을 보지는 못했다. 태풍으로 짧아진 일정으로 일출이나 일몰을 볼 기회를 빼앗겨버린 탓이었다. 그래도 백주의 투명한 겨울 햇빛 속에 찬란한 금적(金赤)이 숨겨져 있음은 놓치지 않고 보았다.

유람의 시간은 끝나고, 서서히 붉게 물들어가는 바위섬의 꼭대기에 올라앉아 있는 가마우지들과 함께 물 건너 아련한 유배의 섬, 흑산을 바라보았다. 거기 자산의 물고기들이 나를 마주보고 있었다.

홍도에서 가마우지들과 함께 바라본 흑산도 ⓒ유성문(2004)

유배지에서 저물다

홍도에서의 1박을 마다하고 흑산도에 이르는 뱃길은 어둑했다. 아무리 홍도에 비해 별 볼일 없다고 할지언정 나는 홍도보다 흑산도를 더 사랑한다. 빛은 이내 사그러들겠지만, 어둠은 항상 밝아올 빛을 예비하고 있는 법이다.

사실 흑산도는 홍도의 형이다. 지금은 비록 홍도의 절경과 위세에 눌려 지내지만, 고통으로 깊어진 내력에 있어 형만 한 아우는 없다. 흑산도에서 유배의 삶을 살다 간 <자산어보>의 저자 손암 정약전은 다산 정약용의 형이다. 사후에서까지 정약용의 자취에 이르지 못하는 듯 보이지만, 유배지에서 정약전이 이룩해놓은 사실적이고 박물적인 기록의 정신은 결코 녹녹하게 볼 일은 아니다.

200여 년 전 신유박해로 유배 길에 오른 정약전은 신지도와 우이도를 거쳐 흑산도 사리(모래미) 마을에 자리 잡는다. 그의 치열한 실사구시 정신은 유배지에서도 멈추지 않는 것이어서, 복성재를 지어 섬마을 아이들을 가르쳤고, 흑산도 일대에 사는 물고기들의 생태를 기록한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학 서적인 <자산어보>를 저술했다. 우의 깊었던 형은 강진에 유배되어 있던 동생이 해배되어 자기를 찾아올 것이란 소식을 듣고, 그 수고를 조금이나마 덜어줄 요량으로 뭍에서 더 가까운 우이도로 마중 나갔다가 끝내 조우도 이루지 못한 채 한 많은 삶을 마감했으니, 애틋한 심사는 검은 물빛만큼이나 깊어져갈 뿐이다.

정약전이 살았던 사리마을 ⓒ유성문(2004)

흑산도를 유배의 섬으로 떠올리게 하는 데 기여한 또 한 사람은 바로 구한말 꼬장꼬장한 선비정신으로 유명한 면암 최익현이다. 강화도조약에 반대해 도끼를 메고 '왜놈을 물리치지 않으려거든 신의 목을 베라'는 상소를 올려 흑산도로 유배당한 최익현은, 천촌리 지장암에 '기봉강산 홍무일월(箕封江山 洪武日月)'이라는, 배일사상을 천명한 글씨를 새겨놓았다.

이윽고 자산에서의 하루도 어김없이 저무는데, 예리에서 얻어먹은 홍탁으로 나는 제법 취해 있었다. 밤바다를 옆에 끼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아직 잠들지 못한 바다는 나루에 매인 배를 핑계 삼아 자꾸만 삐걱거렸고, 흩어진 발걸음마냥 흥얼거리는 노랫가락마저 갈 지 자로 비틀거렸다.

“홍도야 우지 마아라~~ 흑산도 아가씨가 있다아.”

_홍어와의 인터뷰

흑산도 홍어 ⓒ유성문(2004)

지금은 한 번 대면하기가 그토록 어렵고, 어렵사리 만나도 비싸게만 군다는 홍어를 인터뷰했다. 통역은 흑산도 수협 소속의 35호 홍어중매인 정해진 씨다.

_어디서 체포되었는가.

“흑산도 상위에 위치한 대둔도 인근에서다.”

_신분을 밝혀 달라.

“순수 흑산도 혈통의 3년산 1번 수치(수컷)다.”

수협 위판장에서는 크기에 따라 번호를 붙여 부른다. 수치 1번은 5㎏급이며, 아래로 내려갈수록 1㎏ 정도의 차이가 난다. 홍어는 특이하게도 클수록 맛이 있다.

_어떻게 체포되었는가.

“짝지인 암치(암컷)와 갯벌 속에 노닐다 현상금을 노린 어부의 어구에 걸려들었다. 다행히 나보다 비싼 짝지 2번 암치는 살아남았다.”

암치 1번은 수치보다 더 커서 보통 8㎏급이며, 가격은 30만원 선(2021년 시세)으로 등급에 따라 5만원 정도의 차등을 이룬다. 수치는 암치에 비해 10만원 이상 싸게 매겨진다. 고기 맛이 훨씬 덜 부드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치를 박대하던 어부들의 입에서 ‘만만한 게 홍어 ×’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_<자산어보>를 아는가.

“왜 묻는지 이유를 알겠다. 나는 그런 식의 비평과 훈계를 통한 위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자산어보>의 ‘홍어 편’은 그대로 사람의 이야기지,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다. 실지 지금 홍어를 잡는 ㄷ자형 낚시바늘에는 미끼를 쓰지 않고 있다.”

<자산어보>의 ‘홍어 편’에서는 드물게도 예화 하나를 곁들이고 있다. 미끼를 노린 암놈이 바늘에 걸려 납작 엎드려 있을 때, 음욕에 겨운 숫놈이 덮쳐들어 마침내 두 마리가 한꺼번에 걸려 올라오니, ‘암놈은 식탐에 죽고, 숫놈은 음탐에 죽는다’고 일렀다.

_당신을 잡아들인 사람들의 식탐을 원망하는가.

“꽃이 진다고 어찌 바람을 탓하겠는가. 죽어 썩기도 할라치는데, 푹 삭혀져 사람들에게 일미(一味)를 제공하고, 천식을 가라앉히며 피를 맑게 하니 그저 보시로 여길 따름이다. 다만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거늘, 잘 먹지도 못하면서 홍어라면 무조건 삭힌 것이라는 통념만은 버려줬으면 한다."

_중국산과 칠레산들이 당신의 아성을 어지럽히고 있다는데.

“칠레산이 싸다고는 하지만 날개 부분만 빼고는 회로 먹지 못하니 효용성 면에서 우리하고는 비견할 바가 아니다. 그보다는 낚시바늘에 걸려 죽은 듯 엎드려 있는 것도 억울한데, 한밤중에 나타나 우리를 보쌈해가는 중국 어선을 보면 분통이 터진다. 그들은 원래 홍어를 좋아하지 않으니 다시 우리나라에 되팔기까지 한다는 게 아닌가.”

흑산도 홍어는 껍질째 회로 먹을 수 있으며, 내장까지 보리된장에 넣어 홍어애국을 끓여 먹는다. 겨울철 별미 중 별미인 홍어애국이지만, 보리가 구하기 힘들어지면서 요즘은 파래를 넣은 애국을 사철 먹기도 한단다.

흑산도 토박이인 정해진 씨는 예리에서 35번 홍어도매상과 전복양식을 겸하고 있다. 한때 맥이 끊기는 듯 보였던 흑산도 홍어는 지금은 다행히 제법 잡히고 있고, 전문 홍어잡이 어선만도 16척(근해 7척, 연안 9척)에 이른다고 한다. 기술(?)이 없어 슬하에 딸만 셋을 두었다는 그에게 “홍어를 많이 먹은 탓 아니냐”고 했더니 “그런 이야기를 쓰면 ‘홍어를 먹으면 딸만 낳는다’는 이야기라도 퍼질까 두렵다”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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