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기억】다시 들판에 서서

_모항 가는 길

유성문 주간 승인 2022.01.28 00:06 의견 0

곰소 ⓒ유성문(2007)

지금 변산은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새만금이 그렇고, 위도가 또 그렇다. 사랑 없이는 도저히 갈 수 없었던, 그토록 아름다웠던 변산은 이제 도처에서 상처와 신음으로 시들어가고 있다. 백합조개는 빈 껍질로만 남아있고, 칠산 앞바다를 너끈히 지켜주던 수성당의 개양할미는 나막신을 잃어버렸다. 적벽강에 소동파의 노랫소리 끊어지고, 이백은 더 이상 채석강 근처를 서성거리지 않는다. 모두가 사라졌고, 모두가 떠나갔다.

그렇더라도 가보라. 모항에서, 곰소에서 어미의 등딱지처럼 갈라진 갯벌 위로도 눈은 내려 아픈 기억마저 그렇게 지워내고 있나니. 텅 비워서 그처럼 넉넉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니. 더 늦기 전에, 촛불이 꺼지기 전에 그대 가보라. 사랑의 끝은 사랑이고, 그리움의 끝은 그리움이지 않은가, 기다림의 끝은 기다림이지 않겠는가.

해창만 ⓒ유성문(2007)

모항 가는 길은 우리들 생이 그래왔듯이/ 구불구불하지, 이 길은 말하자면/ 좌편향과 우편향을 극복하는 길이기도 한데/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드는 싸움에 나섰다가 지친 너는,/ 너는 비록 지쳤으나/승리하지 못했으나 그러나, 지지는 않았지 (…) 조금만 더 가면 훌륭한 게 나올 거라는/ 믿기 싫지만, 그래도 던져버릴 수 없는 희망이/ 여기까지 우리를 데려온 것처럼/ 모항도 그렇게 가는 거야/ 모항에 도착하면/ 바다를 껴안고 하룻밤 잘 수 있을 거야/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너는 물어오겠지 (…) 걱정하지 마, 모항이 보이는 길 위에 서기만 하면/ 이미 모항이 네 몸 속에 들어와 있을 테니까 –안도현 ‘모항 가는 길’ 중에서

변산반도의 아랫도리가 시작되는 곳쯤에 곰소만을 껴안은 모항마을이 있다. 도청리 호랑가시나무군락 아래서 내려다본 모항은 너무도 아늑하여 하마 눈물이 날 지경인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 역시 눈물겹기는 마찬가지다. ‘띠목’이라고 불리는 모항에서 나고 자란 박형진 시인은 초등학교만 마친 이래 이제껏 농사도 짓고 고기도 잡으면서 시를 써왔다. 시도 시이지만 걸쭉한 입담으로 써내려간 고향사람들의 이야기(<모항 막걸리집의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제>)에는 ‘징허디 징헌’ 그 무엇이 스며있다.

채석강 ⓒ유성문(2007)

장불(바다의 모래톱이나 자갈톱)에 끌어올려진 배의 장 속에서 갑열의 큰집 조카들이 작은아버지의 시체를 건졌다. 노인의 마지막 기지로 가라앉는 배의 장 속에 뛰어 들어갔기에 서글프게도 자기의 시체를 잃지 않은 것이다. 갑열과 그 어린 아들의 시체는 뒤늦게 끌어올려진 그물 속에서 서로 끌어안은 채 발견되었다. 삼대의 세 구 시체는 고지의 평평한 곳에 거적을 펴고 함께 누이고 다시 거적으로 덮었다. 일가붙이들의 울음소리가 아니더라도 거의 대부분 바다에 의지해 먹고사는 동네사람들인지라 자기 일처럼 두려움에 휩싸였는데, 그물에는 그때껏 잘 잡히지 않던 덕재가 수도 없이 들러붙어 아침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줄포만의 아슬아슬한 꽁댕잇배

갑열이 삼대가 죽어 거적에 싸이던 날도, 종태가 죽던 날도 고막녀는 춤을 추었다. 고막녀는 종태의 막내동생인데 어릴 때 하도 울어싼다고 아버지 몽치씨가 문 열고 포대기 채로 마당 눈밭에 집어던져 실성이 된 것이었다.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종태는 ‘인생은 굵고 짧게 살아야 된다’고 그것이 무슨 대단한 말인 양 항상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는데, 그 말대로 겨우 서른한 살에 딸 아들 남매로 대를 이수아놓고(이어놓고) 죽었다. 눈이 오던 날,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 남매가 무슨 소꿉놀이하는 것처럼 하얀 상복을 입고 떨며 두리번거리며 상청에 서 있는데 고막녀는 마당을 겅정겅정 뛰며 까르르 웃어대며 얼싸 좋다아 소리를 쳐가며 팔을 흔들며 춤을 추었다. -고막녀와 뱃동무

봄이 되어서 숙모네 마당가에 있던 앵두나무에 꽃이 필 무렵이면 겨우내 방안에만 누워 있던 봉니 누님도 가끔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마루에 나앉아 있었다. 물 길러 가는 어머니를 따라가면 나를 불러서는 사탕 같은 것을 하나씩 쥐어주었는데, 까만 통치마, 하얀 옥양목 저고리에 삼단 같은 머리가 치렁치렁하고, 백짓장 같은 창백한 얼굴에도 커다란 눈은 더없이 서글서글했다. 허리를 구부리고 키를 낮춰 속삭이듯 말을 걸어올 때면 비릿하고 달착지근하고 더운 숨결이 느껴져 나는 귓불이 화끈거렸다. 동네에서 가장 예쁘다는 처녀가 이름 모를 병에 걸려 앓아누워 있다는 그 자체가 나에게는 비련의 주인공처럼 느껴져서 신비하기까지 했다. -봉니 누님과 허드렛샘

모항 ⓒ유성문(2007)

그때만 해도 그랬다. 그렇게 썼다. 비록 이런저런 사연을 품에 안고 있다고는 하지만 모항은 그냥 멀찍이 바라다보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여유롭게만 보였다. 해안도로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광이 어찌나 한가로운지 호랑가시나무 이파리 위에 노니는 햇살의 가벼운 몸짓조차 마치 심심파적인 양 여겨질 정도였다. 하나 그것은 속 모르는 이야기였다. 내가 제법 높직한(모항 바닷가에 비해서) 곳에 자리 잡은 시인의 집을 찾았을 때, 그는 한여름의 무더위 속에서 웃통을 벗어부치고 밭을 갈다 괭이자루를 부러뜨린 모양이었다. 새로 자루를 해 박으려면 하던 일을 멈추고 면에라도 다녀와야 할 판이었으니, 불쑥 찾아든 작자가 영 성가시기만 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뒤 1년 만에, 이번에는 가을걷이도 끝났으니 조금 나으려니 하고 다시 그 집을 찾았을 때, 마침 그는 하릴없이 마루턱에 걸터앉아 있었다. 유치원 아이들을 돌보는 아내가 일을 마치는 시간에 대어 승합차로 아이들을 부리러 가기 전 잠깐 짬이 난 터라 했다. 한 해 농사를 얼추 마무리했건만 그에게서는 홀가분함보다 어쩐지 몸의 기운이 죄다 빠져나간 듯한 허허로움이 느껴졌다. 그것은 앞서 해안도로에서 잠시 모항을 내려다보면서 내가 받은 실망감 때문인지도 몰랐다.

내소사 꽃창살 ⓒ유성문(2007)

어쩜 단 한 해 만에 이렇게 달라 보일 수가 있단 말인가. 예전부터 풍광 좋고 아늑한 바다를 끼고 있는 탓에, 더구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유홍준 교수가 이곳의 아름다움을 자랑삼아 ‘떠벌리는’ 바람에 이미 개발의 손때를 타고는 있었지만, 이제는 그 정도가 한결 우악스러워져 마을 여기저기를 시멘트길들이 마구 헤집어 다니고 있었고, 국적불명의 건물들이 이곳저곳 들어서면서 이제껏 살아온 집들과 그 대비를 도드라지게 하고 있었다. 거기다 <불멸의 이순신>인가 뭔가 하는 드라마를 찍으면서 사용했던 ‘방송용 배’들이 그대로 묶여 있어 외려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아니다. 그 모든 것이 단지 내 마음의 풍경일 뿐인지도 모른다. 부질없는 것들만 빼고는 햇빛도 바람도, 바다도 사람도 여전히 슬프도록 아름답다. 이래저래 생각을 궁굴리고 있는 사이 용달차 한 대가 집 마당으로 들어선다. 누구에겐가 이 집 창을 하나 갈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모양인데, 주인은 잠시 망설이더니 ‘갈긴 해야 하는데…’ 하면서도 다음에 다시 한 번 들려줄 것을 간구한다.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오늘은 사정이 영 여의치 않은 눈치다. 젊어서부터 한눈팔지 않고 농사에만 매달려왔고, 지금은 논 1200평에 밭 1600평이라는 아주 많다 할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적지만도 않은 땅을 부치고는 있지만 자급자족하며 살기에도 여전히 버겁기만 하다.

위도띠뱃놀이 ⓒ유성문(2004)

그는 당시 농기구에 관한 이야기를 묶은 책 한 권을 탈고했다. 봄의 쟁기며, 여름의 호미하며 각기의 농기구들은 하나같이 나름의 쓸모를 지니고 있는데, 갈수록 그 쓸모는 세상 밖으로 밀려나기만 한다. 그것을 부리는 사람들조차 하나둘 떠나가고, 그렇게 빈 들판에 남은 씨앗 하나 있다 한들 무엇으로 다시 움트게 할 것인가. 낫과 곡괭이들, 논밭 갈고 거두어들일 때 신명으로 춤을 추지만, 어느 날 문득 뒤엎고 베는 무기로서 들판을 내달릴지도 모를 일이거늘.

그가 쏜살같이 제 ‘임무’를 마치고 모항의 그 허름한 막걸리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는 ‘사람’ 대신 갓 잡은 병치를 씹었다. 이제 모항 막걸리집에서 사람을 씹는 일조차 점점 기운을 잃어간다. 포구의 노천 부뚜막에서는 멸치를 삶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데, 그 위로 떨어지는 11월의 마지막 빛이 더없이 쓸쓸하게만 느껴졌다.

우동리 당산 ⓒ유성문(2004)


걷이 끝난 들판에 누군가 서서/ 눈물 뿌리지 않는다면/ 새 봄에 돋는 싹이 어찌/ 사랑일 수 있으랴// 수수깡 빈 대궁인 채 바람에 날리며/ 잿빛 산등성이 등지고 기인 그림자 끄는/ 네 몸뚱이, 죽어/ 또 죽어 땅에 몸 눕히면/ 구름만 덮일 뿐 모두가 떠나가는데// 계절의 끄트머리에 누군가 서서/ 함께 비 젖지 않는다면/ 어찌/ 썩어 다시 생명일 수 있으랴 -박형진 ‘다시 들판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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