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수의 문화누리】 오징어 게임,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 ‘헬조선’ 소재 씁쓸
오광수 문화기획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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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0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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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공학인 고등학교에서 학교폭력을 일삼는 남학생들이 여학생을 옥상으로 불러서 성착취 동영상을 찍는다. 그것도 또 다른 학교폭력 희생자인 남학생을 협박하여 동영상을 찍게 만든다. 비열한 방법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성착취를 일삼는 장면이 리얼하게 펼쳐진다. 또 피해학생을 코인 빨래방에 넣고 돌리는가 하면, 여학생이 화장실에서 출산을 하기도 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은 웹툰을 원작으로 만든 학원 좀비물이다. 좀비물의 특성상 학교라는 공간 속에서 학생들이 급격하게 좀비가 되면서 피가 튀고 살이 찢긴다. 심지어 신체 장기의 일부가 튀어나오는 장면이 드라마 전편을 지배한다. 이 드라마는 넷플릭스에 공개된 이후 한때 전 세계 1위에 오르는 등 큰 인기를 얻으면서 10위권에 드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해 <오징어 게임> 열풍 이후 두 번째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그 중간에 대한민국이 제작한 <지옥>과 <D.P>도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전 세계에서 한국 드라마의 위상이 한껏 높아졌다.
그러나 최고의 성적을 올린 기쁨 뒤에 씁쓸함이 뒤따르는 공통점이 이들 드라마에 있다. 2010년대 중반에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일컬어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는데 공교롭게도 이들 드라마는 '헬조선'이 가진 문제점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 중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오징어 게임>은 자본주의 사회의 막다른 골목에 몰린 계층들이 목숨을 담보로 막대한 상금을 놓고 겨루는 과정을 담았다. 그 과정에서 VIP로 불리는 자본가들이 내기를 걸고 이들의 생존게임을 즐긴다. 코로나19로 더욱 가속회되는 한국 사회의 양극화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또 다른 흥행시리즈인 <지옥>도 마찬가지다. 갑작스럽게 지옥행을 선고 받고 지옥의 사자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통해 종말론적인 종교 행태, 언제 세상으로부터 격리될지 모르는 공포 등을 다뤘다. 군대를 배경으로 탈영병을 잡으러 다니는 헌병들의 얘기를 다룬 <D.P>도 적나라한 군대폭력을 소재로 한다.
모든 드라마가 유토피아를 그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대한민국이 만들어서 전 세계인들의 각광을 받은 드라마가 모두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는 것은 왠지 모르게 뒷맛이 씁쓸하다. 이들 드라마의 배경이 모두 대한민국이며, 그 등장인물들 역시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학교폭력에 시달리다가 자살을 결심하고, 자본주의의 막다른 골목에서 돈에 목숨을 거는가 하면 군대에 갔다가 무차별적인 폭력의 희생양이 된다. 그런가 하면 세기말적인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사이비 종교에 영혼을 의지하기도 한다.
물론 드라마를 드라마로 즐기면 크게 문제될 것도 없다. 그러나 전 세계가 열광한 '한드'가 한결같이 헬조선에 기반하고 있다는 건 결코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서로 물고 물리는 폭로전과 말싸움으로 얼룩진 대통령 선거판, 갈수록 경쟁이 심화되면서 참교육이 실종된 학교, 현실은 물론 디지털 세계에서도 일상화 된 악성 댓글과 왕따문화 등 '드라마보다 더한 현실'이 우리 앞에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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