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입춘이 지나고 우수가 되어도 이제 봄은 쉬 오지 않는다. 절기도 그렇지만 우리 마음이 이미 예전과 같지 않다. 처마 끝에 고드름 녹아내리고, 시냇물 다시 졸졸거리며 송사리 떼 띄워 보내 버들개지를 깨우면, 먼 산 아련히 기지개 켜던 그런 봄은 더 이상 오지 않는다. 그래도 겨우내 묵혀 놓았던 마음 한구석으로 봄을 기다리는 심정은 여전히 조심스레 싹을 틔우고 있으니, 어쩔 것인가. 긴 낙동강 물줄기 따라 빼앗긴 봄을 찾으러 그렇게 길 떠나보자.
물돌이동, 하회
태백의 황지에서 발원하여 구무소를 뚫고 나온 물줄기는 태백산과 소백산을 끼고 영남대로 7백리 길을 달려 나가기 시작한다. 반변천을 끌어들이면서 비로소 강다운 면모를 갖춘 낙동강은 ‘안동 숙맥’이 세상에서 가장 너른 들판인 줄 아는 풍산 들녘에서 제법 강 구실을 하다가 이내 에둘러 숨을 고르며 똬리 하나를 만들어내니, 바로 하회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방문으로 세계적인 명소의 반열에 오른 곳. 집에 불이 나도 두루마기를 입고서야 밖으로 나갔다는 도도한 반가의 자존심과 전통으로 틀어 앉아 있는 곳. 이 고장 출신 시인 이육사가 ‘그러기에 열여덟 새 봄은 버들피리에 불어 보내고’라고 노래했던 ‘강 언덕 그 마을’.
내가 겨울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하회마을을 찾는 이유는 다른 계절의 번잡스러움을 피해 그저 물돌이동의 한적함에 젖어 물빛과 모래톱으로 스며들어오는 춘색(春色)을 찾기 위함이었다. 하회마을의 재래색 민박집 중 가장 깨끗한 편이라는 감나무집에서 구들장의 온기에 하룻밤을 의지한 후, 아침 일찍 마을 고샅길을 걸어본다.
흙담의 밝은 황토빛 하며, 새들의 지저귐은 활기에 넘쳐 있고, 솔밭의 솔잎들도 아연 생기를 되찾아가고 있었다. 연배가 한참 높은 이에게도 촌수나 반상을 따져 하대를 일삼는 고루한 분위기가 싫어 젊은이들은 속속 마을을 떠났다는데, 그 내력이야 어떻든 생명의 봄은 이 오래된 마을에도 어김없이 찾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하회에서 중심을 이루고 있는 꽃뫼(花山)의 반대편에는 그 유명한 병산서원이 자리 잡고 있다. 서애 류성룡과 그 아들 류진을 배향한 병산서원은 우리나라 서원 건축의 최고봉으로 알려져 있다. 신발을 벗고 통나무 계단을 지나 만대루를 오를 때 발바닥을 파고드는 그 청신한 기운이란! 만대루 대청마루에 앉아 눈앞에 펼쳐지는 풍광을 바라보는 느낌은 또한 어떤가. 아직은 거뭇거뭇한 병산의 산색 밑으로 물빛 짙어가는 낙동강은 은빛 비늘을 뿌려댄다. 잠시 눈을 돌려보니 먼저 온 ‘젊은 보수’ 한 사람 하염없는 명상에 잠겨 있다.
자연을 그대로 끌어안은 이 아름다운 공부집에서 또 다른 볼거리는 화장실이다. 민속학자 김광언 교수가 보증하는 ‘최고의 명작 뒷간’이라는 서원의 공식 화장실은 그렇다 치고, 고직사 앞에 위치한 ‘머슴 뒷간’이라는 야외용 화장실은 그 절묘한 달팽이 모양이 그대로 하나의 설치미술 작품이다. 최근 나라의 관광정책에 부응하려는 것인지 울타리를 걷어내고 흙담을 새로 쌓아 머슴들이 사용하던 뒷간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일신했지만, 그 또한 흠은 아니다.
길을 돌아 하회마을을 조감할 수 있는 부용대를 오른다. 아득한 발밑으로 물 위에 떠 있는 연꽃 모양이라는 마을이 묶여 있고, 철 만난 연인들 솔밭 아래 모래사장을 거니는데, 철 지난 새들은 모래톱을 박차고 날아오른다. 부용대 밑자락에 류성룡이 〈징비록〉을 지었다는 옥연정사가 있고, 옥연정사를 지나면 부용대 높은 벼랑을 타고 겸암정사로 가는 소로가 있다.
사람 하나 겨우 들어설 수 있을,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협소한 듯한 이 길을 낸 이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자꾸만 오금이 저려서 왼쪽으로 떨어지는 낙동강을 차마 외면하는데, ‘아무리 작은 길이라도 사람의 발바닥보다는 넓다. 그런 길에서 사람은 왜 떨어지는가. 그것은 사람 마음에 발바닥만큼의 여유도 없기 때문'이라던 옛사람의 말을 떠올리며 애써 벼랑길을 저어갔다.
또 다른 물돌이동, 회룡포
이왕 물 돌아가는 강마을을 돌아본 김에 또 다른 물돌이동 회룡포에 들러보자. 낙동강의 제1지류인 내성천이 휘돌아가면서 만들어 놓은 회룡포는 예천군 용궁면 대은2리에 있다. 오랫동안 ‘의성포’로 불렸으나 의성군 영역으로 오인할 소지가 있어 최근 회룡포로 이름을 바꾸었다.
회룡포는 하회마을이 물돌이동의 성가를 한껏 발휘하고 있을 때도 사람들에게 그리 알려지지 않아 그만큼 고즈넉하게 물에 갇혀 지냈다. 당연히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어서 마을 입구에 놓인 아르방다리(뿅뿅다리) 하나에 의지해 바깥세상과 겨우 소통하고 있었다. 마을을 휘돌아 흐르는 내성천은 수심이 얕아 배를 띄울 수도 없었으니, 비라도 많이 와서 다리가 잠길 때면 아이들을 고무통에 태워 학교에 보내기도 했다. 몇 년 전 마을 뒷산에 임도를 만들었지만 가파른 비포장 길에다 30분이나 돌아가야 하는 길이어서 궁벽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오지 아닌 오지마을은 고단한 삶 속에서도 풋풋한 인정 하나만큼은 차고 넘치는 곳이다. 맑은 강물, 너른 백사장, 준수한 절벽과 푸른 소나무들이 이곳 사람들의 품성까지도 그렇게 만들어서, 외지에서 온 손님에게는 밥 한 끼 대접하지 않고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단출하지만 포근하기만 한 강마을이다. 더구나 하회마을처럼 관광객들로 북적대지 않고 입장료도 없으니, 그저 하루 이틀 눌러 쉬기에는 그만한 곳이 없다.
KBS의 인기 드라마 〈가을 동화〉를 촬영하면서 사람들에게 제법 알려지기 시작한 회룡포는 경관을 망친다는 이유로 관광지 개발계획에 따른 도로 포장마저 포기한 채 아직까지는 순정한 자연 그대로 남아 있다. 강 건너 비룡산을 오르면 장안사 뒤편 전망대에서 마을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회룡포를 병풍처럼 싸안은 시루봉과 칠형제봉이 마치 손에 잡힐 듯한데, 산과 들판과 강의 그토록 사랑스러운 어울림은 그대로 한 편의 ‘전원교향악’이 된다.
다시 낙동강 본류로 돌아와 선몽대를 지나 상주쪽으로 흐르면 낙동강 제1의 비경이라는 경천대에 이른다. 임진왜란 때 '뭍의 이순신'이라고 불리던 정기룡 장군의 전설이 서린 이곳 또한 TV 드라마 〈상도〉의 촬영지로 널리 알려졌다. 정기룡 장군이 말을 먹였다는 말구유가 놓인 경천대 벼랑 아래로 아직 완전히 몸을 풀지 못한 낙동강 물이 얼음장을 끼고 잠시 지척거리는 사이, 백사장 너머 산자락으로는 어느새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이제 삼백(三白 : 쌀, 누에, 곶감)의 고장 상주에서 또 하룻밤을 묵어야 하겠지만, 이것으로 낙동강 여정이 끝나는 건 아니다. 약주로 유명한 선산과, 금오산 자락의 구미를 돌아 왜관으로, 달성으로, 고령으로, 창녕으로, 김해로, 마침내 부산을 거쳐 을숙도에서 남해바다를 만날 때까지 그렇게 굽이치며 남은 여정을 쉼 없이 흘러가야 한다. 그러다 문득 뒤돌아보면 저만치 멀리서 봄 또한 열심히 따라오고 있을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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