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기억】겨울 강을 따라가며 보라

_남치악과 주천강

유성문 주간 승인 2022.02.10 09:00 의견 0

우리에게 방학은 이제 먼 추억이 되었다. 비록 자식들에게 물림되고 있는 방학을 통해 그 추억의 자취라도 더듬어보지만, 이번에는 생각지 못한 숙제가 던져진다. 지루한 방학기간 동안 한두 번 가족 동반 나들이 길에 나서지 않고는 두고두고 원망을 사기 십상이니, 어쩌겠는가. 그 정도의 의무방어전이라도 치러야만 가장으로서 권위가 지켜지는 것이니, 더 늦기 전에 피곤과 게으름을 떨치고 일어나 길을 나서보자.

그러면 어디로 갈 것인가. 환상선 눈꽃열차도 좋고, 대관령이나 태백산, 아니면 쓰는 김에 조금 더 써서 한라산 눈꽃축제를 다녀오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천성이 번잡스럽지 못한 나는 아이들에게 우리 추억의 눈높이도 알려줄 겸 호젓한 겨울 강을 따라가 보라고 권한다. 되도록이면 눈이 함박 내린 후, 날 풀리고 햇살 따뜻한 그런 날에.

비록 성황림은 보지 못하지만

원주의 진산인 치악산은 흔히 북쪽의 구룡사 코스를 통해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만, 나는 왠지 을씨년스러운 북쪽보다는 남대봉이 있는 남치악을 더 선호한다. 빛은 자연뿐만 아니라 사람의 생리에도 깊은 영향을 주는 것이니, 복사꽃 자욱하거나 물 시원한 계절이라면 몰라도 요즘 같은 엄동설한에는 되도록 남쪽 자락을 헤매이는 것이 약은 일이다.

예상한 대로, 상원사 입구의 민박에서 하룻밤 묵은 후 아침 일찍 눈 내린 산길을 걸어 상원사로 오르는데, 볕이 몹시 좋아 등에 땀이 찰 지경이었다. 암자를 제외한 사찰 중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는 상원사는 꿩의 보은설화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절 마당의 계수나무 옆에서 골 깊은 산 밑을 내려다보는 조망을 빼고는 그리 볼 만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고수레밥을 얻어먹는 청설모에게 ‘세상에서 가장 추접한 시선’을 보내기도 하고, 절 입구에 세워진 경고판의 ‘짧은 핫팬티 차림의 출입을 삼가달라’는 문구를 보며 짓궂은 상상을 하기도 했으며, 얼음 밑으로 ‘겨울이 왔느냐고, 봄은 오겠느냐’고 도란도란거리며 흘러가는 개울물 소리를 엿듣기도 하면서 산행의 진미를 잔재미로 맞바꾸고야 말았다.

상원사 가는 길 ⓒ유성문(2004)


3시간여의 산행을 마감하고 마을로 가는 길목에 성황림이 있다. 천연기념물로 보호되고 있는 이 오래된 서낭숲은 그 청신하고 신령스러운 기운만으로도 우리의 서원을 풀어주기에 넉넉한 것인데, 지금은 철책으로 사람의 접근을 막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이처럼 사람과 자연의 공존은 어렵기만 한 것인지. 자백하건대, 어느 가을날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나는 철책을 넘어 들어가 기어이 서낭당까지 엿보고야 말았다. 과연 허명(虛名)은 아니었지만, 심약한 분들께 그리 권할 만한 일은 아니니 숲을 반 바퀴쯤 돌면서 상상으로만 마음속에 그린 다음 내쳐 길을 갈 일이다.

겨울 강의 추억

산줄기를 따라 올랐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강줄기를 따라 내려갈 차례다. 서두의 권유기(勸誘記)에서 쓴 것처럼 겨울 강은 우리의 추억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겨우내 궁둥이에 군둥내가 날 정도의 지리함을 참다못해 강가로 나서면, 거기 환상의 놀이기구 얼음뗏목이 있었다. 스릴과 서스펜스 속에 짧은 겨울 해는 저물고, 종내는 반동태가 되어서야 우리의 놀이는 끝나곤 했다. 당연히 집으로 돌아가면 부지깽이 세례가 기다리고 있었고. 그래도 조금만 참으면 된다. 이윽고 화가 가라앉고 안쓰러움을 이기지 못한 어머니는 언 손과 발을 이끌어 아랫목으로 넣어준다. 우리 때문에, 우리와 똑같은 꼬락서니였던 반 냉동의 검정 양말과 함께. 그 양말에서 노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라올 즈음, 우리의 언 귓불도 마침내 불그스레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신림에서 시작해서 서만이강을 거쳐 주천강에 이르는 길은 사시사철 은빛으로 빛나는 실크로드다. 요선정이거나, 적멸보궁으로 유명한 사자산(원래는 네 가지 보물을 지닌 ‘사재산’이었다고 한다) 법흥사거나, 그 길에 얽힌 내력이야 어떻든 물비늘, 아니면 얼음비늘으로라도 기어코 우리를 유혹하는 물줄기를 보고서는 걸음을 멈출 수 없게 된다. 하필이면 왜 물은 저토록 아름다워서 우리에게 멈추지 말라고, 자꾸만 흘러가라고 속삭이고 있는 것일까.

주천강 섶다리 ⓒ유성문(2004)

아무리 눈에 콩깍지가 씌웠더라도 여기서 잠시 길을 멈추지 않을 수 없다. 아무래도 이태백의 알코올 섞인 피를 조금은 이어받은 것이 분명한 내가 지명만으로 이 땅에서 가장 부러워하는 곳이 있으니, 바로 이곳 ‘주천(酒泉)’이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도 아니고, ‘술이 샘솟는 곳’이라니! 다른 이야기도 있지만, 현지인을 통해서 내가 들은 주천의 유래는 이랬다.

지금의 빙허루 밑에 샘이 하나 있었는데, 양반이 물을 뜨면 약주로 변했으나 상놈에게는 그냥 맹물이었을 뿐이었다. 대처로 나가 큰돈을 벌어 양반 신분을 돈으로 산 어중이 하나가 있었는데, 의기양양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그 샘물을 마시러 왔다. 그러나 기대했던 약주는 나오지 않고 고작 막걸리였다던가. 화가 난 그이는 샘에 대고 오줌을 누어버렸고, 그 후부터 약주는커녕 막걸리조차 나오지 않더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려준 이가 ‘지금의 주천은 폐정이 되다시피 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여름 그 물을 길어다 보리밥을 시원스레 말아먹었다’고 부언하는데, 나는 자꾸만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판운리 섶다리 ⓒ유성문(2004)

주천을 넘어 조금만 더 가면 섶다리로 유명한 판운리가 나오는데, 이쯤 되면 데려온 아이들에게 면목이 선다. 판운리 일대는 목가적 강변 풍경으로 유명하지만 아이들이 쉬 눈을 줄 리는 없고, 옛날부터 평창강을 사이에 두고 밤뒤마을과 건너의 미다리마을을 연결하기 위해 놓았다는 섶다리가 있는데, 다리 위를 걸어 다니면 낭창낭창하기가 그만이어서 아이들의 좋은 놀이기구가 되어준다. 섶다리는 통나무에 소나무가지와 진흙을 얽어 매년 물이 줄어드는 겨울 초입에 놓았다가, 여름철 불어난 물에 떠내려갈 때까지 사용했다고 한다. 섶다리를 건너 강가에서 아이들과 함께 얼음 수제비라도 뜨고, 그것도 지겨우면 쪽대라도 빌려서 차고 깨끗한 물밑으로 숨어 다니는 퉁가리 천렵을 즐겨보라. 정말 겨울 해는 너무나 짧고, 아이들은 아쉬움으로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니.

퉁가리 ⓒ유성문(2004)


퉁가리는 몸길이가 한 뼘쯤 되는 메기과 물고기로, 쉬리와 함께 1급수에서만 산다. 옛날부터 쑤기 비슷한 보쌈이라는 자연형 어망으로 잡아 매운탕을 끓여먹었다. 판운리에서는 해동이 되는 3월이면, 매년 ‘퉁가리 보쌈축제’를 열어왔는데 개체 수가 자꾸만 줄어들면서 어종보호 차원에서 폐지했다고 한다.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겠지만, 판운리에 가서 그 각별한 매운탕 맛을 한 번쯤 즐겨보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자못 고민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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