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동업의 일상통신】당장 행복해질 수 있다
_우연히, 2015년을 기록한 사진 세 장과 더불어
원동업 <성수동쓰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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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04 10:59 | 최종 수정 2022.03.04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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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유머가 하나 있다. 어느 분께서 처음 만난 다른 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당신을 5초 내에 행복하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그게 어떻게 가능하죠?”
“나는 장애인입니다.”
타인의 불행에 내가 행복해질 수 있다? 일리가 없지는 않겠지만 무리스럽고, 그러나 진리일 수는 없는, 진리여서는 안 되는 이야기.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오프라 윈프리는 아침에 일어나 바로 ‘감사한 일 세 가지를 쓴다’ 한다. 밤에도 이렇게 함으로써 안온한 수면에 들 수 있단다. 잘 자고, 잘 일어날 수 있으면 하루 내내 행복한 기운이 들 것이다.
어제는 우리동네 도시재생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2017년 이전의 동네 골목길 풍경에 대해 갖고 있는 사진자료 등을 공유해 달라는 요청이었다(내가 동네잡지 <성수동 쓰다>를 발간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은 우리동네 도시재생센터가 주관한 글쓰기 수업이었다). 당시 글쓰기 모임을 주도한 데가 매력적인 우리동네 잡지 <오! 성수>의 편집장님. 거기서 글친구들을 만나면 흡족하겠다고 생각한 때가 2015년 초겨울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너도 좋아한다고? 그들을 정기적으로 만나는 것, 그들과 일을 함께 하는 것. 이것도 행복을 창조-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다.
카뮈는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글쓰기로 되어 있다”고 말했다는데, 내게 사진도 대략 그러하였다. 부친이 병상에 있을 때, 외할머니 상중에도 나는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예식에 참여할 것인가, 부근에서 기록할 것인가 하는 때 후자에 서는 경우도 많았다. 으레 ‘쟤는 찍는 애’로 인식되면 자연스럽지 않아지는 일은 없다. 낯선 곳, 낯선 이에게도 먼저 사진을 찍고, 웃으며 손을 살짝 흔든다. 때로 봉변을 당하지만, 그 순간은 지나가고 사진은 남으므로. 그리곤 이렇게 다시 나는 그곳으로 갈 수 있다.
겨우 5년에서 10여년이 지났을 뿐인데, 그 안에 담겼던 세상은 이미 바뀌어 있었다. 아이들은 어린이였다가 이제는 청소년들이 되어 있다. 사람들은 체육관을 가득 메우고, 열 명 정도씩 원탁을 둘러 (마스크 없이)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미 여러 해 동안 가지 않은 단체에서 받았던 소박한 상장도 거기 남아있다. 산을 함께 올랐던 이웃들, 이웃 식당의 젊은 사장님(그녀는 아직도 현장에 있다)도 거기 있었다. 사진이 없었다면, 어쩌면 바쁜 내 기억에선 영원히 지워졌을 일들이다. 그 시절 다정한 이들에게, 열정적인 사람들에게, 카톡을 통해 사진을 보내준다. 얼마 뒤 그들의 답장이 도착한다. 매우 흡족했던 그때로 나는 다시 되돌아간다.
‘당장 행복해질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이 생각났다. 먼저 밖으로 나가실 것. 발 닿은 곳이 근처 공원이나 숲이어도, 한양도성길이어도, 북한산둘레길이어도 좋지. 새소리 바람소리 흙의 기운은 당장 우리를 위로하고 기운을 챙겨 여며줄 것이다. 도서관도 좋아. 맘에 드는 소설을 골라잡거나, 역사서를 탐하다 책을 빌려올 수도 있겠지. 카페에 앉아 생각을 정리해 짧거나 조금 긴 계획을 세우며 희망을 조직하는 일. 그런 것도 내게 신선한 산소를 들이킨 듯 활기를, 온기를 부여할 것이다. 다만 털고 일어나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을 시작할 수 있다. 아, 물론 카메라, 아니 핸드폰 하나 들고나가도, 그러지 않아도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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