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는 계속 털털거리면서 해변 따라 일주도로를 타고 내려갔다. 일상생활에 노상 모래바람이 부는 어촌들. 헌 그물로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단도리해 놓은 초가집 추녀. 돌담 울타리 너머 바람에 부대끼는 빨간 열매 달린 사철나무들. 나는 내 눈이 육지서 온 관광객의 호기심 많은 눈이 안 되도록 조심하면서 이것저것 눈여겨보았다. -현기영 <순이삼촌> 중에서
4월, 제주의 해안도로를 가면서 이 정도의 눈매를 갖춘다는 것조차 보통 일은 아니다.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천연스러운 자연과는 달리 그 속내 깊숙이에는 뿌리를 알 수 없는 고통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월은 잔인한 달’이고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며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지만 봄, 제주에서 지나간 역사를 들춘다는 것은 내심 참혹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 많은 오름들과 굼부리, 옴팡과 너분숭이, 코지와 곶자왈을 스치는 하늬바람의 속살에는 어김없이 고통의 역사가 스며있으니.
항파두리의 삼별초나 ‘이재수의 난’은 오히려 ‘무자년 난리(1948년 4·3항쟁)’의 예고편에 지나지 않았다. 되찾은 나라에서 벌어진 민족상잔의 비극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숱한 목숨을 앗아갔다. 한라산 자락의 중산간마을들은 쑥대밭이 되었고, ‘무를 뽑아놓은 듯 널려있던 주검’들은 하늬바람에 풍화되어 설문대할망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틈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삶은 더욱 처절했다. 북제주군 조천면 북촌리를 무대로 한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은 여기서부터 비롯한다.
1978년에 발표된 <순이삼촌>은 5·16쿠데타 이후 17년간 계속되어온 강요된 침묵을 깨고 4·3을 다시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해서 겨우 터진 물꼬는 또 숱한 우여곡절을 겪고 겪어 2003년 노무현 대통령 때에 이르러서야 국가차원의 공식사과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제주사람들은 4·3을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라고 말한다. ‘4·3특별법’ 제정은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라고 말한다.
우리들은 제주도의 가없는 해녀들/ 비참한 살림살이 세상이 안다/ 추운 날 더운 날 비 오는 날에도/저 바다 저 물결에 시달리는 몸/ 아침 일찍 집 떠나 황혼 되면 돌아와/ 우는 아기 젖먹이며 저녁밥 짓는다/ 하루 종일 해봤으나 버는 것은 기막혀/ 살자 하니 한숨으로 잠 못 이룬다 –강관순 <해녀가> 중에서
현길언의 소설 <껍질과 속살>은 고통의 연원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심연에는 비바리 해녀들의 신산한 삶이 있다. 제주에는 ‘아들 나민 엉뎅이 때리곡 똘을 나민 도새기 잡으라(아들을 낳으면 엉덩이 때리고 딸을 낳으면 돼지 잡아라)’는 말도 있지만, 척박한 섬에서 해녀의 역할은 가정 생계의 주요한 수단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들은 여덟 살 때부터 자맥질을 시작했고, 열여섯 살이면 물질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그녀들에게 바다는 놀이터이자 일터였고, 삶의 전부였다.
<껍질과 속살>은 실제 1932년 북제주군 구좌읍 세화리 해녀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당시 일제의 과다한 해산물 공출을 견디다 못한 해녀들은 호미와 빗창을 들고 주재소를 습격했다. 이 사건으로 1천여 명의 해녀들이 주재소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으며, 특히 주모자격인 부춘화, 김옥련 등은 6개월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소설 속에서 사건의 주동자인 송순녀 여인은 해방 후 좌익에 의해 이념적으로 미화되어 소개된다. 그 때문에 4·3사건이 일어나자 오히려 불순분자로 몰려 구속되고 죽을 고비를 겪는다. 다시 세월이 흘러 제주지역에서는 해녀들의 항일민족정신을 기리기 위해 해녀상 건립을 위한 모금운동이 전개된다. 마침내 그 제막식 날, ‘도민이 주는 여성상’이 송순녀 여인에게 수여되지만, 그녀는 끝내 제막식장에 나타나지 않는다.
긴긴 세월 동안 섬은 늘 거기 있어왔다. 그러나 섬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섬을 본 사람은 모두 섬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도 섬을 떠나 다시 돌아온 사람은 없었다. -이청준 <이어도> 중에서
현기영이나 현길언과는 달리 이청준은 제주 출신이 아니면서도 아예 제주사람들의 꿈과 그리움까지 나아가버린다. 살아서는 되돌아오지 못하지만, 사시장철 먹을거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섬 이어도는 제주사람들에게 이승에서의 삶이 지겹도록 고달플 때 편히 쉴 수 있는 저편의 섬이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이어도는 죽음의 섬이면서 한편으로는 구원의 섬이기도 했다. 그 섬은 가파도이기도 하고 마라도이기도 하고, 저 먼 파랑이도이기도 하다. 아니, 그도 저도 아닌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아주 먼 섬이지만, 가슴 속에 항상 살아있는 섬일 것이다.
제주의 해안도로를 따라가면서 상처투성이의 껍질과 그 속에 감춰진 안타까운 속살로 적이 고달팠는가. 그렇다면 부질없더라도 화려한 관광지와 그 곳을 떠도는 소란 속에 잠시 몸 담가보라. 아니면 노방에 피어난 봄꽃들 사이를 소요하며 비취빛 바다를 아련히 바라보라. 상처투성이의 껍질 속으로 여직 봄빛보다 더 고운 속살이 숨 쉬고 있음을 알게 되리니. 제주 출신의 시인 문충성은 이렇게 위안의 노래를 들려준다.
귀 털고 들어보아라, 얘야, 작은애야/ 제주바다 남쪽에서 성큼성큼/ 새파란 숨결 내쉬며/ 새 봄이 걸어오는 소리/ 아무리 고향 떠나 이역만리/ 제주섬에 뿌리내리고 가난한 토박이들/ 이리저리 발길에 가난하게/ 밟히며 오랑캐꽃으로 살아왔지만 겨우내/ 우리를 짓눌렀던 차운 눈덩이 밀어내고/ 들어보아라 보랏빛 꽃세상/ 이제 열려오는구나/ 우리 가슴에 둥지 만들어 키우던/ 새들을 날려보내자 파닥파닥/ 날개깃 치는 기다림들 온통/ 잿빛 하늘을 새파랗게 물들이게 하자/ 눈감아도/ 눈감아도 코끝에 배어드는/ 보랏빛 향기여, 얘야, 작은애야 –문충성 <오랑캐꽃>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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