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남자들의 대화에서 제일 듣기 싫어하는 얘기는? 3위가 군대 얘기, 2위가 축구 얘기, 1위는 군대 가서 축구한 얘기라는 농담이 있다. 그러나 요즘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남자가 축구하고, 여자가 축구하는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면서 예능의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소위 ‘스포츠 예능’이 인기를 얻으면서 왕년의 국가대표 출신이나 프로스포츠 스타 출신들이 연예인들보다 더 자주 브라운관에 등장하고 있다. 또 축구는 물론 농구, 탁구, 골프, 배드민턴 등 다양한 종목이 예능의 소재로 동원되면서 스포츠 예능이 대세임을 실감케 하고 있다.
먼저 축구를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자. 2019년 JTBC가 은퇴한 레전드들의 조기축구 도전기 <뭉쳐야 찬다>를 론칭하면서 시작됐다. 최근에는 <뭉쳐야 찬다 시즌 2>로 이어지면서 매번 시청률 7~8%를 넘나들고 있다. 국가대표 출신인 안정환과 이동국이 감독과 코치를 맡고 다양한 분야의 전직 국가대표나 프로스포츠 선수들이 축구선수로 뛰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웃음을 유발하는 예능 본연의 사명감보다는 땀과 눈물로 만들어가는 ‘진짜 승부’에 무게를 둔다. 시청자들은 운동에 재능을 가진 출연자들이 빠르게 축구에 녹아드는 걸 보면서 프로그램에 몰입하게 된다.
여자 연예인들의 축구 도전기인 SBS <골 때리는 그녀들> 역시 매번 10% 안팎의 시청률로 큰 인기를 얻으면서 시즌 2를 이어가고 있다. ‘여자들이 모여서 축구하는 얘기’지만 시청자들의 몰입도가 꽤 높은 프로그램이다. 여자들이 슬랩스틱 코미디로 웃기는 얘기가 아니라 국가대표 출신 감독의 지도로 진짜 승부를 펼쳐가는 포맷이 시청자들을 열광하게 했다. 비록 ‘조작 편집 논란’으로 색이 바래긴 했지만 매 순간 온몸을 던져서 승부를 펼치는 여자축구팀의 활약에 시청자들이 울고 웃는다.
또 tvN은 새 축구 예능 프로그램인 <군대스리가>를 방영할 예정이다. 요즘 예능 대세인 조세호와 군인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걸그룹 라붐의 멤버 솔빈이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2002년과 2006년 월드컵 스타들이 총출동한다. 그동안 인기를 얻어온 축구 예능에 당찬 도전장을 던지는 프로그램이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불어닥친 골프 열풍에 발맞춰서 골프 예능도 대세였다. TV조선 <골프왕>, JTBC <세리모니 클럽>, SBS <편먹고 공치리> 등 거의 비슷한 시기에 골프 예능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졌다. 그러나 계절적 요인이나 지나치게 긴 경기시간 등 예능으로 담기에는 한계가 있어서 앞으로도 그 인기가 계속될 것인지는 의문부호가 남는다.
스포츠 예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몇몇 프로그램의 성공으로 우후죽순처럼 다양한 장르의 스포츠 예능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축구나 골프에 이어 스포츠 예능으로 눈길을 끄는 프로그램은 tvN의 <라켓 보이즈>다. 생활체육 중에서 가장 많은 동호인 모임을 갖고 있다는 배드민턴을 예능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이용대가 감독을 맡고 장성규·윤현민·양세찬·윤두준·오상욱·이찬원·정동원 등 다양한 연예인들이 출연한다. 이 프로그램 역시 전국의 배드민턴 고수들과 게임을 갖는가 하면 배드민턴 전국대회에도 도전하는 포맷이다.
tvN의 <올 탁구나!>는 제목이 시사하는 바처럼 탁구 예능이다. 연예계에 숨은 탁구 고수들이 특훈과 도전을 통해 연예계 최강 탁구팀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담았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유승민을 중심으로, 강호동의 ‘전설의 강호’ 팀에는 정근우·박은석·이진봉·손태진이, 은지원의 ‘퐁당퐁당’ 팀에는 이진호·강승윤·신예찬·이태환이 최종 선발돼 대결을 한다.
<언니들이 뛴다-마녀체력 농구부>(JTBC)는 평소에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던 송은이·고수희·별·박선영·장도연·허니제이 등 여자 연예인의 농구 도전기다. 농구 레전드인 감독 문경은, 코치 현주엽, 매니저 정형돈이 출연하여 농구 초보들을 조련한다.
축구, 농구가 등장했으니 야구가 빠질 수는 없다. MBN 새 예능프로그램 <빽 투 더 그라운드>는 프로야구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레전드 스타들이 총출연한다. 김인식 감독, 송진우 코치를 비롯해 양준혁·안경현·홍성흔·채태인·김태균·이대형·윤석민·니퍼트까지 등장하여 ‘야구 예능’의 새 장을 열어가겠다는 각오다.
스포츠 예능이 인기를 얻으면서 승승장구하자 조금씩 포맷을 달리한 스포츠 예능도 등장하고 있다. MBN의 <국대는 국대다>는 은퇴한 국가대표가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쳐 현역 국가대표와 맞붙는 대결 프로그램이다. 전 국가대표 탁구선수 현정화가 현역 국가대표 서효원을 상대로 승리하는가 하면, 천하장사 이만기가 2021년 태백장사 허선행과 승부를 가리기도 한다.
이처럼 우후죽순으로 쏟아지는 스포츠 예능이 너무 많다는 시각도 있다. 또 지나친 승부욕으로 부상의 염려도 늘 도사리고 있다. 평소 스포츠인이 아닌 연예인들이 지나치게 승부에 집착한 나머지 부상의 위험이 뒤따른다. <골 때리는 그녀들>애서 보듯 ‘예능’과 ‘다큐’ 사이에서 편집 논란 등이 재연될 가능성도 크다. 게다가 성공한 포맷을 대놓고 베끼는 관행은 여전하다.
각종 스포츠 시즌이 시작됐다. 여하튼 당분간 TV를 켜면 축구하고, 야구하고, 농구하는 장면을 피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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