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짧지만 봄노래는 넘쳐난다. 누구나 봄 앞에서 흔들린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에 가슴 뛰지 않는 이가 누가 있으랴.
지난 수 년 동안 봄을 지배해온 건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 엔딩>이었다. 2012년 처음 발표된 뒤에 매년 봄마다 역주행을 거듭하면서 송라이터인 장범준에게 ‘벚꽃 연금’을 안겨준다. 지금까지 장범준이 벌어들인 저작권료만 수십억 원에 이른다니 거의 로또 수준이다.
최근에는 방탄소년단의 <봄날>이 강력한 대항마로 등장했다. 2017년 발표된 이후 방탄소년단의 인기에 힘입어 매년 봄이면 역주행 하는 곡으로 떠오르고 있다. <벚꽃 엔딩>에 자극을 받아서 잇달아 선보인 봄노래들도 지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볼빨간 사춘기의 <나만, 봄>, 아이유의 <봄 사랑 벚꽃 말고> 등이 그런 노래다.
원래 봄이 되면 등장하는 스테디송은 따로 있었다. 비라도 흩뿌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박인수의 <봄비>가 그것이다.
‘이슬비 내리는 길을 걸으며/ 봄비에 젖어서 길을 걸으며/ 나 혼자 쓸쓸히 빗방울 소리에/ 마음을 달래고/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 한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사실 박인수가 불러 유명해졌지만 작사·작곡자인 신중현을 빼고는 얘기할 수 없는 노래다. 1969년 그가 이끄는 밴드 덩키스의 앨범에서 이정화가 먼저 불렀다. 그 곡을 박인수가 다시 불러 히트시켰다.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신중현사단의 가수 김정미가 부른 <봄>도 명곡 반열에 드는 곡이다.
‘빨갛게 꽃이 피는 곳 봄바람 불어서 오면/ 노랑나비 훨훨 날아서 그곳에 나래 접누나/ 새파란 나뭇가지가 호수에 비추어지면/ 노랑새도 노래 부르며 물가에 놀고 있구나.’
1973년 여고를 갓 졸업한 김정미는 한국형 사이키델릭 록커로 평가받으면서 섹시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와 흐느적거리는 춤으로 단숨에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봄을 이야기 하면서 김소월을 빼놓을 수는 없다. 그의 대표시 <진달래꽃>으로 노래를 만들어 히트시킨 건 가수 마야였다. 마야는 가곡이나 발라드에 어울릴 것 같은 시를 록음악으로 만들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로 조용히 시작된 노래는 ‘날 떠나 행복한지 이젠 그대 아닌지/ 그대 바라보며 살아온 내가/ 그녀 뒤에 가렸는지…/ 내 영혼으로 빌어줄게요’에 가서 폭발한다.
화창한 봄날이 시작될 무렵이면 빼놓을 수 없는 동요도 있다. 노란 교복을 입고 줄지어 가는 유치원생들과 마주치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엄마 엄마 이리와 요것 보셔요/ 병아리떼 뿅뿅뿅뿅 놀고 간 뒤에/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났어요/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났어요.’
<봄>이라는 동요다. 오수경 작사, 박지훈 작곡의 이 노래는 대략 해방 이후에 만들어졌다. 작곡가인 박지훈 목사는 한양대 음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목사 안수를 받고 캐나다에서 목회 활동을 하다가 지난해 99세의 나이로 작고했다.
해방 직후 평안남도 강서군 문동국민학교 선생님이었던 박지훈은 일본 군가만 부르는 아이들이 안쓰러워 50여 곡의 동요를 만들었다. <봄> 외에도 ‘산골짝의 다람쥐 아기다람쥐…’, ‘펄펄 눈이 옵니다…’, ‘시냇물은 졸졸졸졸…’, ‘송이송이 눈꽃 송이…’ 등이 그가 만든 동요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으로 시작하는 <어머님 은혜>도 그의 곡이다.
윤석중 작사, 권태호 작곡의 노래 <봄나들이>도 빠질 수 없는 노래다. ‘나리 나리 개나리 잎에 따다 물고요/ 병아리떼 종종종 봄나들이 갑니다’라는 가사처럼 따뜻한 봄날이 만져질 듯한 노래로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다. 작곡가 권태호의 고향인 안동에서는 매년 봄마다 ‘봄나들이 동요제’가 열린다.
난만한 봄의 한 가운데서 한 번쯤 불러봤을 동요도 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경남 양산이 고향인 이원수가 노랫말을 쓰고, 홍난파가 작곡한 노래다. 이원수는 민족동요의 작사가이자 교육자로 존경을 받았지만, 홍난파는 일제에 적극 협조하다가 요절한 뒤에 변절자로 낙인찍혔다.
짧지만 아름다운 봄이 끝나갈 무렵이면 빠질 수 없는 노래가 또 있다. 바로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가 그것이다. 한 시전문지에서 시인 100명이 뽑은 대중가요 노랫말 부문 1위를 차지한 노래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1953년 전쟁의 폐허 속에서 발표된 이 노래는 손로원이 가사를 쓰고, 박시춘이 멜로디를 입혔다. 이 노래는 한영애·심수봉·조용필·장사익 등 수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했다.
봄은 기다려도 오고, 기다리지 않아도 온다. 남도의 끝자락부터 봄이 시작되면 마음이 먼저 남녘으로 달려간다. 해남 땅끝마을부터 강진땅, 소록도와 통영 앞바다에서 시작된 봄이 온 나라를 뒤흔든다. 이럴 때는 노래라도 있어야 견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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