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 장마일기, 바람 부는 날의 전화
혜범 작가/원주 송정암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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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8 09:00 | 최종 수정 2022.07.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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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해?”
“행복경을 읽어.”
“그런 경도 있어?”
“응. 그런데 무슨 일이야?”
“생각나서 전화했어.”
바람이 심상치 않다. 생물냄새 펄떡거리는 도반에게 전화가 왔다. 평생 납자로 세상의 끝에서 산 이다. 경상도 기질이 강한, 그래서 절구통, 맷돌 소리를 듣는.
“무슨 생각?”
“왜 소싯적에 대자암에 살 때.”
“크으.”
내가 들쳐 엎고 병원으로 내달려 도반은 살았다. 병원에 가보니 복막염이 터졌다는 거다.
나는 벗이 몇 없다. ‘쓸데없는 인연을 맺지 말라, 등나무 가지와 같이 얽힌다’는 경전의 말씀을 따른 게 아니라 연락처를 꺼놓고 사는 날들이 많다. 용무가 없으면 거의 전화질도 하지 않는다. 누구나 저마다의 침묵이 있겠지만 내겐 특별히 깊다. 멀리서 찾아와도 그리 많은 시간을 내주지 못한다. 그렇게 까탈스럽긴 해도 진정이라면 거의 평생을 간다.
수십 년 넘게 쳐진 마음의 철조망, 무모했던가, 비겁했던가.
“스님, 재수읎다.”
도반이 나보다 세 살 더 많은데 악착같이 나는 반말이다.
“크으, 또 왜?”
“그라믄 마, 그 행복경 강설 좀 해봐봐라.”
“간단하다. 안녕을 바라면서 행복을 소망하는 기다. 최상의 축복, 최상의 행복으로 가는 길.”
“……”
“우매한 사람들과 사귀지 않고 현명한 사람들과 가까이하며 훌륭한 스승들을 공경하나니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어라.”
“그렇구나, 내는 참으로 우매했구나.”
“부럽다.”
“뭐가?”
“난 중노릇하면서 빚만 졌는데.”
“수행자는 늙지 않는다. 빚 갚아라. 지금 있는 자리, 그 자리에 아프지 말고 오래 앉아있는 게 살아서 가끔 내게 전화 주는 게 빚 갚는 거다 하니.”
내 말에 도반이 킥킥대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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