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참나리꽃 고운 아침에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승인 2022.07.29 09:00 의견 0

그래, 뭐 먹을 게 없어서 더위를 먹어. 남에게 말하듯 아픈 머리를 토닥거리며 잠깐 누웠다. 어젯밤에 머리가 터질 듯 아파서 진통제로 간신히 달랜 참이었다. 밤새 온갖 불길한 생각에 시달렸다. 모처럼 찾아온 두통이었다. 아프지 말아야지. 아직은 아플 때가 아니다. 스스로 타이르는 참인데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동생은 위암 수술을 받은 뒤 퇴원하는 길이었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하는 바람에 수술이 어렵지 않았단다. 남은 생은 재발이나 전이와 싸워야 하겠지.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 아프면 더욱 속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요즘 마음이 좋지 않았다. 퇴원하는데 직접 가보지는 못하고 조카 편에 병원비만 마련해서 보냈다. 다행히 동생의 목소리는 밝았다.

"형 어려운 거 뻔히 아는데 왜 병원비를 보내고 그려."(이 친구는 고향 떠난 지 40년 이나 됐는데도 여전히 충청도 어투가 진하게 묻어있다. 아! 나도 그런가?)

"조금 보냈다. 이럴 때 마음이라도 나누며 살아야지."

"병원에 누워 있다 보니까 여러 가지 생각이 많더라구. 여기 백병원이 38년 전에 아버지 뇌사 판정을 받은 데잖아."

"그래, 그랬지. 나도 네가 그 병원에 입원한다고 해서 그런 것도 인연인가 생각했다."

"그때 수술해도 소용없다고 집으로 가라고 해서 이 현관에서 아버지를 엠뷸런스에 싣고 고향으로 갔는데…. 그때 생각이 자꾸 나더라고. 내가 지금 그 현관에 서 있거든."

그랬다. 그랬었다. 나는 그때 군에 있었고, 형과 동생이 아버지를 싣고 고향까지 갔다. 전보를 받고 부랴부랴 휴가를 낸 내가 도착하자마자 산소호흡기를 뗐고, 아버지의 몸을 주무르던 나는 발부터 싸늘하게 식어가는 느낌으로 한 시대의 마감을 실감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시대를 지고 왔다가 지고 간다. 많이 울었다.

"그러게. 그 병원에 입원했으니 더욱 생각이 많이 났겠다."

"입원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어."

"세월 참 빠르다. 나는 벌써 아버지의 나이보다 훨씬 많이 살았구나."

"나 참, 형도. 나도 아버지보다 훨씬 많이 살았어. 아버지는 쉰넷에 돌아가셨다구."

"아! 그렇구나. 너도 이제 60이구나. 어쩌다 세월 헤아리는 법도 잊고 산다. 아무튼 다행이다. 수술이 잘 됐다니…."

"우리 식구들은 신천적으로 약한 데가 많아. 위도 그렇고, 혈관질환도 그렇고, 나는 간까지 나쁘다고 하네. 형도 조심해."


그랬다. 형은 물론 나도 동생도 아버지보다 훨씬 많이 살았다. 그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얼마 전 종합검진을 받았는데 결과가 안 와서 은근히 초조하다. 뭔가 이상이 있을 텐데, 매도 먼저 맞는 게 좋다고 얼른 알려주면 좋으련만. 늘 하는 말이지만 오래 사는 걸 원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죽음은 조금도 두렵지 않은데 눕는 건 날마다 두렵다. 자식은 물론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깔끔하게 죽는 걸 소망으로 세운 지 오래다. 설령 나만 그런 마음을 갖는 것도 아닐 테고, 죽음을 말하기에는 아직 젊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런 소망 하나쯤 품는다고 죄가 될 리야 있을까. 언젠가 다가올,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을 죽음에 대해 오래 생각한다. 하루는 탄생을 이야기하고 하루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게 바로 인생이지.

쓸데 없는 생각 접고, 다시 일 시작해야지. 오늘아침 참나리의 눈물이 맑고 곱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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