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생사의 밤길은 길고 멀어라

혜범 작가/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2.08.16 06:17 의견 0

잠 못 이루는 사람에게 밤은 길고,

피곤한 사람에게 인생길은 멀어라.

바른 삶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생사의 밤길은 길고 멀어라

-<법구경>

폭우였다. 서울은 곳곳이 난리였다. 퇴근길은 아비규환이었고 반지하에 사는 서민 세 명이 사망하였다는 슬픈 소식도 전했다.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문막교가 넘치니 마니 했다. 절 올라오는 길에 세월교가 있다. 비가 많이 오면 잠수교가 된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잠수 타게 된 것이다.

백년도 더 된 나무가 뿌리 채 뽑혔다. 옛날에는 어느 축사가 무너졌는지 곰이 놀았다 하여 웅천이라고 불리는 개울로 돼지 몇 마리와 소가 한 마리 떠내려 온 적도 있었다.

다행이 국수도 있었고, 쌀은 보니 10킬로 봉지가 하나 있었다. 정전되지는 않고 단수, 지하수를 팠기에 물도 이상 없다. 일 년에 몇 번 고립되는 경우다. 두절되는 것이다. 세상과의 소통이 단절되는 이유는 눈이 많이 오거나 비가 많이 와 다리가 넘치는 경우다.

그저 정처 없이 떠돌며 살고 싶었다. 원 없이 이 땅 곳곳을 떠돌며 살았다.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이제 정착했다고 했는데 또 언제 다시 떠날 줄 누가 알랴만.

팔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 발을 내딛어 뻗을 수 있는 곳에 있었다. 태어남은 큰 행복이었다. 늙어감은 더한 행복이다. 병든다는 것도 행복이었다. 죽는 것, 또한 큰 행복이었다.

무슨 말이냐고?

나는 지난한 삶에서 행복을 엉뚱한 곳에서 찾았다. 지금 여기에 살아있다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은 없었다. 그러기에 지나온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면 나는 지금 여기, 살아있음을 최고의 행복으로 친다.

사진 | 유성문 주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하다 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최고 최대를 찾는다.

그건 자본의 산물이다. 최고, 최대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당신은 불행하다는 말인가?

삶이었다. 평화였다. 몸 건강하고 마음건강한 몸과 마음이 조화로운 삶, 고통스럽지 않은 삶, 무사무탈이다. 나는 세상에 속한 소소한 행복의 삶을 꿈꿔왔다.

행복은 인간과 삶의 가치를 지키고, 그렇게 하는 것이 살아가는 데 가치 있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상을 향한 희망과 현실과의 부조화 속에서 나도 조금은 파란과 만장의 인생단계를 체험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꿈,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오기도 했고 상처뿐인 영광을 남긴 적도 있었다. 무능력과 예민하기만 한 감성으로 너무 힘들고 숨이 막혀 죽음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현실이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내일은 행복할 수 있을까? 과연 내 삶이 훨씬 더 행복해질까? 했다.

나는 늘 특별한 행복, 꿈꾸던 행복, 이루어질 수 없는 행복만을 바래왔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삶을 사랑하고 이웃을 바라볼 수 있으니 지금의 나, 내가 행복한 거 아니야? 했다.

행복에 특별한 것이 없었다. 진정한 행복은 아주 보통의 행복이었다. 욕망에 집착하고 원하는 것을 얻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어리석었던 것이다.

"스님 괜찮아요?"

평상시 나는 용무가 없으면 전화를 잘 하지 않는다. 오는 전화도 잘 받지 않는데 우중(雨中)에 전화한 이들의 전화를 모두 받았다. 물폭탄이 떨어지는 동안 서울, 대구, 부산, 심지어 제주도에서까지 많은 전화와 문자, 카톡을 받았다. 순간 전화를 받을 때마다 내가 살아 있어 얼마나 행복하던지, ‘그쪽은 괜찮으세요?’하고 되물으며 속으로 ‘나 중노릇 잘못한 건 아닌 거지?’하고 또 행복해 했다. 그렇다고 잘 한 건 하나도 없었다. 그럼 됐다. 어쨌든 백중기도를 끝냈다.

돌아보니 행복한 길이었다. 얼굴이 조금 부었지만 죽을 때까지 우리 모두 행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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