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가득 차기도 하고 이지러지기도 하지만 살면서 사람을 만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을 만나면 확 끌어당기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진심이 와 닿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들이 간혹 있다. 매력을 넘어 마력 뿜뿜이랄까.
나는 낯도 많이 가리고 말수가 적다. 그래서 상대방의 말을 많이 듣는 편이다. 내가 부처도 아닌데 안으로 똘똘 뭉쳐져 내 앞에서 징징거리는 이가 있는 반면, 사방이 툭 틔여 나까지 환하게 만드는 이들이 있다.
그해 내가 노스님을 찾아갔을 때 추석 즈음이라 없는 돈에 작은 병으로 되어 있는 홍삼엑기스를 한 통 사 가지고 올라갔었다.
그때 스님 방엔 어떤 노보살이 스님과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넙죽 삼배를 올리고 나자 그래 잘 살았어?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았지? 하시는 거였다.
나는 계면쩍게 홍삼 상자를 내밀었다. 그러자 노스님이 그래 뭘 그런 걸 하시며 일단은 받으셨다. 노스님은 드링크제를 유난히 좋아했다.
이 홍삼 나 준 거지? 네. 그럼 내 꺼다. 그리고 노장은 노보살에게 요즘 몸도 안 좋고 그렇대매? 하다가 이거 가져가서 먹고 힘내라고, 이놈이 나를 위해 사가지고 온 거야 하며 내미는 거였다.
순간 속으로 뭬야? 하는 내 입이 얼어붙고 얼굴이 금세 뜨거워졌다. 선물을 사러 마트에 들렀을 때 홍삼 엑기스를 몇 번 들었다 놓았다 했다. 거금 삼십여 만원이나 하는 거였다. 그래, 노인네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지르자 했던 것이다.
그때 나는 방을 나와 눈을 치켜뜬 채 한 방 맞은 듯 얼떨떨함에 코를 큼큼거렸다. 스님이 비정상이거나 사이코가 아니라 뛰어 넘으신 거였다. 얄궂어진 나의 마음에 괜히 노보살에게 죄라도 진 기분이 들었다.
노인네, 아무리 그래도 내가 나오거든, 내가 없을 때 노보살에게 주지 하는 얄팍한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그뿐, 그리고 나는 그 일을 잊었다.
그 사이 노스님이 나를 관찰하고 있다는 걸 모를 내가 아니었다. 사는 것도 빠듯할 텐데 당신 죽어도 찾아오지 말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그렇듯 작가와 감독이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이 바로 주인공, 흡입력 있는 그 주연배우의 캐릭터다. 노스님이 늘 내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내 머리 꼭대기에 앉아있는, 그렇게 당신에게 몰입하게 만드는 독특한 캐릭터였다.
드라마를 보면 내용이 빤하다. 권선징악이라든지, 남여상열지사라든지. 하지만 노스님은 그렇듯 나의 사고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분이셨다. 그래도 다른 시청자나, 독자, 관객들과는 쪼끔은 다르다 자부하는 나도 도저히 노스님의 묘수, 귀수에 곤혹스러워 하곤 했다.
저 노인네 다음의 주제는 뭘까? 다음 문장, 행보는? 늘 긴장하게 하고 감탄하게 만드는 그렇듯 예상이 되지 않는 특이한 캐릭터였다. 나를 하수로, 쫌팽이로 쭈글쭈글하게 만드는, 그렇게 당신에게 몰입하게 만들고 매력적인 분위기를 끄는 캐릭터였다.
사람살이 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지만 무설당에 앉아보면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 표정, 사용하는 언어를 보면 어느 정도 캐릭터를 파악할 수 있다. 평상심시도라고, 습이 배어 있다 할까, 생김과 모양, 어투 그 화법과 몸짓만으로도 그 직업과 나이, 인간됨의 깊이와 넓이가 드러난다 할까. 관찰자적 입장으로 보면 어느 정도 싸이즈인지 시놉시스가 보인다.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건 큰 일이다. 씨앗을 나누는 것과 같고, 생명의 힘을 얻는 것과 같다. 그 만남과 나눔은 우리 존재의 씨앗을 발아시키는 일이다.
노스님은 내게 부지런함을 일러주셨고, 검소함을 몸소 실천하게 해주었다. 당신은 앉아서 참선을 했고, 나는 책을 읽었다.
말 잘하는 앵무새가 되지 마라.
붓다를 연기하는 배우가 되지 마라.
그러던 노인네가 야야, 가지 마라. 니가 가면 새벽예불은 누가 하고 내 밥은 누가 해주나? 하시던 노장. 칠 년을 같이 살았나. 그런 노스님은 근처를 지나가실 때 불사는 얼만큼 되었나 하고 어쩌다 들리셨다.
그해 추석을 보내고 한 달 뒤 법당에 참선을 하고 앉아 있는데 노스님이 들어오셨다. 내 입에서 어, 하는 구겨진 감탄사가 저절로 흘러 나왔다. 노사가 성큼성큼 법당에 들어와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시고 일어서셨다. 큰스님에겐 핸드폰이 없었다. 하여 불쑥일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에 내가 연락할 수 없듯 스님도 내게 미리 귀뜸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어쩌지, 순간, 밥통에 밥도 해놓지 않았고, 쌀도 떨어지고 지갑에는 돈도 한 푼 없을 텐데, 하다가 남은 국수를 생각하고 국수 삶아드리면 되지 하는데.
스님 인사 받으셔야죠.
절은 뭐, 얼굴 봤으니 됐다. 옛날에 니 절 많이 받아봤다. 별 거 없드라. 니 방문 열렸더라. 그래가 니 방 니 책상 위에 연애편지 하나 두었다. 잘 읽어보그래이.
그리고 허적허적 타고 오신 차를 타고 가시는 거였다. 나는 스님의 내공에 입맛을 쩝 다셨다. 왠지 웃음이 나왔다. 허탈하기까지 했다. 노스님을 시봉하는 스님만 잠시 차 밖으로 나와 합장 구벅하고는 다시 운전석으로 들어가 차를 몰고 내려갔다.
가자, 됐다 하시는 큰스님의 지청구가 내게까지 들려왔다.
나는 그렇게 상주곶감 한 상자 든 채 나를 떠난 냉정하고 도도하고 시크하기만 했던 노스님에게서 벗어날 수 없어 한동안 멍했다. 그렇게 기묘한 행장과 격외의 행동도 마다 않으시던 노장은 그렇게 내게 왔다 가시고 한 달 후 이승을 떠났다.
또다시 가을,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내가 그렇게 무대뽀셨던 노스님을 닮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비는 연 사흘째 내리고 있다. 그런데 나는 왜 명절이 싫은 거지. 아, 그놈의 연애편지는 뭐였냐고? 불사에 보태라고 백만 원짜리 수표 다섯 장이 들어 있었다. 삼십 년 전이니 꽤 큰 금액이었다.
가끔 법당에 홀로 앉아 있다 깜짝 놀라곤 한다. 누가 성큼성큼 걸어들어 오는 것 같아서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찌 회향을 할까, 올 때는 시간 맞춰 오는 데 갈 때는 느닷없을 터이니 아무래도 고민해야 할 때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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