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의 행동이나 말에 대해서 “그거 아닌데?”라고 말한다면, 나는 무릎을 꿇고서 말할 것이다. “한 수 가르쳐 주십시오!”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다. 오늘 같은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저녁 6시 30분~40분 사이에 나는 저녁상을 차려낸다. 아내와 두 아들(고2, 중3 남자)이 자리에 앉는다. 아주 보통의 식사시간 풍경이다. 오늘의 메인 요리는 쭈꾸미떡볶이다. 마트에서 사 온 쭈꾸미 양념 팩에 말랑한 쌀떡을 넣고, 많은 양파와 대파를 썰어 넣은 뒤 잽싸게 볶아낸 요리.
근데 첫째가 요리를 뒤적뒤적한다. 아버지(나)가 말하길 “요리를 그렇게 뒤적뒤적하는 건, 편식하겠다는 거잖아. 몸에 좋을 리 없는 편식을 해서야 쓰나. 뒤적이지 말고 반찬을 먹어요.”
물론 내가 하지 않은 말도 있었다. ‘고기는 누구나 먹고 싶어 하는 거잖아. 그걸 뒤져서 먹으면 다른 사람은 못 먹잖아. 다른 사람들도 평등하게 먹으려면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넌 왜 그렇게 고기만 먹니?’ 내가 이 말을 하지 못한 건, 아마 좀스럽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겠다. 어쨌든. 그리고 내가 덧붙인 사족들.
“내가 어렸을 때, 외할머니한테 혼난 일이 있어. 닭백숙이 상에 놓였는데, 내가 젓가락으로 뒤적인다고 불호령이 떨어졌지. ‘어디서 음식을 뒤적거려?’”
외할머니는 평소엔 자상한 분이셨는데, 할 말을 해야 할 때는 대략 거침이 없으셨다. 근거나 이유를 대거나 하진 않으셨다. 그게 왜 혼나야 하는 일인지는 나 스스로 깨쳐야 했다.
내가 오늘의 말씀을 마쳤을 때, 첫째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할많하안-할 말이 많지만 하지 않겠어’ 할 때의 표정으로. 그리곤 뒤적이지 않고 야채도 먹고 밥그릇도 비운 뒤, ‘잘 먹었습니다’하고 휑하니 일어섰다. 보통의 그는 밥상 수다쟁이인데….
아내와 둘째는 이 상황에 대해서 의견을 냈다. 아내는 “아, 애들이 먹고 싶은 거 먹게 놔둬!” 했다. 둘째는 “맞는 말을 하시는데,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목소리가 커지면 아들이 무서움을 느끼잖아요. 거기다 느닷없이 자기 옛날이야기를 하고 말이죠.”
“내가 목소리가 컸다고? 그건 미안해.” 둘째에게 사과한 뒤에 아내에게는 반격을 했다.
“그런데, 아들에게 아빠가 아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그 반대 의견을 즉석에서 내는 게 맞는 일인가? 틀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잖아.”
아내는 말하길 “아이들 없는 데서 얘기했잖아.” “바로 이야기했거든?”
“(뒤적거리지 못하면) 난 안 먹을 거야!”
“먹지 마세요!”
밥상 자리 분위기는 좀 차가워졌다. 떡은 질컹질컹 퍼졌다. 이 떡은 이제 사지 말아야지.
누가 나에게 “그거 아닌데?”라고 말할 때, 그건 가르침의 시간이다. 내 말과 행동과 신념을 검토해볼 흔치 않은 기회. 그래서 그때는 옳고 그름과 가르침이 가장 중하다. 나머지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 상황에서 사람을 미워하고 오해하고 꽁해 있을 일은 아니다. 물론 이렇게 되는 전제가 있다. 할머니가 어떤 분인지를 나는 알고 있었다. 가족들이 모두 어떻게 반찬을 대하는지 나는 그때 떠올랐다. 이제 내가 어리광쟁이 아이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구성원이 돼가고 있다는 것도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다. 맞는 말에 나를 숙이는 것. 그건 어른으로 가는 길이기도 할 것이었다. 대통령의 길이란 건 말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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