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문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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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6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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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은 길고 추웠다. 더구나 ‘푸세식’ 화장실은 너무도 멀게 느껴졌다. 요강은 몸이 불편한 할머니 몫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가끔은 형도, 심지어 아버지까지도 슬그머니 그 위에 앉고는 한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작은 일만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일곱 살짜리 아이에게 어찌 배변 조절능력이 있었겠는가. 생각보다 가득 찬 요강은 힘을 주자 심하게 출렁였다. 그리고 아침이 오자 나는 마루 끝에 무릎을 꿇고 요강을 든 채 벌을 섰다. 지금은 고향집 장롱 위에 올라앉아 어머니의 귀금속 단지쯤으로 쓰이고 있는 요강을 볼 때면 내 입가에는 어느새 뒤가 구린 웃음이 슬쩍 번져가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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