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문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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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9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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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를 들고 앞서가는 형의 모습은 너무나 의젓했다. 새로 만든 가오리연을 조심스레 받쳐들고 그 뒤를 따르는 것만으로도 나는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없었다. 먼저 뒷동산에 올라와 연을 날리고 있던 동네녀석들은 형을 보자마자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거나 허겁지겁 연을 거둬들이기에 바빴다. 잠시 후 형의 연이 하늘 높이 솟구치자 그러지 않아도 이미 기가 죽어있던 몇 개의 연들이 차례대로 줄이 끊긴 채 공중을 맴돌다가 이내 언덕 너머로 곤두박질쳐 갔다.
이윽고 홀로 남은 형의 연은 의기양양하게 온갖 기교를 부리며 하늘을 휘젓고 다녔다. 그러나 너무 까불었던 탓일까. 아차하는 순간 형의 연은 감나무 꼭대기에 걸려버렸고,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줄이 끊기고야 말았다. 기분이 잡친 형은 ‘옜다!’ 하고 내게 얼레를 던져주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언덕을 내려갔다. 나는 황홀했다. 유리가루에 아교풀과 부레를 정성껏 섞어 만든 연줄로 무장한 그 무적의 얼레가 마침내 내 차지가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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