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문 주간
승인
2023.06.22 09:00
의견
0
나의 도벽은 참으로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정신없이 바쁜 전방 한쪽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있던 나는 아버지의 눈길이 소홀해진 틈을 타 돈통에서 슬쩍 한 움큼의 돈을 움켜쥐고 밖으로 나왔다. 그때부터 나는 훔친 돈을 어디에 써야 할지 냉택없는 고민에 시달려야 했다. 책방을 기웃거려 보기도 하고, 극장 앞에서 잠시 발길을 멈춰보기도 했지만, 결국은 동네 악기점의 문을 밀고 들어갔다. 새 실로폰에 한껏 들뜬 나는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왔지만, 집안 어디에도 실로폰을 연주할 만한 장소는 없었다. 식구들의 눈에 띄는 순간 모든 것은 끝장이 난다. 하는 수 없이 슬그머니 골방으로 기어들어간 나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실로폰을 두들겼다. 때마침 창밖으로는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빗소리는 실로폰 소리보다 더 또렷이 내 마음을 두들기고…. 나는 끝내 공연한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저작권자 ⓒ 고양파주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