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 내 글들은 거의 다 똥글임을 나는 알고 있다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3.08.01 09:00 | 최종 수정 2023.08.01 10:06 의견 0

1.

어제는 어느 벗이 지나던 길에 전화가 왔다.

<뭐해?>

<중이 뭐하긴?>

<가도 돼?>

<와.>

<뭐하고 살아?> 물었다.

<재밌게 놀지. 부처님이랑.>

내 말에 크으 하고 미소를 날렸다.

<요즘 페북에 글 왜 안써?>

그의 소설은 꽤나 감각적이었다.

<응, 옛날 내 글을 읽었던 이들의 환상이 깨질까봐.>

<....크으. 왜 수도꼭지 틀면 명문장이 콸콸 쏟아져 나오는 이들 많던데.>

<크으, 그저 눈팅만 해.>

우리는 킥킥대고 웃었다.

2.

다음날, 어느 후배가 축 늘어뜨리고 있는데 지나가다가 들렀다며 왔다.

<좋은 문장을 쓰려면 스님은 어떻게 해요? 스님 문장에 밑줄 친 적 있어요.> 하고 물어와 화들짝 놀랐다. 속으로는 '뭐 이런 게 다 있어, 나보다 훨 잘 쓰면서?' 했다.

<난 아예 좋은 문장 쓰려고 들질 않아. 아예 문장도 만들어 내지 못하는데 뭐.>

<.....몸은 좀 어때요?>

<죽을 때 되면 죽으면 되지 뭐.>

내 말에 어이없어 하다 킬킬대고 웃는다.

<어, 거기 내가 아는 다른 후배도 글 쓰러 온 걸로 아는데......>속으로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그 말은 내비치지 않았다. 눈치를 보니 글쓰다 막히자 생각나서 온 거 같았다.

하여 <나는 너보다 더 못 써. 니 문장이 내 문장보다 더 단단하구먼 뭐. 밑줄을 쳤어도 니 문장에 내가 더 많이 밑줄 쳤거든. 형광색 펜으로.>하자 우리는 서로 낄낄대고 웃었다. 놈은 나보다 싸납쟁이에다 성격이 훨씬 집요했다.

<봉다리커피는 안 먹잖아?>

<함 먹어보죠, 뭐. 스님이 타 주는 거.>

커피를 타며 불교에서는 자신의 만족과 행복을 위해 스스로 조절하고 통제하는 지침으로 팔정도가 있다, 고 자랑했다. 그중 나는 정견(正見)을 가장 중요시 한다, 고 했다.

<일단 보는 거야. 바로 보아야 바른 마음이 생긴다. 잘못 보기 때문에 고통이 생기고 괴로움이 생기는 거라고. 나는 나의 고통을 없애는 방법으로 정견(正見)을 택하곤 해. 삐딱한 눈으로 보면 삐딱하게 보이고 애꾸눈으로 보면 한쪽 밖에 보지 못하더라고. 글쓰기도 그래. 눈을 감은 장님처럼 항상 상상을 하려고 해.>


<오늘은 얼마나 쓰셨어요?>

<에이 포지 반에 반에 반에 반. 너 중노릇이 쉬운 건지 아니?>

<......크.>

그랬다.<훅 불면 다 날아가는 문장들, 허접 쓰레기, 내 글들은 거의 다 똥글임을 나는 알고 있어. 거의 다 비문이고 쓰레기, 개쓰레기 수준이야. 땡초 아니랄까봐, 자꾸 설법 하려들고, 논설 까려고 들어. 좌우간 난 오래 걸려. 신문기사 같은 글들, 하루만 지나면 다 쓸모 없어지는 그따위 글은 싫은데. 헤밍웨이처럼 수백 번 고치지 못 해. 끈기가 부족한 거지.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쓸 때 수백번 고쳐 썼다는데?!>

내 말에 픽 웃던 후배가 <그래도, 스님은 오늘날 스님이 있게 하고 살고 계시는 곳에 항상 부처님이 계시잖아요> 한다. 이어 <봉다리커피를 몇 년 만에 먹어보는 지 모르겠네요. 종이컵으로 먹는 스님이 타주시는 믹스커피가 이렇게 달달하고 좋은지.>한다. 순간 <입 발린 소리 그만 하시지?>하자 <이제 비 좀 그만 왔으면 좋겠네요.>하며 후배가 낄낄거리며 웃는다.

3.

<하천이 범람했었나봐요.>

<응, 수해복구 받았지. 자, 나가자고. 저녁은 내가 살게. 뭐 먹고 싶어?>

<에이 포지 반에 반에 반에 반, 쓰셨다 했죠? 전 그래도 전 오늘 한 장 반은 썼어요. 그러니 제가 살 게요. 가요.>

일어서려는데 순간 몸이 몸이 기우뚱했다. 으으, 빈혈이었다. 눈치 못 채게 자세를 바르게 했다. 놈의 수려한 콧날과 턱의 선, 잘 생긴 얼굴을 보았다. '젊어서 좋겠다.'하다 이어 시동이 걸리지 않는 예초기를 고쳐야 하는데, 속으로 웅얼거리며 내 차로 움직이려 하자 다시 데려다 준다고 자기 차는 울퉁불퉁한 길도 잘 굴러가는 4륜구동이라며 우긴다. <예초기 고쳐야 하는데>하고 다시 혼잣말로 궁시렁거리다가 따라 나섰다.

얼추 그렇게 올해도 장마는 끝나가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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