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로 세상읽기】전쟁은 문명의 진로를 바꾸었다 -2

김위영 산업번역 크리덴셜 대표 승인 2023.08.07 00:55 | 최종 수정 2023.08.07 07:21 의견 0

◆ <On the Origins of War(전쟁의 기원에 대해, 1995)>

미국 예일대학교 역사학과 교수였던 Donald Kagan(도널드 케이건, 1932~2021)은 본서를 통해 제1·2차 세계대전, 한니발 전쟁, 쿠바 위기 등을 거론하며 전쟁의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그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도 역작이다.

In 1968 Will and Ariel Durant calculated that there had been only 268 years free of war in the previous 3,421. --P.4

역사학자 윌과 아리엘 듀런트는 1968년에 지난 3,421년 동안 전쟁을 치르지 않는 기간은 불과 268년이라고 계산해 냈다.

That fear and interest moves states to war will not surprise the modern reader, but that concern for honor should do so may seem stranger. --P.8

두려움과 관심이 국가를 전쟁에 이르게 한다는 사실은 현재 독자들에게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명예에 대한 관심으로 전쟁을 한다는 것이 이상할지도 모른다.

The secret of the success of our species has been its ability to learn from experience and to adapt its behavior accordingly. --P.11

우리 인류의 성공 비결은 경험을 통해 배우고, 그에 따라 행동을 적용시켜 나가는 능력이었다.

It destroyed four empire, leaving a collection of insecure and mutually suspicious petty states in place of the Habsburgs’ Austria-Hungary, a Turkey limited to Asia Minor and a toehold in Europe in place of the Ottoman Empire, a Germany reduced in size to the always troubled Weimar Republic, and the Soviet Union in place of the dynasty of the Romanovs. --P.82

제1차 세계대전은 네 개의 제국을 붕괴시켰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서로 불신하는 여러 약소국가들로 분리되었고, 오스만 제국을 대신해 소아시아와 유럽의 발판으로 제한된 터키로 바뀌었으며, 독일은 언제나 혼란스러운 바이마르 공화국으로 그 규모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로마노프 왕조를 대신해 소련이 출현했다.

No war has produced so long and heated a debate about its causes as the First World War. The chief cause for that, no doubt, is the famous “War Guilt Cause,” number 231, of the Versailles Treaty at the end of the war. --P.205

어떤 전쟁도 제1차 세계대전처럼 그 원인에 대해 그렇게 장황하고 열광적인 논쟁을 낳은 적은 없다. 그 주된 동기는 의심할 여지없이 전쟁의 끝에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 제231조의 유명한 ‘전범 조항’이었다.

No peace keep itself. After the Franco-Prussian War Bismarck judged it to be in the interests of Germany to exercise restraint and maintain the peace of Europe. For twenty years under his guidance Germany accepted the major burden of keeping the peace by maintaining a powerful military force and using it to help avoid war. --P.212

평화는 스스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보불전쟁 후에 비스마르크는 독일이 자제하고 유럽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독일의 이득이 된다고 판단했다. 그의 영도 하에 20년 동안 독일은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그것을 전쟁 방지에 사용하면서 평화를 유지하는 큰 부담을 수용했다.

The First Punic War was long and hard, lasting until 241. To win it the Romans were forced to become a great naval power, to expend unprecedented sums of money and suffer horrendous numbers of casualties. --P.251

제1차 포에니 전쟁은 기원전 241년까지 계속된 길고도 힘든 전쟁이었다. 로마는 이 전쟁을 이기기 위해서 강력한 해상국가가 되어야 했고, 전례 없이 엄청난 돈을 지출하고 끔찍하게 많은 사상자를 내어야 했다.

The GERMAN INVASION of Poland on September 1, 1939, launched a conflict even more terrible and destructive than the Great War of 1914-18. The second world war was more truly global, for heavy took place in Africa and Asia as well as Europe, and the people of every continent were involved to some degree. --P.281

1939년 9월1일 발생했던 ‘독일의 폴란드 침공’은 1914-18년 사이에 일어났던 제1차 세계대전보다 더 무섭고 파괴적인 전쟁을 일으켰다. 제2차 세계대전은 진정한 의미의 세계대전이었다. 유럽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격돌했고, 모든 대륙의 사람들이 어느 정도 관여했다.

Keynes called the Treaty of Versailles immoral and unworkable, a Carthaginian peace, referring to the utter destruction of Carthage by Rome after the Third Punic War. He argued that such a peace would bring economic ruin and war to Europe until it were repudiated. --P.290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스는 제3차 포에니 전쟁 후에 카르타고를 완전히 파괴한 로마를 언급하면서 베르사유 조약을 비도덕적이고 실행할 수 없는 ‘카르타고의 평화조약’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러한 평화조약이 거부될 때까지 유럽에 경제적 파괴와 전쟁이 초래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The only choices available to leaders of such a country is whether to seek to avoid the crisis by working to preserve the peace, to act realistically while there is time, or to avoid the responsibility until there is no choice but war. --P.573

그와 같은 국가의 지도자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평화를 유지하고 시간이 있을 동안 현실적으로 행동하기 위해 일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할 것인지, 아니면 전쟁 이외에 선택이 없을 때까지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었다.

◆ <The New Rules of War(전쟁의 새로운 규칙들, 2019)>

미국의 작가이자 군사전략가인 Sean McFate(신 맥페이트, 1969~ )는 조지타운대학교 교수이다. 저자는 본서를 통해 재래식 전투와 미래의 전쟁과의 차이점, 미래의 전쟁에 필요한 새로운 규칙 10개를 설명하고 있다.

War is armed politics, and seeking a technical solutions to a political problem is folly. Ultimately, brainpower is superior to firepower, and we should invest in people, not platform. --P.57

전쟁은 무장한 정치이며, 정치적 문제에 기술적 해결책을 찾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결국 두뇌가 화력보다 우월하며, 플랫폼이 아니라 사람에 투자해야 한다.

Another type of warfare is emerging, designed to crush conventional warriors and tender their militaries useless. It’s called “shadow war,” and you are not supposed to see it. --P.193

재래식 군인을 분쇄하고, 군대를 쓸모없도록 의도된 다른 유형의 전쟁이 등장했다. 이를 ‘그림자 전쟁’이라 부르며, 볼 수가 없다.

Modern war leverages information because we live in an information age. This is why it’s effective. Power no longer comes out of a barrel of a gun, but rather from the complicated shadows. --P.218

현대 전쟁은 우리가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정보를 활용한다. 이것이 효과적인 이유이다. 권력은 더 이상 총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그림자에서 나온다.

War artists can win the future, if we cultivate them. The purpose of studying war is to reduce it, or wage it as efficiently as possible when there is no other choice. This is important if it means saving lives and countries. --P.241

전쟁예술가를 양성하면 미래를 이길 수 있다. 전쟁을 연구하는 목적은 전쟁을 줄이는 것, 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 가능한 한 효율적으로 전쟁을 벌이는 것이다. 이것은 생명과 국가를 구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중요하다.

There is a choice before us. Either we spill enough blood in battle until we finally realize our problem, or we choose to change now. No one ought to select the former, but the latter is difficult. It will require disruptive thinking and bold steps that conventional warriors will reject but troops on the ground will understand. --P.251

우리 앞에 하나의 선택이 있다. 최종적으로 우리의 문제를 깨달을 때까지 전투에서 충분한 피를 흘리거나 아니면 지금 변화를 선택한다. 누구도 전자를 선택해서는 안 되지만 후자는 어렵다. 전통적인 전사들은 거부하지만 지상군은 이해할 파괴적인 사고와 대담한 조치가 필요하다.

◆ <A Short History of War(전쟁 약사, 2021)>

영국 엑스터대학교 역사학 교수인 Jeremy Black(제레미 블랙, 1955~ )은 인류 역사를 통해 여러 전쟁을 분석하며 전쟁이 역사를 어떻게 바꾸어왔는지 설명하고 있다.

Bellicosity in the shape of the will and readiness to fight leads to war, rather than war arising because misunderstandings produced inaccurate calculations of interests and response. The resort to war is both a choice for unpredictability and the positive connotations of risk, and also a product of individual and social norms, notably of masculinity and competition. --P.6

오해가 이해관계와 반응의 부정확한 계산을 산출해서 전쟁이 일어나기보다는, 싸울 의지와 준비의 형태로 나타난 호전성이 전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전쟁에 의지하는 것은 예측 불가능성을 선택하는 동시에 위험에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며, 개인적·사회적 규범, 주로 남성성과 경쟁의 산물이기도 하다.

The story of conflict related not only to the endless time spans of religion but was also as old as humanity, indeed is the story of humanity. It is not separable from the human experience. --P.7

충돌의 이야기는 종교의 유구한 시간과 연관될 뿐만 아니라 인류만큼이나 오래되었고, 사실 인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는 인간의 경험과 분리할 수 없다.

The reliance on force reflected needs and value. There were economic drives to control land, resources and people, as well as the pressures of social roles, and the hierarchies and masculine images involved. In addition, conflict appeared natural, necessary and inevitable. --P.21

무력에 대한 의존은 그 시대의 필요와 가치를 반영했다. 땅과 자원과 사람을 통제하려는 경제적 동력이 존재했을 뿐 아니라 사회적 역할에 대한 압력과 위계와 남성적 이미지가 수반되었다. 더하여, 충돌은 자연스럽고 필요하고 불가피하게 보였다.

It was part of the divine order, the scourge of divine wrath, and the counterpart of violence in the elements, as well as the correct, honorable and right way to settle matters. --P.21

전쟁은 신의 질서 일부이자 신의 분노가 내린 재앙이며, 근원적으로 폭력에 대한 대응이었고, 문제를 해결하는 정확하고 명예로우며 올바른 방식이었다.

The Crusades were an important and most dramatic part of the Christian counter-attack against Islamic invasions. This was a long-standing process. Thus, the Byzantines had already regained the initiative in the tenth century not least with the recapture of Crete in 960-61, a formidable logistical achievement in which the Byzantine fleet included purpose –built ships for horse transport. --P.71

십자군은 이슬람의 침략에 대한 기독교의 반격에서 가장 중요하고 극적인 부분이었다. 이는 장기에 걸친 과정이었다. 따라서 비잔틴 제국은 특히 960~961년 크레타 탈환과 함께 이미 10세기에 주도권을 재탈환했다. 비잔틴 제국 함대가 말 수송을 위한 목적으로 건조한 선박을 포함한 것은 대단한 병참의 성과였다.

Mongol logistical support was highly effective because, in the early stages of imperial conquest, it reflected and mirrored the normal nomadic state. Indeed, the integrated logistical support inherent in the armies from the central steppes was unsurpassed at the time. --P.77

몽골의 병참 지원이 고도로 효율적이었다. 왜냐하면 제국 정복의 초기 단계에서 그것이 유목민의 정상 상태를 반영하여 고찰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앙 스텝 지역의 군대에 내재된 종합적 군수지원 체제는 당대에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Yi Sun-shin, who had a good understanding of the coast and its tides and straits, won a series of further victories in 1592. In addition, Korean guerrilla tactics on land undermined Japanese control and, like other invading powers, the Japanese were also seriously affected by logistical problems. --P.138

남해안과 남해의 조수와 해협에 매우 능통했던 이순신은 1592년 추가로 연승을 거두었다. 게다가 조선의 육상 게릴라전술이 일본군의 통제력을 약화시키고, 다른 침공군처럼 일본군도 병참 문제로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

State-making and state-preserving were the key results of the near-century between the end of the Napoleonic wars in 1815 and the outbreak of World War One in 1914, all against a background of swiftly rising population and rapid industrialisation. The most important states made by war were Germany and Italy, and those preserved by the suppression of rebellion were America, Brazil and Austria-Hungary. --P.164

국가의 형성과 보존은 1815년 나폴레옹 전쟁의 종지부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까지 한 세기가 낳은 핵심 결과물로 인구 급증과 급속한 산업화를 배경으로 이루어졌다. 전쟁으로 형성된 가장 중요한 국가는 독일과 이탈리아였고, 반란 진압을 통해 보존된 국가는 미국, 브라질, 오스트리아, 헝가리였다.

World War One was always understood as a world war, and one with global consequences. Yet, the war was far more focused on Europe than its sequel, both as far as conflict on land was concerned and also with regard to the war at sea and, even more, in the air. --P.187

제1차 세계대전은 항상 세계대전이고 전 세계적 결과를 초래한 전쟁으로 이해되었다. 하지만 전쟁은 그 다음 전쟁보다 유럽에 훨씬 더 초점이 맞추어졌고, 육상전으로 보나 해전으로 보나 심지어 공중전으로 보아도 그러했다.

Force is a key element in history. War, even if the scale may be modest and the technology limited, is not just the cause and consequence of change, but also an activity and experience that is at once more protean and more extensive. --P.243

무력은 역사에서 핵심 요소다. 비록 그 규모가 작고 기술이 제한적일지라도 전쟁은 변화의 원인과 결과뿐만 아니라 더 변화무쌍하고 광범위한 활동이자 경험이기도 하다.

◆ 전쟁은 인간의 역사와 진로를 바꾸었다

전쟁은 국제정치에서 하나의 과정으로 지정학적 이해의 충돌로 발생하지만, 또한 항상 지도자의 계산 착오나 오판에 의해 시작된다. 전쟁에는 필연적으로 살생이 따른다. 지상에서 가장 귀중한 인간의 생명을 죽이는 전쟁은 이유야 어떠하든 범죄행위로 보아야 하기 때문에 전쟁에 선과 악이 존재할 수 없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왈쩌(Michael Walzer)는 정의와 평화를 회복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서 전쟁에 호소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하다는 ‘정의 전쟁’을 주장했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까지도 파괴하는 전쟁은 인간의 탐욕(자본주의적 이익)을 가장 파괴적이고 추악하게 드러낸 가장 불행한 행위이자 극악한 폭력이다. 전쟁에서는 죽이는 자와 죽는 자는 물론, 무고한 시민들까지도 고통을 받는다. 전쟁으로 영원한 평화를 가져올 수 없고,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전쟁은 단지 전쟁일 뿐이다.

역사적으로 전쟁은 계속해서 변화해 왔다. 최근의 전쟁은 다양한 수단의 활용과 융합인 하이브리드(Hybrid) 전쟁이다. 하이브리는 전쟁은 다중성(multi-modality), 모호성(ambiguity), 적의 DIME(외교·정보·군사·경제) 영역에서 약점 활용, 지상·해상·공중, 사이버·정보·선동 영역에서 공격 등이 주요한 특징이다. 따라서 종전의 전방과 후방 등의 의미가 사라지고, 전방위전이 되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에서 보듯이 어느 한쪽이 선이고 다른 쪽이 악이 아니다. 고귀한 생명을 앗아간다는 면에서 모두가 범죄행위에 가담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을 벌이는 주체는 정부와 국가이다. 국가는 국민의 이익과 정서나 이상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대부분 기득권자인 지배계급의 이익에 따라 전쟁을 벌인다. 따라서 모든 국민은 전쟁을 주시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War is most often a form of tyranny. It is best described by paraphrasing Trotsky’s aphorism about the dialectic: “You may not be interested in war, but war is interested in you.” --Michael Walzer, Just and Unjust Wars

전쟁은 대개 폭정의 한 형태이다, 그것은 변증법에 대한 트로츠키의 격언을 의역하여 잘 설명된다. “당신은 전쟁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전쟁은 당신에 관심이 있다.” --마이클 왈쩌 <정의 전쟁과 부정의 전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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